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레지오ㅣ성모신심

훈화2: 레지오의 봉사, 레지오 신심의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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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7 ㅣ No.106

레지오 마리애 훈화 (2)


1. 레지오의 봉사(교본 제4장, 1-5항:29-35면)
 
1)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 무장을 해야 한다(에페 6,11:교본 29면)
 
레지오 마리애는 이웃의 구원을 위해 봉사하는 영적 군대다. 그런데 봉사를 잘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악마의 군대가 존재한다(마르 5,9 참조). 이른바 호사다마(好事多魔)이다. 레지오의 마침 기도문에 '한평생 싸움이 끝난 다음'이란 말이 있듯이 레지오 단원 생활은 악의 세력과 싸우는 영적 군대 생활이다.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 교회 신자들에게 "속임수를 쓰는 악마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 무장을 하십시오."(에페 6,11)라고 호소하면서 그 당시 로마 군인의 완전 무장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는 영적인 무기로서 진리, 정의, 평화의 복음, 믿음, 하느님의 말씀, 기도이다(에페 6,14-18 참조). 특히 레지오 마리애에서는 악마의 상징인 뱀의 머리를 짓밟고 계신 성모님을 사령관으로 모시고 있으므로 성모님이 좋아하는 하느님의 무기인 묵주 기도를 활용해야 한다. 소년 다윗이 작은 돌팔매로 거인 골리앗을 물리쳤듯이 레지오 단원들도 영적 무기인 묵주로 악마의 군대를 무찌를 수 있다.
 
클레멘스 성인이 로마 군단을 교회가 본받아야 할 표본으로 보았듯이 로마 군대는 지상 군대 중에 가장 강력하고 용맹한 군대였다. 그러나 그 군대는 어디까지나 로마 제국의 영토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세속적인 군대였지 봉사하는 군대는 아니었다. 레지오 단원들은 로마 군대가 지녔던 자질보다 더 훌륭한 자질을 지녀야 한다.
 
특히 봉사할 때는 특출한 군인 정신을 지녀야 한다. 레지오 단원들은 아무리 어려운 봉사라도 거뜬히 완수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무기로 완전 무장을 해야 한다.
 
2) 세상을 본받지 말고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한다(로마 12,1-2:교본 30면)
 
이 성서 구절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여 하느님께 산 제물로 바치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삶 전체를 하느님께 바쳐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한다는 바오로 사도의 강력한 권고이다. 그러기 위해 신자들은 세속을 본받지 말고 꾸준히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본 본문은 일생 동안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린 현대의 성녀 소화 데레사를 귀감으로 소개하고 있다. 선교 사업의 수호자 예수 아기의 성녀 소화 데레사(1873-1897년)는 프랑스 북부 지역 알랑송에서 태어나 15세에 리지외의 가르멜 수녀회에 입회하였고 9년 동안의 짧은 수도 생활을 하고 24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생을 마감한 성인이다. 전혀 외적으로 업적을 남기지 않았음에도 성녀로 추앙받는 것은 뛰어난 영성과 성덕 덕분이다. 데레사 성녀가 완덕에 이른 비결은 복음 삼덕 외에도 겸손, 순박, 의탁, 봉헌, 희생, 사랑이다. 성녀는 어떠한 어려움이나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참아 이겨냈다. 그뿐 아니라 밖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신체 기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심장처럼 교회 안에서도 심장이 되어 선교사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와 희생을 바쳤다. 성녀의 자서전 '한 영혼의 이야기'에 성녀의 특출한 성덕과 영성, 일상 생활이 잘 드러나 있다. 성녀는 세속을 본받지 않고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일상의 자기 본분과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린 것이다.
 
레지오 단원들도 산 제물이 되신 십자가상 예수님을 묵상하고 그 귀감이 된 성녀 소화 데레사를 본받으면서 선교 활동과 봉사에 투신해야 한다.
 
