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강론자료

2023-08-13.....연중 제19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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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3-08-13 ㅣ No.2391

                                                     연중 제19주일 (가해)

1열왕기 19,9.11-13ㄱ            로마 9,1-5         마태 14,22-33

2023. 8. 13

주제 : 하느님의 참 모습을 대하기

우리나라를 남에서 북으로 가로지른 태풍(6호태풍, 카눈-통영상륙)도 지나갔고(8/11-아침. 361건 피해), 우리는 오늘 주일을 맞이하여 하느님의 뜻을 새기는 시간, 성당에 모였습니다. 자연의 놀라운 상황을 만나고, 그 상황을 이기는 일에 힘을 쓰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로 말합니다. 이럴 때 하는 말의 내용은,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위해서 아무 도움도 주지 않으셨다고 주장하고, 힘이 필요한 모든 일은 사람이 이겨냈다고 하느님을 향하여 원망을 말하기가 쉽습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모양으로 힘을 쓰시면, 하느님이 나를 도우셨다고 우리는 만족해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겠습니까? 내 마음에 들지 않기에, 힘든 일을 더 당해도 아쉽게 여기지 않을 이웃 나라인 일본에 재난을 퍼부었으면 내가 만족한다고 말할까요? 태평양의 바다에서 생기고, 사람이 사는 곳에 그 흔적을 남기는 태풍은 자연재해이지만, 산업이 발달하고 오염물질을 하늘로 뿜어대는 요즘은 오로지 자연재해라고 해석하기보다는 사람이 만든 오염물질이 자연에 영향을 남기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일이 되었든지 사람에게 다가온 재난은 사람이 이겨야 합니다.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로 힘든 일도 서로 협력하여 이겨내야 합니다. 나 혼자서 그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공동체라는 낱말을 생각하고, 그 힘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표현이 이런 때 해당하는 일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충실하게 산다는 사람들은 하느님에 관하여 알고 싶은 것이 많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이 계시는가 하는 질문, 진짜로 하느님이 계신다면, 나에게는 왜 이러한 불편한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는 질문, 그래서 실제로 하느님은 계시지 않거나 없는 것인데, 교회나 그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여 나를 헛갈리게 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표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여러 가지로 말하고 대답을 찾을 것입니다. 물론 각자가 질문한다고 해도 원하는 시간에 그 대답을 얻을 일은 아닐 것입니다. 내가 질문하고, 기다리기로 정한 시간이 되면 하느님께서 나에게 대답하신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대답을 모르는 일을 질문하면서, 그 대답을 얻지 못한다고 자기를 궁지로 몰아넣어 스스로 힘들게 살지만, 하느님께서 알려주지 않으면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이 하느님에 관하여 사람이 하는 질문입니다.

 

세상의 권력자인 북이스라엘의 임금, 아합에게 쫓기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엘리야예언자는 사람으로서는 일반적으로는 인정하지 않는 조용한 소리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사람이 바라는 것이라면, 산을 떨게 하고 바위를 깨는 바람이나, 산을 뒤흔드는 지진에 하느님이 계시고, 그 하느님이 나를 위해서 당신의 힘을 드러내시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겠지만,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만난 하느님은 바람이나 지진이 아니라,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였다는 것이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는 하느님의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고, 사람의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응대하신다면 우리는 그 하느님이 얼마나 마음에 든다고 말하겠습니까?

 

빵을 많게 하여, 5000명이 넘는 사람이 배고픔을 해결하는 일을 본 다음, 제자들이 만난 예수님의 모습에서도 제자들은 놀라운 일을 만났습니다. 빵을 많게 한 예수님이셨기에 물을 걸으신 기적을 당신의 몸으로 보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제자들이 느낀 것은 예수님께서 보이신 일의 의미를 깨달은 일이 아니라 자기들이 본 일이 생각외의 일이었다는 것에 놀랍니다. 사람이 대답을 정해놓고 바라보는 하느님에 관한 이러한 생각은 하느님의 뜻에 얼마나 일치하겠습니까? 사람들이 보이는 이러한 행동은 하느님의 뜻을 얼마나 실천한 것이었겠습니까?

 

사람은 필요에 따라서 정직하고 공평하게 하느님을 대한다고 말하기가 쉽지만, 실제로 사람이 하느님을 바르게 대하는지는 사람이 드러내는 행동을 보고서 판단해야 하는 일입니다. 내가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면,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나를 통하여 하느님을 찾는 올바른 삶의 태도를 드러내겠습니까? 내 곁에 있는 이웃을 위해서도 기도할 시간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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