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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예루살렘의 현 상태 유지하라 한목소리, 트럼프의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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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2-18 ㅣ No.1749

“예루살렘의 현 상태 유지하라” 한목소리


트럼프 미국 대통령 ‘예루살렘 수도 인정’ 발언에 성지 성직자 우려 쏟아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 발표로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과 반미(反美) 감정이 확산하고 있다. 7일 요르단 수도 암만에 있는 미국 대사관 근처에서 시위대가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하는 캐리커처와 예루살렘 사진을 펼쳐 보이며 항의하고 있다. 캐리커처에 “미국이 아랍의 지도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암만(요르단)=CN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한 데 대해 성지에 있는 성직자들도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예루살렘 라틴 총대교구 소속의 다비드 누하스 신부는 CNA 전화 인터뷰에서 “예루살렘은 건드리면 폭발하는 곳”이라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게 될지 생각만 해도 두렵다”고 밝혔다. 이어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는 국제법을 미국이 외면한 데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교황청도 그 국제법을 일관되게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 국제법은 예루살렘을 어떤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도시로 선포한 유엔 결의안 제181호를 말한다.

 

예루살렘에 상주하는 그리스도교 종파 대표 13명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도시이자, 우리와 전 세계를 위한 평화의 도시”라며 “갑작스러운 변경은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아랍 세계, 국제사회는 “예루살렘의 현 상태(Status Quo)를 존중하라”고 한목소리로 촉구하고 있다. 교황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몇 시간 전인 6일 수요 일반 알현 시간에 “모든 당사국이 유엔 결의에 따라 현재 상황을 존중할 것을 진심으로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잔혹한 갈등으로 얼룩진 이 세상에 새로운 긴장이 더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지혜와 신중한 분별력을 주님께 청한다”고 기도했다.

 

이 같은 호소는 처음 나온 게 아니다. 지난 10월 예루살렘의 그리스 정교회 총대주교 테오필루스 3세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도 “모두가 평화롭게 살려면 현재의 법적 지위가 지켜져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고통의 소용돌이가 끝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예루살렘, 특히 동예루살렘 구시가지는 그리스도교ㆍ유다교ㆍ이슬람교 등 3대 종교가 ‘심장부’처럼 여기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현장이다. 유다인들 선조인 고대 이스라엘 왕조의 성전 터가 통곡의 벽에 남아 있다. 또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는 바위 돔 지점에서 승천했다고 전해진다. 각 종교 입장에서 쉽사리 양보할 수 없는 땅이다. 누하스 신부 말대로 어느 한쪽이 독점하려고 건드리면 폭발하는 곳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다인 재력가들로부터 군비 지원을 받기 위해 유다인 국가 건설 지지를 약속(밸푸어 선언)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핍박받는 유다인들을 신앙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아 국가를 세우자는 시온주의(Zionism)가 한창 일고 있을 때였다.

 

이후 유다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토착민들과의 갈등이 심해지자, 유엔은 팔레스타인을 유다지역과 아랍지역으로 분할했다. 그리고 1947년 이스라엘 건국을 앞두고 예루살렘을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국제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1967년 동예루살렘 지역을 점령한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진즉에 예루살렘을 수도라고 천명했으나, 국제사회는 UN 결의를 존중해 그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나라가 지중해변 상업도시 텔아비브에 자국 대사관을 두고 있는 이유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 많은 피를 흘리고, 국제사회가 수차례 중재 협상을 벌인 끝에 도출한 최선의 평화 정착안이 이른바 ‘2국가 해법’이다. 양측은 1967년 이전 경계선을 기준으로 개별 국가를 유지해 분쟁을 끝내자고 1993년 오슬로 협정에서 합의했다. 평화로운 공존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데 동의한 것이다. 

 

양측이 세부안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느라 속도가 더딘 상황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표로 인해 이 합의마저 위태롭게 됐다는 우려가 크다. 이스라엘 총리와 보수 우익 진영만 환영할 뿐, 모든 국가가 일제히 비난하는 정책을 트럼프가 강행한 배경을 놓고는 미국 내 유다인 후원 그룹에 대한 보은(報恩)용부터 러시아 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국면 전환용까지 해석이 분분하다. 

