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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가톨릭 신학: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법: 자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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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1-16 ㅣ No.4429

[가톨릭 신학]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법 : 자연법

 

 

본당에 나가 특강을 하다 보면 신자분들께 “신부님, 이것은 죄인가요, 죄가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질문을 받게 되면 저는 마태오복음 19장 16절의 부자 청년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이는 모든 신앙인이 품는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우리는 윤리적 선이 우리의 삶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며 어떻게 그것을 실천해야 할지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다소 의아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이야기하는 윤리는 때로는 엄격해 보이며 세상의 흐름과 동떨어져 있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종종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채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강구합니다.

 

하지만 과연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이 정말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하느님의 인간을 향한 구원 의지는 그리스도인만을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오해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보편적인 구원 성취를 위해 인간에게 분명한 지도를 건네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우리는 ‘자연법(lex naturalis)’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모든’ 인간의 마음에 새겨져 있는 도덕 법칙이고, 보편적인 윤리를 위한 객관적인 토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자연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십계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연법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십계명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 자연법은 불변하며 언제나 근본적으로 유효하게 남아있습니다. 이 원칙은 하느님의 법이므로 결코 파기될 수 없으며 인간의 마음에서 제거할 수도 없습니다. 설사 어떤 시대가, 어떤 문화가 이를 어긴다 할지라도 결국 이성이 올바른 질서를 불러일으켜 다시금 되살아나게 합니다. 하느님의 법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윤리적 가르침은 모두 이 자연법, 즉 계명에서 비롯됩니다. 사형 제도, 안락사, 낙태 등과 같은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판단이 이 계명에 달려 있는 셈입니다. 이 법은 이미 하느님께서 창조 때에 인간에게 새겨주신 것이므로 변할 수 없는 진리의 빛으로 우리의 마음속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물론 때로는 특정 문화와 사상이, 각각의 개인이 여기서 벗어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인간은 유한하고 때로는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서 죄가 비롯되고 죽음의 문화가 탄생합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계명을 어기는 죄를 “하느님을 업신여기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만약 교회의 가르침이 지나치게 완고하게 여겨진다면, 혹은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된다면 이 자연법의 개념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자연법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주는, 하느님께 사랑을 드러내 보이는 가장 객관적이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2024년 1월 14일(나해) 연중 제2주일 서울주보 5면, 방종우 야고보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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