3) '노고와 고통'(2고린 11,27)을 피해서는 안 된다(교본, 30-31면)
 
레지오 단원들은 봉사 활동을 하면서도 고통과 노고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단원들은 바오로 사도가 체험한 '노고와 고통'을 본받아야 한다. 그는 수없는 매와 몽둥이와 돌에 맞아 여러 번 죽을 뻔했고 몇 번이나 파선당해 바다에서 표류했으며 선교 여행 중에 온갖 종류의 위험을 겪었고 노동과 고역에 시달리며 수없는 밤을 뜬눈으로 새웠고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헐벗음을 겪었다(2고린 11,23-27 참조).
 
레지오 단원들은 바오로 사도처럼 참된 사도가 되기 위해 죽음이나 고문까지도 당할 각오를 해야 하다. 그 예로서 교본 본문은 '최근의 사태'를 들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의 레지오 단원들이 박해받고 순교한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중국은 1937년에 레지오 마리애가 도입되었으나 전혀 발전하지 못하다가 1947년 아일랜드의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소속 애단 맥그라스(Aedan McGrath) 신부가 레지오 확장 사업을 전담하자 불과 3년 만에 수천 개의 프레시디움이 생기고 3개의 세나투스가 설립될 정도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1949년에 공산당이 권력을 쥐고 가톨릭 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하여 5년 후에는 거의 모든 가톨릭 선교사들이 추방되었다. 1957년에는 중국 자체의 '애국 가톨릭 교회'가 결성됨으로써 공안 당국은 애국 교회를 반대하는 수많은 레지오 단원들을 체포하여 고문하였다. 전국적으로 20만 명 이상의 레지오 단원 중에 약 2만 명이 투옥되고 그 중 2천 명 이상이 순교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레지오 단원들은 선교와 봉사 활동을 할 때 노고와 고통을 피해서는 안 되며 순교 정신을 발휘하여 교본 본문의 내용대로 "온갖 어려움을 달게 참아 내고 즐거움으로 여기며 끝까지 버티어 나간다면 벗을 위해 제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신 바로 그 사랑의 경지에 마침내 접근하게 될 것이다."
 
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같이 사랑의 생활을 해야만 한다(에페 5,2:교본 31-32면)
 
레지오 단원의 봉사 활동 대상자는 냉담자, 조당자, 환자, 수감자, 노약자, 예비신자, 교리 중단자 등 영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단원들 대다수는 이러한 활동 대상자들을 만나야 할 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고 부담스러워하고 꺼려하는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 활동 배당을 받으면 한 번으로 빨리 해치우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단원의 봉사 활동은 일회성이 아니라 한평생 해야 하므로 한계선을 그어 놓아서는 안 된다.
 
활동 대상자와 접촉하여 정해 둔 목적을 달성하려면 끈기 있는 사랑과 희생 정신이 있어야 한다. 끈기와 희생 정신이 없으면 레지오 단원 생활도 오래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참사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만 만나기 싫고 꺼려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렵다. 진정한 사랑과 봉사에는 아픔과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활동 대상자를 예수님으로 여기고 벗으로 여길 때 비로소 대인 관계가 원만하고 봉사 활동도 성공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레지오 단원은 봉사 활동을 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셔서 하느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 제물이 되셨듯이"(에페 5,2) 자신을 전적으로 바치고 아낌없이 봉사하려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5) 달릴 곳을 끝까지 다 달려야만 한다(2디모 4,7:교본 32-35면)
 
건강을 위해 '머리는 차게, 발은 뜨겁게'라는 말이 있다. 발을 뜨겁게 하기 위해 뜨거운 물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개들 많이 걷고 뛰고 달린다. 군대에서 훈련병들은 구보(驅步)할 때 발바닥이 보이지 않게 뛰어라는 호령을 받는다. 어느 단기 강습회에서는 몸을 사리지 않고 사도직 활동을 열심히 하도록 독려하려고 '뛰어라'는 소감 발표 시간을 갖기도 한다. 뛰고 달린다는 것은 능동적, 적극적, 활동적임을 뜻한다. 레지오의 선교 활동과 봉사 활동도 마찬가지다. 한평생 뛰고 달려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제자요 협력자인 디모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2디모 4,7-8)라고 말했다. 이 내용은 그 당시 경기장에서 달리기나 마라톤을 하여 우승한 선수에게 월계관을 씌워 주는 것을 상기시킨다. 바오로 사도는 신자들이 온갖 어려움이 따르는 복음화 활동을 통해 자신도 구원받고 타인도 구원하는 것 곧 불멸의 월계관을 받도록 다음과 같이 달리기 경기를 비유로 들고 있다.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여러분도 힘껏 달려서 상을 받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불멸의 월계관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을 하되 목표 없이 달리지 않습니다"(1고린 9,24-26).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면서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필립 3,13-14).
 
