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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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인간의 아름다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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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4-10 ㅣ No.866

[허영엽 신부의 ‘나눔’] 인간의 아름다운 마음

 

 

학창 시절 친구들과 영화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를 본적이 있었습니다.

 

남자 주인공 헨리는 야전병원의 운전사로 전선에서 두 다리에 부상을 입고 입원한 이래 간호사 캐서린 버클레와 사랑에 빠집니다. 캐서린의 임신을 안 두 사람은 전선을 탈출하여 스위스에서 출산을 앞두고 행복한 앞날만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여주인공이 출산 중 문제가 생겨 아이가 죽고, 여주인공도 죽음을 맞게 됩니다. 두 주인공은 병실에서 마지막 만남을 가집니다. 그때 죽어가는 여주인공이 혼자 남아있게 될 남주인공을 위로하는 장면은 나에게 큰 인상을 주었습니다. 부인이 살아남은 남편에게 “당신은 내가 모두 내가 챙겨주어야 하는데 이제 걱정이 돼요. 밥은 누가 차려주고 옷을 누가 준비할까요.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니 너무 걱정이에요. 부디 나를 잊고 좋은 사람을 만나 그녀가 당신을 돌봐주길 바라요.”

 

지금 죽어가는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을 걱정하며 숨을 거두는 것만큼 큰 사랑이 있을까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을 지키려다 끝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허무주의, 그리고 인간의 한계성을 잘 보여주는 이 작품은 1932년과 1957년 두 번에 걸쳐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한 명작영화로 남아있습니다.

 

인간의 죽음은 그야말로 마지막 순간인데 그때 가장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말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기억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보좌신부 때 일 년 넘게 환자 봉성체 하셨던 할머니께서 갑자기 위독해져 숨 가쁘게 달려가 병자성사를 드렸습니다. 잠시 후 일어서려는 데 할머니가 제 손을 잡으셨습니다. “왜 할머니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할머니는 떨리기는 했지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제 둘째 아들은 성당에 열심히 다니다 결혼하고 성당을 쉬었는데 갑자기 죽었어요. 둘째 아들의 구원을 위해 평생 기도했어요.” 옆에서 있던 따님이 “둘째 오빠가 교통사로로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있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병자성사를 못 받은 것을 평생 걱정하셨다”고 전해주셨어요.

 

나는 할머니의 귀에 대고 말을 했어요. “할머니, 사정상 직접 병자성사를 못 받아도 본인이 어느 순간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면 하느님이 용서해주세요. 아드님은 분명 그런 시간이 있었을 거예요.” 그러자 할머니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안심하셨어요. 성당에 돌아오자 사무장님이 뛰어나오며 할머니가 선종하셨다는 소식을 알려주셨습니다. 죽어가는 어머니가 아들을 걱정하는 모습은 지금도 목이 메입니다. 그 할머니를 다시 생각하니 마지막에 보여준 미소가 그래도 마음을 훈훈하게 합니다.

 

 

죽음의 순간에 가장 마음 속 깊은 곳의 말 하게 돼

 

그리고 또 한 명은 예전에 내가 대신학교에서 영성지도를 했던 A 신학생입니다. 그 신학생은 잘생기고 큰 키에 운동도 잘하고, 마음도 착해 한 달에 한 번씩 몇 년을 만나니 자연스레 친해졌습니다. 하루는 학교에 갔는데 대표학생이 A 신학생이 오늘 갑자기 쓰러져 입원했다고 전해주었어요, 별일 아닐 거라는 말도 덧붙여 큰 걱정은 안 했습니다. 그 A 신학생은 다음 달에도 면담을 못 해 알아보니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했습니다.

 

마침 병원 갈 일이 있어 A 신학생의 병문안을 위해 엘리베이터에 탔다가 우연히 그의 주치의를 만났습니다. 그의 병세는 악성 뇌종양이며, 상황이 몹시 안 좋다는 말을 조심스레 덧붙였습니다. 너무 종양이 커 수술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A 신학생의 병실에 갔는데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어보니 다른 병실에 가 있다고 했습니다. 일러준 옆 병실에 갔더니 A 신학생은 다른 환자를 위문하고 있었습니다. 누워있는 환자의 손을 잡고 따뜻하게 위로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 신학생은 평소에도 어렵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갖고 있었고 사제가 되면 사회복지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말도 여러 번 했습니다. 자신의 병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환자들을 위로하던 그 신학생은 정말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병원 입구까지 따라오면서 병문안을 온 나에게 수줍은 소년처럼 몹시 미안해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잘 될 거야.” 내 말에 A 신학생은 명랑하게 대답했습니다. “신부님, 다음 달 면담 때는 학교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악수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 후로 나는 두고두고 후회했습니다. 그 신학생을 한번 꼬옥 안아줄걸, 그렇게 못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 아팠습니다. 그 만남이 마지막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며칠 후 수술을 받고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오랜 시간 병상에서 고생하다가 1998년 예수님 성탄을 하루 앞둔 날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자신이 입원한 병원에서조차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던 그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흐릅니다.

 

 

고통 중에 따뜻하게 손 잡아주는 그 행동이 얼마나 따뜻한지

 

그리고 또 한 분의 자매님이 있습니다. 그분은 제가 사목하던 본당의 열심한 반장으로 봉사했고 열정적인 레지오 단원이었습니다. 갑자기 몸이 아파 입원을 했고, 암 진단을 받고 수술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자매에게 병자성사를 주러 다른 신자들과 함께 갔는데 며칠 만에 병원에서 본 그분은 얼굴이 창백했습니다. 보통 사제가 병자성사를 가면 같이 병실을 쓰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안되도록 조용히 기도하고 행동도 조심합니다. 나는 병사성사가 끝나고 다른 환자들에게 휴식을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환자가 “아닙니다. 저 아주머니가 성경도 읽어주시고 나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기도해주시는지 모릅니다. 저는 종교도 없는 사람이지만 저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신도 몸이 아픈 처지에 옆의 환자를 위해 기도를 해준다는 사실이 마음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체험이 없이는 다른 이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고. 그러나 어려운 처지에서 다른 이를 돕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근본적으로 힘없고 불쌍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끔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더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고통과 어려움을 당했을 때 다른 이의 도움은 절실해집니다. 말 한마디, 아니 아무 말 없이 따뜻하게 손잡아 주는 그 행동이 얼마나 따뜻한지 모릅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이계중 신부님께서 큰 수술을 받고 병원에 계실 때 병문안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대화가 기억이 납니다.

 

“허 신부! 어제 김수환 추기경님이 병문안 오셨는데 내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그냥 가까이 오셔서 아무 말 없이 나를 그냥 꽉 안아주셨어. 1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꼭 안아주며 위로하는 거, 아마 아주 어릴 때 어머니가 안아주신 이후로 처음인듯해.”

 

“그래서 신부님 좋으셨어요?”

 

“응, 너무 좋아서 김 추기경님 가시고 많이 울었어. 그리고 너무 많이 후회했어.”

 

“뭐가 후회되셨어요?”

 

“내가 사목자로 활동할 때 환자들을 만나 한 번도 그렇게 못한 것 같아서. 이제 죽을 때까지 보속기도를 해야 할 거야.”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4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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