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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겸손한 도구(더닝-크루거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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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4-10 ㅣ No.867

[레지오와 마음읽기] 겸손한 도구(더닝-크루거 효과)

 

 

1995년 미국 피츠버그의 두 은행이 대낮에 덩치 큰 중년 남자에 의해 털렸다. 그는 가면도 쓰지 않은 데다 은행을 털고 나오는 길에 감시 카메라를 보고 웃기까지 하였다. 당연히 그의 범행은 카메라에 선명하게 찍혔고 그날 밤 체포되었다. 그런데 감시 영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그는 의아해하며 “레몬주스를 발랐는데?”라고 하였다.

 

레몬주스로 종이에 글을 쓰면 보통 글은 보이지 않지만 열을 가하면 드러난다. 이는 비밀편지를 쓸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인데, 그는 이 지식을 이용하여 은행을 털었다. 종이처럼 자신의 얼굴에 레몬주스를 바르면 보이지 않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맥아더 휠러’. 경찰에 따르면 그는 정상적인 지능을 가졌으며 그날 술이나 마약에 취한 것도 아니었다.

 

이 뉴스를 접한 미국 대학교수 더닝과 크루거는 이런 무모한 자신감에 대한 궁금증으로 대학생 45명을 모아 실험을 했다. 먼저 피실험자들에게 20가지가 넘는 문제로 논리적 사고를 알아보는 시험을 치게 했다. 그리고 그 시험에서 자신의 점수가 전체의 상위일지, 하위일지를 예상해 보라고 했다. 그러자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대부분 결과와 상관없이 자신의 성적이 중상위권이라고 예상했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 점수가 낮은 학생들은 자신이 중간보다 높을 것으로 생각했고, 반대로 실제 점수가 높은 학생들은 자신의 수준이 낮을 거로 생각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특히 이 연구에서 주목받은 것은 실제 성적이 하위 12%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자신의 예상 성적을 최소한 상위 32%에 들 것으로 추측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실력이 낮은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는 등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학생들이 시험을 본 후 서로 답을 비교하는 과정에서도, 하위 25%에 해당했던 학생들은 자신보다 정답을 잘 맞힌 학생들의 답을 보고도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결국 이 실험은 ‘실력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믿고, 오히려 숙련된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상대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을 두 교수의 이름을 따 ‘더닝-크루거 효과’라고 한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대개 우리는 어떤 분야에 대해 아는 게 없으면 아예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얕은 지식이라도 있을라치면 단편적인 상황만 보고 섣부르게 판단한 것을 자신 있게 말할 가능성이 크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혹은 ‘무식하면 용감하다’ 등은 이런 현상을 일상에서 자주 볼 수 있음을 드러낸다.

 

주의해야 할 것은 짧은 지식으로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기도 한다는 데 있다. 그들의 모습이 자신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조직의 대표나 정치인 등 힘 있는 자리에 오르면, 자신의 무지를 알지 못하고 오만과 독선에 빠져 고집스러운 경영방침이나 정책을 내세우게 된다. 결국 그 조직과 국가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데, 그들은 자신이 섣부른 지식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여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기도 한다.

 

유아 영세자인 B형제는 오랫동안 냉담하다 경제적 기반을 이룬 50대 중반에야 비로소 성당에 나오면서 레지오 단원이 되었다. 단원 생활 초반에는 자신의 교리 지식이 걱정되었지만, 회합을 통해 단편적인 교리들을 알게 되면서 다소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 본당 수녀님의 소개와 본인의 외인 권면 결과로 이 년 만에 다섯 명의 대자가 생겼다. 그런데 그의 돌봄에도 불구하고 대자 한 명은 영세한 지 일 년 만에 신천지로 가고, 두 명은 냉담을 하였다. 이에 충격을 받아 고민하던 그는, 선배 단원과의 대화에서 그들이 변한 이유가 자신의 섣부른 교리 지식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말한다. “저는 4대 기본 교리 중의 하나인 상선벌악을 착하게 살면 현세에서 복을 받는다는 뜻으로 생각했습니다. 자연히 그런 생각이 대자들에게도 강조되었는지 대자들은 영세 후에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더라고요. 그런데 기대처럼 일이 잘 안 풀리니 힘들어하다 전례 참석도 부담되니 쉽게 신앙을 저버린 것 같습니다. 저는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하느님을 마치 ‘내가 다 이해하고 있다’는 교만으로 그들의 영적 성숙을 방해한 셈이었으니까요. 이번 일을 통해 지속적인 기도와 공부가 없으면 누구나 교만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겸손은 레지오 사도직 활동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생각의 오류 중 하나인 ‘더닝-크루거 효과’는 교육 수준과 상관없이 누구나 빠져들 수 있는 함정이다. 한 사람이 갖는 지식과 경험은 분명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겸손이기 때문이다. 대개 우리는 겉으로 자신을 낮추거나 다소 자신감이 없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겸손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겸손의 본질과는 다르다. 겸손은 ‘자신이 하느님 앞에 어떤 존재인가를 인정하고 솔직히 받아들이는 것’(교본 51쪽 참고)이기 때문이다.

 

겸손은 성모님의 군사인 우리에게 더욱 중요하다. ‘세속 군대에서는 용기․지식․신체 결함 등이 자격 미달의 요건이지만, 레지오 단원의 경우 자격 미달은 바로 겸손의 덕이 부족한 데에 있’(교본 52쪽)기 때문이다. 실제로 활동 대상자들은 겸손한 단원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니 그것은 활동의 결과를 향한 첫걸음이 된다. 뿐만 아니라 동료 단원들에게도 겸손이 있어야 초자연적인 형제적 사랑으로 함께 활동할 수 있다. 그러니 ‘겸손은 레지오 사도직 활동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교본 50쪽)임을 명심하고 더욱 겸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편인가? 아니면 적어도 내가 아는 지식이 절대적으로 맞는다고 여기고 있는가? 혹은 다른 사람들이 나의 생각을 비판하면 마음이 불편하여 피하는가? 아니면 적어도 그런 상황에서 변명부터 먼저 말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나는 겸손의 덕과는 멀어져 있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사도 바오로는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로마 11,33)라고 했다. 이처럼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미소한 존재에 불과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겸손의 표본이신 성모님을 닮을 수 있는 레지오라는 장치에 우리가 몸을 담고 있는 한, 겸손의 덕은 그리 멀지 않음도 기억하자!

 

‘(레지오 단원은) 성모님이 이 세상에 은총을 내리시는 데 사용하시는 겸손한 도구이다.’(교본 518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4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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