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5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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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별별 이야기: 자녀는 부모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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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8-09 ㅣ No.1015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35) 자녀는 부모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상)

 

 

70대 레지나 어르신께서 상담실을 찾아왔다.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아 안타깝다는 하소연과 함께 자녀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려달라고 청했다. 두 아들과 막내딸 모두는 타인들로부터 부러움을 살만한 직장과 직위를 얻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자녀들이 신앙생활과는 전혀 다른 세속적 삶을 살고 있었기에 레지나 자매는 늘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로서 자녀들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데 그것을 지적하고 교정해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녀들을 만나보았다. 어머니와 좋은 관계로 있고 싶지만 만나거나 통화를 하면 항상 그 결과가 안 좋아 자신들도 힘들다고 고통을 호소하였다. 어머니의 어떤 점이 그렇게 불편하냐고 물으니 어머니의 종교에 대한 신념을 문제의 중심으로 삼았다. 자신들과의 갈등의 중심에는 신앙과 관련된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화가 진행됨에 따라 어머니와 자식들 간의 문제의 핵심은 신앙적인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가족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적 역동(마음의 움직임)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서로에게 원하는 심리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불만이 숨어있었다. 결국, 심리적 욕구가 신앙적인 문제로 바뀌어 표현되고 있었을 뿐 사실 가족들 모두는 서로에게 자신이 원하는 그 무엇을 요청하고 있었다.

 

어느 날 큰아들은 손자 손녀가 할머니를 위해 영상편지를 준비했다고 하면서 자녀들의 모습과 목소리가 담긴 동영상을 찍어 어머니 카톡으로 전송했다. 아이들은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으면서 “할머니 사랑해요”라는 고백과 함께 하트를 손으로 그려 보여드렸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배운 아이돌의 춤을 할머니에게 보여드린다며 열심히 음악에 맞추어 율동을 시작하였다. 큰아들은 손자 손녀가 할머니를 위해 보낸 영상편지와 춤사위를 보고 어머니가 행복해하실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흐뭇해졌다. 그토록 보고 싶은 손자 손녀가 할머니를 위해 사랑을 고백하고 율동까지 선보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영상을 보여드리고 난 후 어머니로부터 돌아온 반응은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실망감을 넘어 차라리 영상을 보내드리지 말 것을 하며 후회감이 밀려왔다.

 

사랑하는 손자 손녀의 사랑 고백이 담긴 영상편지를 받아 본 어머니는 두말할 것 없이 기쁘고 행복했다. 영상으로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더 빨리 만나고 싶고 더 많이 사랑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레지나 자매는 큰아들이 보내 준 영상을 보면서 하느님께 이 아이들이 제발 하느님 뜻 안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하기를 기도하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큰아들에게 답장을 보냈다.

 

“바오로야, 보내준 영상 고맙게 잘 보았다. 우리 손자 손녀가 건강한 것처럼 보이니 한결 마음이 놓이는구나. 할머니를 위해 영상편지를 보내준 미카엘과 라파엘라에게 고맙다고 전해주어라. 영상을 보면서 늘 엄마가 하는 기도이지만, 우리 손자 손녀가 하느님을 떠나지 않고 늘 하느님 뜻 안에서 살아가도록 기도하였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꼭 좀 들어주면 좋겠구나. 아이들에게 제발 햄버거 같은 즉석 음식을 먹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게다가 콜라는 이빨에 아주 안 좋은데 아이들이 그걸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엄마로서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춤을 추는 것은 보기가 영 좋지 않구나. 아이들이 립스틱을 바른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지만 그 나쁜 성분이 몸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제발 화내지 말고 이 어미의 충고를 잘 받아주면 좋겠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8월 9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36) 자녀는 부모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중)

 

 