 

누하스 신부는 “당장 예루살렘 일대의 성지 보존과 순례자들 안전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이스라엘군의 충돌로 12일 현재 사망자 4명, 부상자 수백 명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2월 17일, 김원철 기자]

 

 

[시사진단] 트럼프의 예루살렘

 

 

1995년 미국 상·하원 의회는 이스라엘의 수도가 예루살렘이라고 하면서 미국 행정부가 대사관을 1999년 5월 31일까지 예루살렘으로 옮겨야 한다는 ‘예루살렘 대사관법’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단,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6개월마다 대통령이 유예할 수 있다고 했고, 이에 클린턴, 부시, 오바마 대통령은 그렇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올 6월 1일 법안 준수를 유예했다. 그런데 6개월 시한이 다해 다시 결정의 시간이 돌아오자 지난 12월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하고, 대사관 이전 작업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영원한 고향이라고 여기는 예루살렘은 로마에 대항한 1차 독립 전쟁(66∼70년)에서 파괴되고, 2차 독립 전쟁(132∼135년)에서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로 개명되는 수모를 겪은 곳이다. 로마는 예루살렘을 비롯해 유다인들이 살던 지방 이름도 시리아 팔라이스티나 속주로 바꿨다. 이 지역은 로마 지배를 거쳐 638년 아랍인들이 장악한 후 십자군 전쟁 때만 제외하고 1917년 12월 9일 영국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까지 1300여 년 동안 무슬림들이 지배했다.

 

영국은 지배지에 평화를 일구지 못하고, 오히려 유다인들의 귀향길을 열어 줌으로써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로마에 패한 후 고향을 떠나야 했던 유다인들이 솔로몬 성전과 제2 성전이 있는 ‘시온’, 즉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다시 나라를 세우겠다는 시온주의를 선포했는데, 영국이 이를 들어준 것이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은 유다인과 아랍인의 땅 분할을 가결했지만 무슬림들이 거부했다. 영국은 이렇다 할 평화안을 내놓지도 못한 채 1948년 5월 14일 자정을 기해 이곳에서 완전히 손을 떼었고, 당일 오후 4시 이스라엘은 영국 몰래 독립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이 시작됐다.

 

1차 전쟁의 결과 예루살렘은 둘로 분할됐다.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동예루살렘은 아랍인, 더 정확하게는 요르단이 차지했다. 동예루살렘은 구시가지가 있는 곳으로, 유다인들의 솔로몬 성전, 제2 성전이 세워졌던 성전산이 있다. 성전산에는 이슬람의 예언자가 천상 여행을 한 유적이라고 무슬림들이 믿는 바위돔성원과 아크사 모스크가 있다. 그래서 ‘고귀한 성소’라는 뜻인 알하람 앗샤리프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 최후의 수난처로, 십자가의 길, 골고타산, 성묘성당이 있는 곳이다. 성전이 장사치들의 소굴로 전락한 모습을 보고 분노한 예수가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도 둘러엎으신” 곳이기도 하다.(마르 11,15) 과거 선배 신앙인들은 예루살렘을 라틴어로 ‘세상의 배꼽(Umbilicus mundi)’이라고 부르며 이곳을 중심으로 세계 지도를 그렸다.

 

1967년 6월 이스라엘의 선제 공격으로 시작된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점령해 지금까지 실효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1980년 이스라엘 의회는 ‘영원히 분리되지 않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선포했으나 이에 반발한 국제사회는 당시 13개국 대사관을 모두 예루살렘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그래서 현재 예루살렘에는 단 한 나라의 대사관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으로 얻은 땅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국제법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이제 미국이 이스라엘 편에 확실히 섰으니 국제사회가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시나 오바마와 달리 대통령 선거전에서 이스라엘의 수도가 예루살렘이라고 한 약속을 지켰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국제법을 무시하고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할 약속을 한 것이 문제다. ‘세상의 배꼽’이 ‘세상의 근심거리’가 되어 버렸다. 성전은 사라졌지만 장사꾼들은 여전하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12월 17일, 박현도 스테파노(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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