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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세계 교회 건축의 영성: 제단이 동쪽에 놓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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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4-21 ㅣ No.250

[세계 교회 건축의 영성] 제단이 동쪽에 놓인 이유

 

 

로마제국에게서 그리스도교가 공인을 받은 다음, 교회는 성당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숨어 지내느라 전례에 맞는 교회 건물을 제대로 지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여야 할까? 교회는 한 번에 많은 사람이 들어가는 예배를 드렸으므로 이에 맞는 건물 유형으로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이 바실리카였다. 바실리카는 그리스어로 ‘바실리케(basilike)’ 곧, ‘임금의 집회장’이라는 뜻이었으므로 하늘의 임금이신 하느님의 집에 맞는 이름이기도 하였다.

 

성 아폴리나레 인 클라세 바실리카, 549년, 라벤나(사진 Wikimedia Commons).

 

 

바실리카는 집회소이자 재판소이며 상업 거래를 하던 곳이다. 보통 직사각형의 긴 변에 입구를 두세 개 두었다. 한쪽 끝이나 양쪽 끝은 ‘앱스(apse)’라고 하는 반원형 평면으로 확장되어 있었다.

 

이 앱스에는 사람들을 잘 볼 수 있게 바닥을 들어 올린 ‘데예스(dais)’라는 널찍한 단을 두었다. 그곳에는 이교도의 신상이나 거대한 황제 조각상이 놓였고, 귀족이 앉거나 때로는 황제가 앉았다. 그렇지만 이런 평면에서는 긴 변과 짧은 변 모두에 대칭축이 생기므로 끝에 놓인 앱스가 공간 전체의 중심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교회는 긴 변에서 들어오던 로마 바실리카의 축을 짧은 변으로 들어와 반대쪽 끝에 있는 앱스를 향하도록 응용하였다. 이렇게 되자 성 아폴리나레 인 클라세 바실리카에서 보듯 축을 따라 기둥이 열을 이루고 다시 그 좌우로 긴 측면 통로가 덧붙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지상 순례의 통로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욱 강조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는 로마의 바실리카와 평면이 다르며 특히 단면은 아주 다르다.

 

흔히 설명하듯이 이 두 건물 유형이 축을 반대로 놓아 공간이 달라졌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교회 건물이 많은 사람을 수용한다는 뜻으로 바실리카라는 이름만 빌려왔을 것으로 생각한다.

 

 

첫 번째 성당 건축 유형 바실리카

 

아무튼 바실리카의 앱스는 임금들의 임금이신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으로 바뀌었다. 앱스의 천장인 반원형 돔에는 화려한 모자이크로 주님이요 임금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렸고, 그 밑의 둥근 벽면에도 거룩한 그림을 그렸다. 그 자리에는 희생의 제사를 드리는 제대가 자리를 잡고 다시 그 뒤로는 사제들이 앉게 되었다.

 

또한 건축물을 이루는 여러 요소가 강력한 종 방향의 통로를 따라 움직이는 운동의 감각이 내부공간에 생기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바실리카의 긴 공간은 뚜렷한 위계를 갖게 되었다. 이 평면은 그리스도교의 이상을 가장 잘 나타냈으므로 300년 무렵의 초기 그리스도교 건축에서 로마네스크를 거쳐 1300년 무렵의 고딕에 이르기까지 무려 1000년 동안 계속 사용되었다. 이것은 교회 건축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건축사의 측면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공헌이었다.

 

이 수평 방향의 위계적인 움직임이 내부공간에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이 축은 길에서 이미 시작하였다. 길을 지나 베스티뷸이라는 현관 같은 공간을 지나 신자들이 모여 준비하는 아트리움이라고 하는 중정에 이른다. 이 중정을 지나 성당의 서쪽 벽에 이르면 다시 내부공간은 나르텍스를 지나 동쪽 끝에 있는 제단으로 이끌어진다.

 

교회는 그 뒤 이 앱스를 동쪽으로 향하게 하였다. 고전 신전 가운데 바사이의 아폴로 신전은 코린트식 원기둥 한 개를 신전의 중심에 두고 동쪽으로 창을 냈으며, 떠오르는 해가 벽에 비추게 하였다. 제대가 이처럼 동쪽에 있으면 제대를 바라보는 회중은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마주할 수 있었고, 아침이 아니더라도 동쪽을 향해 미사를 드릴 수 있었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는 부활의 상징이며 하느님의 빛을 상징한다.

 

동에서 북으로 25도 기울어진 성 아폴리나레 인 클라세 바실리카. (좌우가 동서, 상하가 남북)

 

 

태양은 그리스도의 상징

 

그러나 이것은 초기 그리스도교 성당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때 지어진 성당은 입구가 동쪽에 있고, 제대가 있는 앱스가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의 방향을 따랐기 때문이다.

 

모세의 성막과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는 서쪽을 바라보지만, 사람은 동쪽으로 들어오고 동쪽의 뜰 안에 제단이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초기 그리스도교 사제는 서쪽에 서서 동쪽을 향해 신자들을 보며 미사를 드렸다.

