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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인천지역 최대 순교터 제물진두 순교사적지 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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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9-28 ㅣ No.1163

인천가톨릭대 겨레문화연구소 '제물진두 순교사적지 심포지엄'


인천지역 최대 순교터인 제물진두 명확한 위치는 옛 제물진 서쪽 해변



14일 열린 제물진두 순교사적지 심포지엄에서 발제자들이 종합토론을 하고 있다.
 

1800년대 중후반 흥선대원군이 조정을 통치하던 시기, 조선은 전략적 요충지로서 서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 외세의 침입이 잦았던 인천 지역은 서양 세력이 조선으로 드나드는 관문이자, 선교사들에게는 선교활동의 거점이 됐다. 하지만 외국과의 통상과 이질적 사상의 침투에 완고했던 조정은 외세와 함께 천주교 신자들을 조선 침략의 공범으로 내세워 박해하기 시작했다. 1866년 병인박해 이후 인천 제물진두(祭物津頭)에서는 우리나라 첫 영세자 이승훈(베드로)의 증손자인 이연구ㆍ이균구를 비롯한 9명이 순교했다.
 
인천가톨릭대 겨레문화연구소(소장 김기태 신부)는 신앙의 해 순교자성월을 기념해 14일 인천교구청에서 인천 제물진두 순교자들의 순교행적과 제물진두의 명확한 위치를 비정하는 '제물진두 순교사적지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최영준 고려대 명예교수는 '제물진두 순교사적지의 위치 비정'이란 주제발표에서 "역사지리학적으로 인천 순교사적지는 옛 제물진의 서쪽 해변에 위치한다"고 새로운 제물진두 순교사적지를 제시했다. 최 교수는 "근대 인천의 발상지인 제물포는 개항과 동시에 치외법권지가 돼 전통적인 문화경관이 파괴되면서 일제 35년간 철저히 왜색화(倭色化)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최 교수에 따르면 성창포의 구제물진과 신제물진 두 곳 중 제물진두 순교사적지는 신제물진두로 추정되는 인천역 우측, 차이나타운 입구와 옛 성창포의 구제물진두로 추정되는 인천 동구 화수동의 화도진(花島鎭) 밑 구해안선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종전 교구 성지개발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고 김진용(마티아)씨가 인천 중구 항동 파라다이스호텔 부지 언덕 일대를 순교터로 지목한 것과는 다른 새로운 주장이다.

방상근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은 '인천지역의 천주교 박해와 제물진두'란 주제발표에서 서양세력의 침공 → 천주교도가 내응한 결과란 인식 → 척사의식 고조 → 천주교도 탄압 → 경종효과가 큰 진두에서 신자처형 등으로 제물진두 처형 배경을 도식화했다.
 
방 실장은 "1868년 독일 상인에 의해 일어난 '오페르트 도굴사건'과 잇따른 서양 세력의 침공과 관련해 조선 정부는 천주교인들에게 책임을 물어 서양 배와 관련된 장소에서 신자들을 박해하기에 이르렀다"며 "제물진두는 순교지로서의 성격은 있지만, 그곳에서 처형된 신자들이 모두 순교자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며, 제물진두와 순교자는 별개의 문제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순교영성연구소장 강석진 신부는 '제물진두 순교자 행적과 순교영성에 대한 연구' 발표에서 "18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인천지역 천주교 신앙은 오랫동안 이어온 신자들의 '믿음살이'가 있었기에, 이후 박해에서 순교하는 '순교전통'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면서 "용덕(勇德)과 망덕(望德), 애덕(愛德)으로 종결되는 이들의 순교영성에 초점을 맞춰 이들의 행적을 성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화신문, 2013년 9월 29일, 이정훈 기자]

 

 

인천 제물진두 성역화 착수


제물진두 순교기념관 기공식… 11월 말 완공



인천교구가 올 연말께 완공하는 제물진두 순교기념관(점선 안). 사진은 실물 사진에 기념관 조감도를 가상으로 붙인 것이다.


인천교구가 제물진두 성역화 작업에 본격 돌입했다.

교구는 병인박해(1866년) 때 천주교 신자 9명이 처형된 제물포 제물진두 순교터 성역화를 위한 첫걸음으로 11일 인천시 중구 항동 1-13에서 '제물진두 순교기념관' 건립 기공식을 가졌다.

대지면적 109.1㎡, 건축면적 42.9㎡의 단층으로 지어지는 순교기념관은 인천 한중문화원과 문화원 우측 건물 사이에 들어서며,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듯한 15m 높이 뾰족한 모양의 작은 기념 경당이다. 공사비는 약 6억 원이며, 11월 말에 준공될 예정이다.

제물진두에서는 이승훈(베드로)의 증손자인 이연구ㆍ이균구, 박순집의 이모부인 손 베드로 넓적이와 부인 김씨 등이 공개 처형으로 순교했다.

교구는 2010년 제물진두 순교터로 규명된 이곳을 매입해 교구 설정 50주년이었던 이듬해부터 제물진두 성역화 작업에 힘써왔다. 순교터는 교구 성지개발위원회 김진용(마티아, 2012년 선종) 부위원장이 연구 끝에 규명해낸 것이다.

교구는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제물진 순교자 9위 현양 및 순교지 성역화 도보순례'를 이어오고 있다. 순교자 성월인 9월에는 '병인박해와 순교성지 제물진두'를 주제로 순교신앙 심포지엄도 개최할 예정이다. [평화신문, 2013년 7월 14일, 이정훈 기자]

 

 

인천교구 제물진두 순교기념관 착공



인천교구 제물진두 순교기념관 착공식에서 교구장 최기산 주교(왼쪽에서 네 번째)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시삽을 하고 있다.
 

인천교구 성지개발위원회(위원장 제정원 신부)는 11일 오전 10시 인천시 중구 항동 1가 1-13 현지에서 제물진두 순교기념관(기념경당) 착공식 및 부지 축복식을 갖고 제물진두 성역화 사업을 본격화했다.

교구장 최기산 주교가 주례한 착공식 및 부지 축복식에는 이학노 몬시뇰(인천성모병원장), 안규태 신부(교구 사무처장), 조명연 신부(교구 성소국장) 등 사제단과 제물진두 순교자 후손 대표로 이승훈(베드로) 성현의 6대손인 이병림(모니카마리아 · 87)씨 등이 참석했다.

최기산 주교는 축복식 강론에서 “이곳에서 순교하신 아홉 분을 기념하는 제물진두 순교기념관이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당이 돼서 신자들이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배우는 귀한 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인천의 절두산성지’가 될 제물진두 순교기념관은 총 공사비 6~7억 원을 들여 올해 안으로 완공할 계획이며 지상1층, 최고높이 15m, 대지면적 109.1㎡, 연면적 39.9㎡ 규모다.

제물진두는 병인박해(1866년) 이후 이승훈 성현의 증손자 이재의의 아들 연구 · 균구, 이승훈 성현의 손자 이재겸의 부인 정씨 등 9위가 순교한 곳이다. [가톨릭신문, 2013년 7월 21일, 박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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