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강론자료

연중 26 주일-다해-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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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신부 [gold] 쪽지 캡슐

2001-09-28 ㅣ No.347

연중 제 26 주일 ( 다해 )

 

            아모스 6,1ㄱ. 4-7        1디모테오 6,11-16        루가 16,19-31

        2001. 9. 30.

 

주제 : 하느님 분노의 목적(?)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연중 26 주일이고, 9월 순교자 성월을 보내는 마지막 날입니다. 사람은 특별한 시기를 정해놓고 삽니다. 신앙에서 정하는 것이라면, 오늘까지는 9월 순교자 성월을 말하고, 내일부터 시작할 10월에는 신앙전교의 성월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생활에서 내일 맞는 추석 명절 때문에 이곳에 앉아계신 여러분의 마음도 바쁠 것이고, 마음은 벌써 고향을 향하여 떠났을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생각과 몸이 바쁘기는 하지만, 일은 바쁜 사람이 합니다.  여유 있고 느긋한 사람들은 늘 그 생각을 앞세우는 사람들이기에 자신만의 세계에서 그 삶의 균형을 깨는 생활은 부담스러워합니다. 마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자세는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바쁜 생활 가운데서 바쁘게 일하면서도 지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삶에 새기는 시간입니다.

삶에서 발견하던 불의에 맞서 정의를 외치는 아모스 예언자는 ‘넋 놓고 제 몸만 챙기는 사람들을 향하여 경고의 말’을 전하고, 디모테오주교에게 사랑의 명령을 전하는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현실에서 책임을 다하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만나는 일과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따라 ‘하느님은 우리의 생활을 판단하실 거라는 경고’가 담긴 말씀을 복음으로 들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선언은 무섭습니다.  그러나 그 하느님의 선언이 무서운 것은 실제 생활에서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약 3000년 전 외쳤던 아모스 예언자의 외침은 그래서 오늘도 유효한 것입니다.  몸은 이곳에 와 있되 마음은 다른 곳으로 여행 보낸 분이 없으리란 법 없고, 몸과 마음이 이곳에 함께 와 있기는 하되 지금 머리 속은 딴 생각을 할 분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늘 한 가지 마음을 갖고 살기는 힘듭니다. 사람이기에 애초에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일은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아모스 예언자를 통하여 외치는 하느님의 선언은 그들의 현실 삶이 당장 바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현실이 당장 바뀐다면 사람은 하느님을 원망하고 탓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바뀐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만든 현실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다른 민족들에게 끌려가 고생한다는 선언은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땀을 흘리고 애써 번 재물을 아무런 대가(代價)없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준다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모험입니다. 그러나 자신만을 귀중하게 아는 사람들은 그 모험을 하기를 두려워합니다. 화사한 옷을 입고 자신의 배만을 쳐다보며 살았던 부자와 그 반대의 위치에서 자비를 청했던 라자로의 이야기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만을 챙겼던 사람도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특별한 선물을 하느님께 요구합니다. 전혀 미안한 마음 없이 말입니다. 그러나 될 수 있는 일이 있고, 아무리 애원하고 부탁해도 들어줄 수 없는 일은 분명 존재하는 법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서 합당하게 들려줄 수 있는 소리는 아모스 예언자의 외침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에게 들려온 하느님의 소리가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거나 내 발 밑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라면 하느님의 분노를 올바로 들어야 합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이 소리를 무시했습니다. 예언자 아모스의 외침에 귀를 봉하고 살았습니다. 그랬던 그들에게 다가 온 것은 예언자의 선언 그대로 ‘역사에서 이름이 사라지는 일이었고 행복은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소리를 귀담아듣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만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준비된 것은 별로 없는 법입니다.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보여주셨던 모범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서 수차례 반복해듣는 이야기도 ‘실제 우리 생활과 원칙사이에 생기기 쉬운 차이점’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어떻게 알아듣느냐의 차이는 분명 존재합니다. 그 차이에 따라 우리가 맺을 열매도 차이 나는 것입니다.

 

잠시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보시겠는지 돌이켰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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