이처럼 레지오 단원들도 선교 활동과 전반적인 임무와 업무 하나하나에도 완전성과 지속성을 지니고 아낌없는 봉사와 노력을 기울이면서 달릴 길을 끝까지 달려야 한다. 목표를 향해 달릴 때 한눈을 팔거나 옆길로 새는 변덕스러움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운동 선수가 월계관을 얻으려면 규칙대로 경기를 해야 하듯이"(2디모 2,5) 레지오 활동에서의 변덕은 훌륭한 레지오 규율을 깨뜨리게 된다.
 
복음화 활동에서 아무리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일도 '가망이 없다'는 낙인을 쉽사리 찍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마치 귀중한 영혼이 멸망해도 내가 알 바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활동의 다양성만을 추구하거나 활동의 결과가 빨리 드러나기를 바라는 생각은 더욱 중요한 활동 목표를 소홀히 다루게 된다. 농부가 씨를 뿌리자마자 수확을 거두려 하지 않듯이 목표를 향해 달릴 길을 다 달리려면 끈기 있는 기다림, 굳건한 믿음,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 정해 둔 목적을 달성하고 성공하려면 굳센 의지와 줄기찬 노력이 있어야 한다. 성 루도비코 마리아가 강조하듯이 "불가능한 것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되 매사에 똑같이 세심한 관심과 똑같이 지치지 않는 인내와 똑같이 꿋꿋한 용기와 황금 같은 끈기를 지녀야 한다"([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 214항).
 
레지오 단원들도 그렇게 할 때 비로소 목표를 향해 달릴 곳을 끝까지 다 달리게 될 것이다.


2. 레지오 신심의 개요(교본 제5장 1-7항:36-45면)
 
1) 하느님과 성모 마리아(교본 37-38면)
 
개신교 신자들 중에는 천주교를 마리아교로 오해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천주교는 성모 마리아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마리아는 절대자 하느님이 아니라 한낱 피조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성모님이 신인(神人)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이기에 특별히 공경하도록 권장한다.
 
성모님은 '주님의 어머니'(루가 1,43)이므로 하느님의 어머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믿는 사람이라면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431년에 개최된 에페소 공의회는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임을 부인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Nestorius)를 단죄하였다. 에페소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천주 성삼위 중 제2위로서 두 가지 본성, 곧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동시에 지녔기 때문에 그 어머니는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선포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성모송의 마지막 구절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을 삽입하였고 새해 첫날인 1월 1일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기에 다른 어떤 존재보다도 탁월한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는 자신의 저서 [복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에서 하느님과 마리아에 대한 기본적인 진리를 다음과 같은 요지로 서술하고 있다. '마리아는 지존하신 하느님의 손으로 창조된 단순한 하나의 피조물임에도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구원 사업을 시작하고 완성하기를 원하셨다. 천주 성부께서는 당신의 독생 성자를 다만 마리아를 통해서 세상에 내려 보내 주셨고 천주 성자께서는 인류 구원을 위해 강생하셨으나 어디까지나 마리아 안에서 마리아를 통해서 오셨다. 천주 성령께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마리아 태중에 잉태하게 하셨으나 먼저 대천사를 보내시어 마리아에게 승낙을 받으셨던 것이다'(제1장 14-16항 참조).
 
하느님과 성모 마리아는 결코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하느님께서는 태초부터 마리아를 통해 성자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인류를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셨고 성모 마리아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셨으므로 성모 신심을 가지는 것은 하느님께 오히려 영광이 된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 신심에 대한 개신교 신자들의 비판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한 신심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도록 해야겠다.

[
사목, 2001년 3월호, 최경용(부산교구 신선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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