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프란치스칸 영성42: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볼 수 있을 때 하나됨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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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5-25 ㅣ No.1600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42)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볼 수 있을 때 하나됨 체험

 

 

- 프란치스코 성인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과 하나됨을 체험할 수 있다”고 설교하면서 “나의 하느님과 모든 것”이란 단순한 기도를 자주했다. 조토, ‘새들에게 설교하는 프란치스코 성인’, 프레스코화, 성 프란치스코대성당, 아시시.

 

 

한 남성이 어린 시기를 거쳐 어른이 되는 고대 남성 입문 예식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바로 부족 전체와 부족의 영은 물론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과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하는 것에 있다. 말하자면 한 남자가 자신의 내외적 힘을 올바르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모두 연결된 존재의 위대한 테두리 안에 포함되는 체험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세상에 파견하시면서 아무것도 지니지 말 것을 당부하신 것에는 이런 심오한 의미가 들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한다. 둘씩 짝지어 보내지만 결국은 모든 존재가 조화되고 어우러져 하나의 유기체로 존재하는 하느님 나라의 현실을 살아 체득하고 선포하라는 것이 예수님 제자 파견의 핵심이 아니겠는가! 프란치스코 성인도 자신의 삶에 합류하는 형제들이 모였을 때 예수님처럼 형제들을 둘씩 짝지어 하느님 나라의 현실을 선포하라고 세상에 파견했다고 한다.

 

요즘처럼 개인주의적 가치 체계나 개인이나 집단을 우선으로 하는 지나친 경쟁 구도와 상거래식 이해관계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의 정신세계 속에 깊이 파고들어 사회 병리 현상을 더욱더 심각하게 부추기는 것은 사람들, 특히 남성들이 전체와 하나 되는 입문 예식과 통과 의례를 거치지 못한 채 겉으로만 어른이 되어가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리처드 로어는 저서 「Adam’s Return-The Five Promises of Male Initiation」(아담의 귀환- 남성 입문에 있어 다섯 가지 약속)에서 고대 남성 입문을 통해 다음의 다섯 가지 진리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① 인생은 고되다. ② 당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③ 당신의 인생은 당신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④ 당신은 통제력을 갖고 있지 않다. ⑤당신은 죽을 것이다. 이 다섯 가지 진리를 경험한 자만이 진정으로 한 남성(어른)으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며 그때 비로소 그는 이 삶 안에서 다음의 다섯 가지 약속을 얻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① 삶이 고되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하느님과 존재의 위대한 사슬 안에서 모든 것과 연결될 때 그 삶은 가볍고 편안해지는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습니다.”(마태 11,28)

 

② 당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부분적 전체로서 우주적 삶에 참여하게 될 때 당신은 전체로서의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모릅니까?”(루카 10,20)

 

③ 당신의 인생이 여러분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지만, 결국 모든 것이 연결된 현실에 참여함으로써 당신의 인생이 우주 전체에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④ 당신은 통제력이 없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당신이 자신의 통제력을 놓을 때 온전히 책임을 져주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그분 안에서 진정한 통제력을 얻게 된다: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루카 12,25)

 

⑤ 여러분이 죽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존재의 원천에 연결되어 살아갈 때 이 세상 삶을 넘어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8-39)

 

프란치스코 성인이 드렸던 매우 단순한 기도,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시여!”(Deus Meus et Omnia!)는 이 가장 위대한 존재의 진리에 감탄하며 하느님께 드렸던 기도이다. 사실 이 말을 제대로 해석하자면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가 아니라 ‘나의 하느님과 모든 것’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라고 한다면 ‘Deus et Omnia Meus’나 ‘Deus Meus et Omnia Meus’로 썼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번역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고, 일반적으로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으므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단순한 기도를 우리가 지금 나누고 있는 ‘존재의 위대한 사슬’의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그냥 ‘나의 하느님과 모든 것’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즉 하느님은 모든 것에 스며들어 계신 분이시기에 그 모든 것과의 연결고리 안에서 살아가며, 그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과 하나 됨을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도 이것을 염두에 두고 그 기도를 바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5월 23일,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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