레지나 자매는 아들이 보내 준 손자 손녀의 재롱을 보며 사실 기쁘고 행복했다. 하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는 메시지를 보면 언제나 부족한 점이 많아 보였다. “기쁘다” “행복했다”라는 직접적인 감정의 표현보다는 “마음이 놓인다”는 좀 더 누그러진 표현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이 놓인다”는 표현은 기쁘고 행복한 마음을 표현한 말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잘못 들으면 “걱정을 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이것은 기쁘고 행복한 어머니의 마음을 전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아들이 미덥지 않고 걱정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게다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걱정이 되었다”는 표현들은 자식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레지나 자매는 아들에게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들이 손자 손녀를 제대로 교육하도록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는 자식을 끝까지 교육하고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 레지나 자매는 따라서 부모의 조언이 모두 듣기 싫은 잔소리로 매도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레지나 자매에게 “아들이 손자 손녀의 모습을 찍어 어머니에게 보낼 때 혹시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 했을 것 같으냐”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했다. 레지나 자매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손자 손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으니 어느 정도 자신의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물론 레지나 자매는 어머니로서 아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양육과 관련된 할머니로서의 걱정과 훈계는 그 고마움에 대한 표현이 아들에게는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또 하나의 이야기를 꺼내보면 다음과 같다. 막내딸이 모처럼 가족이 함께 식사하면 좋겠다면서 부모님과 오빠들을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초대했다. 즐거운 식사와 더불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절정에 다다를 무렵, 막내딸은 이 저녁 식사를 초대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남편의 회사가 최근 어려움에 처해 결정적인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남편이 진행한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회사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사장으로 승진했으며 앞으로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다고 약간의 자랑스러운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버지를 비롯한 오빠들은 모두 한결같이 기뻐하면서 매부가 똑똑하고 대단하다며 칭찬과 축하를 마다치 않았다. 어머니인 레지나 자매도 가족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면서 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 서방이 회사에서 인정받아 승진했다니 정말 축하하고 기뻐할 일이구나. 그런데 이럴 때일수록 더 겸손하게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단다. 하느님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절대 이런 경사가 생길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해. 모든 것이 하느님이 해주셨기에 가능한 것인데, 마치 자기 자신이 잘해서 일도 잘되고 승진을 한 것처럼 생각한다면, 하느님은 그 교만을 고쳐주시기 위해 베풀어 주셨던 은총도 거둬가실 수 있는 분이란다. 그러니까 이럴 때일수록 경거망동하지 말고 더 겸손하게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도록 하자꾸나. 우리는 하느님 없이는 결코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단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8월 16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37) 자녀는 부모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하)

 

 

모두 옳은 말씀이고 충분히 이해되는 말씀이지만 어머니는 왜 하필 꼭 그날 그 장소에서 그런 말씀을 하셔야만 했는지 막내딸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간의 힘으로 이룬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도와주신 것이라는 말씀의 뜻은 알겠으나 사실 그 속에는 사위를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오히려 무시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몹시 상할 수밖에 없었다.

 

손자 손녀의 재롱을 보여드리며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던 큰아들은 오히려 어머니가 손자 손녀의 건강을 걱정하도록 만들어 결국 양육 지도를 받고 말았다. 남편의 승진을 축하받고 싶어 가족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 막내딸은 오히려 사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느낌과 함께 신앙 교육을 받고 말았다. 자녀들은 어머니와의 소통이 늘 이러한 방식이었기에 시간이 갈수록 어머니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어머니로서 레지나 자매는 자식들에게 해주어야 할 당연한 말을 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결국, 이 가정의 부모와 자녀들은 서로 가까이 가고 싶지만 다가갈수록 더 아프기에 결국 멀어지게 되는 ‘고슴도치 사랑’을 하고 있었다.

 

이 사연은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갈등 유형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 해결 방법은 너무도 간단하다. 즉 부모는 자녀가 원하는 말을 해주면 되고, 자녀는 부모가 하고 싶은 말을 들어주면 된다. 서로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먼저 확인하고 그 욕구를 먼저 들어주려고 노력한다면 갈등은 쉽게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욕구를 먼저 충족하고 싶은 마음이 상대의 욕구를 들어주고 싶은 마음보다 앞서게 되면 갈등은 여지없이 발생하게 된다.

 

큰아들은 어머니로부터 양육 지도가 아니라 기쁘게 웃는 얼굴과 행복한 미소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막내딸은 신앙 교육이 아니라 축하와 격려의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레지나 자매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보다는 자녀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과 행동을 우선적으로 표현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자신은 답답하겠지만, 자녀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로서 이 답답한 마음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이런 식으로 자식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자녀에게 필요한 교육을 해주어야 할 부모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자녀에게만 맞춰 살아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자식이 싫어해도 해야 할 말은 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가 아닐까? 레지나 자매는 이러한 딜레마에 걸려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사실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시기는 20살 이전까지라는 유효기간이 존재한다. 유효기간이 지난 음식을 먹게 되면 장기에 탈이 날 수도 있고 심지어 건강에 위험이 따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성인기에 접어든 자녀를 아동기 방식으로 교육하게 되면 서로에게 상처가 생기거나 심지어 관계가 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유효기간이 지났다 하더라도 자녀들과 갈등 없는 교육과 소통이 가능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부모가 자녀에게 온전한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어주고 존중해 준다는 구체적인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온전히 독립된 성인으로 인정받고 존중받은 자녀들은 부모의 그 어떤 교육이나 훈계에도 마음을 열고 수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하지만 온전한 성인으로 인정과 신뢰를 얻지 못한 자녀들은 부모의 모든 사랑의 표현들을 한결같이 자신을 ‘못난이’로 비난하는 말로 인식한다.

 

아무리 좋은 약도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그 약은 그 사람에게 맞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훈계도 자식에게 역효과를 가져온다면 그것은 사랑의 교육이라고 말할 수 없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8월 23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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