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강론자료

연중 17 주일-다해-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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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신부 [gold] 쪽지 캡슐

2001-07-26 ㅣ No.338

연중 17 주일 (다해)

 

        창세기 18,20-32    골로사이 2,12-14   루가 11,1-13

    2001. 7. 29.

 

주제 : 기도의 힘

 

안녕하세요.

한 여름에 들어섰습니다. 한참 더울 때는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덥다고 말할 것입니다. 자꾸만 다짐해서 좋은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내가 원치 않을 결실을 맺는 일을 만들기 쉬운 때입니다.

 

여름휴가를 갈 때가 되었습니다. 초등부 중고등부 주일학교 복사단 여름행사도 이번 주간과 다음주간에 있습니다. 자녀들이 마음을 모아 할 일들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기도에 한번쯤은 기억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삶에서 기도를 여러 차례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감사의 기도를 바치고, 아침기도를 하며 식사 전·후 기도를 몇 차례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두워지면 저녁기도와 더불어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봉헌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기도를 통하여 우리 현실 가운데서 무엇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 것이기에 그 결과를 예측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만 그 효과를 한번쯤 생각해보는 일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지난주일 창세기 독서에서 우리는 손님들을 정성껏 맞이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헌데 그 손님들은 하느님의 뜻을 집행하러 온 천사였습니다. 그 천사들이 하느님의 뜻을 집행하러 소돔과 고모라로 간 다음, 우리는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의 뜻을 돌려보려고 애쓰는 아브라함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고 우리의 생각을 적용시켜 하느님의 뜻을 돌려보려는 것을 '기도(祈禱)'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내 생각이 이루지기를 기대하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생각과 내가 가진 바람이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기를 바래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구원되기를 바라는 분이 하느님이라고 우리가 믿는다면, 하느님을 욕심쟁이로 부르는 일은 피해야 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해바다의 남쪽 길쭉한 곳, 바다보다 더 깊은 해저 깊이 300미터의 물 속에 가라앉았을 거라는 전설의 도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도시는 '하느님의 뜻을 존중하며 실천하며 살았던 의인(義人) 10명'이 없어서 세상에서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알아내는 일은 쉽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세상이 구원받고 하느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을 우리가 보려면, 하느님의 뜻을 존중하고 따르려는 의인들이 적어도 하느님이 정하신 기준에 필요한 만큼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때는 커다란 세상에 노아의 가족 8명만이 의인으로 살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는 4명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세상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의 숫자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늘날 이 세상이 아직은 하느님의 분노를  피해서 살고 있다면, 어떤 의인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扶持)하고 있는지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조금은 연장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심판을 오지 않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올바른 기도란 주저앉아서 하느님의 뜻이 나중에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부르짖고 청하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그 기도에 맞추어 변화되는 일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실천하려면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삶의 조건들을 성실하게 실천해야 할 일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올바른 자세와 세상살이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의 조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조건 중에 대표적인 것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 일로 내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삶의 평화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먼저 주는 선물로써 시작하고, 그 선물이 상대방의 삶에 결실을 맺을 때 완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홀가분해진 우리의 빚 문서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또한 그렇게 없어진 무거운 등짐을 내가 다시 만들려고 하지는 않는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짜증내기 쉽고 무더운 계절을 어떤 마음으로 지내는지, 그리고 지금 내가 현실을 지내는 모습으로 과연 하느님의 선물을 청구할 자격이 있는지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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