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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의정부교구 성지순례길: 순교자의 길과 사목방문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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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4-29 ㅣ No.912

순례의 길 떠날 때 - 의정부교구 성지순례길


순교자의 길과 사목방문의 길

 

 

경기 북부의 순례지

 

- 갈매못 공소.

 

 

경기 북부에 위치한 의정부교구는 우리 신앙선조들의 얼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혹독한 박해로 순교하신 두 분 순교자(성 남종삼 요한과 황사영 알렉시오)의 묘와 치명터가 있고, 오직 신앙의 자유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찾아 들어간 산골에는 공소들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선조들은 깊은 산중으로 피신해 가난하고 불안한 처지였지만, 공소를 세우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살았습니다.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감싸 안으며 하느님을 공경하는 공동체를 이룬 것입니다.

 

의정부교구의 오래된 공소들은 한국 천주교회 신앙선조들의 생활을 더듬어볼 수 있는 소중한 곳들입니다. 박해의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사목자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산골 공소의 양떼를 돌보고자 먼 길을 걸어옵니다.

 

의정부교구의 순례길은 이처럼 양떼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공소를 향해 사목자들이 걸으셨던 길 가운데 몇 가지 길만을 추려서 연결한 것입니다.

 

지금은 흔적도 없는 곳이 많기도 하고, 걸어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곳들도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차도를 피하는 등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하여 5시간 정도 걸어갈 수 있는 곳을 순례길로 꾸민 것입니다.

 

 

두 개의 테마로 구성된 길

 

의정부교구 순례길은 ‘순교자의 길’과 ‘사목방문의 길’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순교자의 길’은 순교하신 남종삼 요한 성인의 묘역과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의 묘역을 찾아나서는 길입니다.

 

의정부주교좌성당을 출발하여 사패산을 넘어야 하는 다소 길고 힘든 길입니다. 다섯 시간 삼십 분 정도 걸리는 여정이지만, 순교자들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생각으로 나서면 그리 힘들지만은 않습니다. 이 길은 순교자들을 묵상하며 짧은 구간(1시간 정도) 만을 걸을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사목방문의 길’은 뮈텔 주교님께서 공소를 방문하셨던 길을 따라 걷는 길입니다.

 

뮈텔 주교님께서는 1918년 12월 2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동두천역에 내려 경기 북부 공소들을 방문하십니다. 그리고 12월 21일 모든 공소방문 일정을 마치고 의정부역을 출발하여 귀경하셨습니다.

 

이 지역은 개성본당 관할인데, 개성본당 신부님이 병중에 있었고, 또 공소방문을 대행하려고 했던 행주본당 신부님께서 갑자기 열병으로 선종하게 되어 뮈텔 주교님께서 직접 공소순방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사목방문의 길’은 세 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동두천역을 출발하여 신암리성당까지(걸어서 2시간 40분), 신암리를 출발하여 갈곡리공소까지(걸어서 3시간 20분), 뮈텔 주교님의 귀경길의 여정을 반대로 해서 의정부주교좌성당에서 광적(가래비)성당까지(걸어서 4시간 20분)로 정리했습니다.

 

 

상상력이 주는 즐거움과 감동

 

순례길을 걷는 목적은 일상의 잡다한 근심과 현실 속에서 떠나 하느님과 만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길을 걸으면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산골로 접어들었던 선조들의 고단한 삶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상상력을 통하여 신앙선조들이 다녔던 길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길에서 혹독한 박해를 피해 급하게 꾸린 보퉁이를 이고지고 신앙의 자유를 향해 떠나는 선조들을 만납니다.

 

칭얼대며 영문도 모른 채 부모를 따라 산길로 접어드는 어린아이들도 만납니다. 첩첩산중의 허름한 집에서 호롱불을 밝히고 기도하며 하루를 마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하느님나라를 향한 열망으로 가득 차 세속의 온갖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그래서 영혼이 맑은 이들의 눈빛을 봅니다.

 

양떼를 찾아가기에 길고 고단한 몸이지만, 말씀과 성사에 굶주려 있는 양떼를 만나려고 서둘러 산길을 넘어가시는 주교님을 만납니다.

 

먼 길을 찾아오신 목자를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분주한 사람들과 행복한 표정으로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산길을 걷다가 풀밭에 앉아 물 한 사발을 나눠마시며, 숨을 고르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마침내 양떼와 어우러져 하느님을 찬미하고, 성사의 기쁨 속에서 일치를 이루며 기뻐하는 우리의 어른들을 만납니다.

 

이분들이 계셨기에 신앙이 우리에게 전해졌고, 이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 교회가 축복의 교회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와 존경의 정을 느낍니다.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내고, 그 서러운 날들을 참아내고, 오직 신앙을 위해 그분들이 겪으셔야 했던 모든 아픔과 슬픔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자유를 배우는 길

 

우리 선조들이 걸었던 길은 상실의 길이 아니라 오히려 채움의 길이었고, 사학죄인이 피신했던 부끄러운 길이 아니라 하느님께 더 큰 영광과 찬미를 드리려는 길이었습니다.

 

산골로 피신하여 마침내 신앙의 자유를 품었던 선조들을 생각하며, 우리도 산길을 걸으며 세상으로부터 자유를 배웁니다. 온갖 욕심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세상에 끌려다니는 나약함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배웁니다.

 

누군가는 그저 경치를 즐기고, 사람들과 만나려고 길을 떠나지만,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길을 떠납니다. 신앙의 선조들이 하느님께로 향하려고 한 걸음씩 내디뎠던 그 길에서 하느님께로 향하는 열절한 사랑을 배우려고 길을 떠납니다.

 

비록 눈을 끌 만한 볼 것이 없어도, 찾아가는 길이 복잡하고 소란스러워도, 이 길에는 깊은 감동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배울 것이 있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싶은 이들을 의정부교구의 순례길로 초대합니다.

 

순례길에 대한 자세한 약도와 역사적인 의미를 담은 “의정부교구 순례 안내서”를 의정부교구 문화미디어국(☎ 031-955-8730)에서 판매(1,000원)합니다.

 

* 추교윤 시몬 - 의정부교구 퇴계원성당 주임신부. 가톨릭 대학교와 파리 가톨릭 대학교에서 수학하였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교구 문화미디어국장으로 재임시 의정부교구 순례길 안내서를 펴냈다.

 

[경향잡지, 2011년 4월호, 추교윤 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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