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강론자료

2023-07-16.....연중 제15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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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3-07-15 ㅣ No.2389

연중 제15주일(가해)

이사야 55,10-11 로마 8,18-23 마태 13,1-9

2023. 7. 16. 농민주일

주제 : 하느님께서 담으신 사명

오늘은 교회공동체가 농민주일로 기억하자고 권고하는 날입니다. 농민은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선물을 사람의 눈에 보이도록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농민이 기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사명을 통해서 생산한 것들이 우리의 생명과 목숨의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농민주일을 기억하자는 의미를 제대로 생각한다면, 농촌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돈을 주고 사서 소비하자는 일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어야 할 것입니다. 농민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느님의 섭리를 세상에 드러내겠습니까?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농촌에 사는 사람들을 돕는다는 일로 끝나는 일은 아니기에 올바른 판단과 행동은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만나는 생명을 담은 씨앗은 그 크기가 매우 작습니다. 사람이 먹고 생명을 유지하는 농산물로 생각한다면, 생명을 전달하는 역할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과실이나 과일의 크기에 비교하면 씨앗은 매우 작습니다. 하도 작아서 과연 그 크기의 씨앗에 생명이 되는 힘이 어떻게 담길까 하는 생각도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크기는 작지만 그 작은 씨앗을 세상에서 뛰어나다는 과학을 앞세우는 사람이 만들지 못하는 현실은 바르게 봐야합니다.

 

오늘 짧게 들은 마태오복음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씨앗에 관련된 내용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우리가 논밭에 씨앗을 뿌리면서, 내가 뿌린 씨앗이 30배의 결실을 낼까, 예순 배의 결실을 낼까, 100배의 결실을 낼 것인지 미리 짐작할 수 있을까요? 땅에 뿌린 씨앗이 좋은 결실을 내는 데는 그 씨앗이 뿌려지는 땅의 상황이나 역할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내가 뿌릴 씨앗의 상황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니, 씨앗을 받아들이는 땅의 상황이나 그 조건이 씨앗이 결실을 만드는데 역할을 크게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내가 만나는 현실은, 새들이 씨앗을 바로 쪼아서 먹을 단단한 흙일까요? 아니면 흙은 적지만, 씨앗이 자라기에 힘겨운 돌이 많은 밭이겠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가시덤불이 있는 곳이라서 삶이 힘들거나, 씨앗에게 좋은 땅이겠습니까?

 

지난 주간부터 장마가 시작되고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자연의 놀라운 변화를 겪을 때마다 하기 쉬운 소리가 있습니다. 나는 잘못한 것도 없고,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자연의 분노를 내가 왜 겪어야 하느냐고 묻는 소리입니다. 물론 내가 지금 묻는다고 해서 대답을 바로 얻을 것은 아닙니다.

 

내가 삶에서 곤란을 겪을 때, 죄를 지었기 때문에 내가 당하는 어려움일까요? 그때 곤경을 겪으면서, 자기의 삶을 돌이키는 사람이 생각하기를 자기가 죄를 지었기에 곤란을 당한다고 인정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한결같이 사람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자연이나 그 자연을 다스린다는 하느님에게 책임을 물으면서 우리가 하느님을 원망하는 일은 당연할 일의 한 가지일 것입니다. 장맛비가 오는 때가 되면 겪는 이러한 어려움은 정말로 자연의 조화가 아니라, 하느님께 우리에게 화를 내시고, 우리에게 내리는 징벌일까요?

 

우리나라는 집을 지어도 물이 잘 모이는 곳인 논과 밭을 메워서 짓고, 도로를 내도 멀쩡한 깎아 가파른 곳의 한쪽에 길을 냅니다. 멋있는 별장을 짓겠다고 산을 깎아서 돌담을 쌓고 나만이 좋은 환경을 즐기겠다고 그 위에 위태롭게 집을 짓습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자연의 모습을 읽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일을 피하고 자연과 대화하는 일을 무시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이 요동칠 때 나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하느님이 나를 향하여 화를 내신다고 원망하고 또 원망합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떨어져서 하느님께서 담으신 사명을 실천하고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 이사야예언자의 선언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언자의 선언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사람이겠습니까?

 

사람은 자기의 힘으로 생명체를 만들지 못해서 그렇지, 이미 하느님보다 더 높은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서 사람의 세상을 내려다봅니다. 그러면서 나를 찾아온 여러 가지 잘못된 일의 결과와 그 책임은 하느님에게 묻습니다. 이때 하느님께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고 해서, 그 일은 과연 하느님께서 사람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돌아본다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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