 

319과 333년에 지어진 옛 성베드로 대성전도 앱스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 이는 그때는 미사의 형식이 확정되지 못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성 베드로 대성전은 서쪽을 향한다.

 

그런데 8세기와 9세기에 이르러서 사제가 신자를 향하지 않고 앱스를 향하면서 성당의 앱스가 동쪽을 향하게 되었다. 이로써 사제가 제대 뒤의 앱스나 벽을 향하며 사제와 신자가 같은 방향을 향하면(제대가 서쪽을 향하고 있을지라도) 이를 ‘앗 오리엔템(ad orientem)’이라고 말하고, 반대로 사제가 신자를 바라보면 이를 ‘베르수스 포풀룸(versus populum)’이라고 한다.

 

12세기와 13세기에 지어진 프랑스의 고딕 대성당 33개의 방향을 분석한 논문을 보면 모두 동향의 범위에 들어오도록 지어졌다(아미앵 대성당은 동쪽에서 남쪽을 향해 25도 기울어져 있다). 이것을 보면 동쪽을 향하는 성당 건축의 전례상의 역할을 다시 인식하게 한다.

 

동에서 남으로 25도 기울어진 아미앵 대성당. (좌우가 동서, 상하가 남북)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동쪽에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동쪽에서 친 번개가 서쪽까지 비추듯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마태 24,27)고 말씀하셨고,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도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동방박사들이 찾아와 경배하였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창세 2,8). 에제키엘서도 “그런데 보라,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동쪽에서 오는 것이었다.”(43,2)라고 말한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태양은 그리스도의 상징이었다. “그분의 얼굴은 한낮의 태양처럼 빛났습니다”(묵시 1,16). 태양이 떠오르는 것은 어둠을 몰아내는 그리스도의 빛처럼 보인다. 초기 교회는 모이는 장소의 동쪽 벽에 십자가를 걸고 경배의 방향을 정했다.

 

가정 교회에서도 동쪽을 향하는 장소를 선택했다. 그래서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가 말했듯이 성당의 제대가 동쪽을 바라보는 것은 “하루의 처음과 마지막 햇살을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 복음을 읽을 때면 미사경본을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옮겼다. 제대가 동쪽을 향하기 때문에 북쪽으로 옮기는 게 된다. 거룩한 말씀이 남에서 북으로 나아가는 게 된다”(「거룩한 표징」).

 

이렇게 되면 성당의 정면과 정문은 서쪽에 있게 된다. 그러면 제대를 향한 행렬은 어둠을 뒤로 하고 빛이 있는 동쪽을 향하게 된다. 교회에 만든 무덤도 동쪽을 바라보는 관습이 있다. 죽은 이가 일어나 빨리 주님께 인사드리려는 이유에서다. 세례당은 북쪽에 두는데, 이곳은 어둠과 이교도가 있는 곳이었다.

 

성 요셉 성당, 미국 조지아 주 메이컨.

 

 

동쪽을 바라봄으로써 주님께 향한다

 

성당의 제단이 동쪽에 놓인 것은 아침에 밝은 빛을 받으려는 것만이 아니다. 이것은 우주에 질서를 주신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신비 안에서 그 질서를 사용하고 계심을 상징한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전례의 정신」에서 이렇게 말한다. “동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주의 구원사가 하나로 통한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곧, 우주도 함께 참여하며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피조물과 함께 우리는 하느님을 향해 기도하는 것이며, 이 우주적 보편성이 동쪽을 향하는 성당이라는 건물로 확증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사제나 신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동쪽을 바라봄으로써 모두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향하게 된다.

 

지방에 있는 성당, 아주 작은 성당까지도 모두 이 우주적 질서를 따른다는 거대한 일치를 인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성당 안에서 그리고 전례 안에서, 지역으로 떨어져 있는 모든 사제와 신자가 거룩한 제사를 올리는 공통의 행위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일치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성당의 방향성은 전례와 관련하여 많은 논쟁이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사제와 신자가 모두 동쪽을 바라보려면 근대 이후의 도시계획 안에서 성당이 그렇게 지어질 수 있는 대지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동쪽에 놓인 제대 뒤의 벽에 창을 내야 하는가, 사제와 신자가 모두 동쪽을 바라보면 십자고상은 두 개여야 하는가, 동쪽을 향하지 않은 성당이 많지 않은가에 이르는 많은 물음을 낳게 된다.

 

그럼에도 하느님의 집인 성당의 축과 중심, 그리고 동쪽에 놓인 제단이 공간적인 형식 속에는 하느님 백성이 함께 일치하여 주님께 향하고 주님을 기다리며 우주의 질서에 동참한다는 위대하고 근본적인 진리가 담겨있다.

 

로마제국 공공건물의 형식을 빌린 이후 2000년 동안 이러한 교회의 정신이 성당 건축에 계속 간직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사실이다.

 

* 김광현 안드레아 - 건축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전주교구 천호성지 내 천호부활성당과 성바오로딸수도회 사도의 모후 집 등을 설계하였다.

 

[경향잡지, 2016년 4월호, 김광현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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