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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주 포도 축복 감사미사를 계기로 알아보는 와인에 담긴 가톨릭교회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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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9-02 ㅣ No.199

미사주 포도 축복 감사미사를 계기로 알아보는 와인에 담긴 가톨릭교회 흔적

중세 수도원, 포도 재배와 양조 기술 개발 일등공신


미사 핵심인 성찬례에서 사용되는 와인은 가톨릭교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CNS]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19-20).

예수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함께하며 빵과 포도주를 나눠주셨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몸(성체)과, 죄를 용서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린 피(성혈)를 주신 것이다. 우리는 미사를 통해 성체와 성혈로 변한 빵과 포도주를 받아 모시며 주님과 일치를 이룬다.
 
미사의 정점이자 핵심인 성찬례에 사용되는 포도주는 가톨릭교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와인에 담긴 가톨릭교회 흔적을 살펴보자.


중세 수도원과 와인

중세 수도원은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기술 발전의 일등 공신이었다. 서유럽 문명에서 수도원이 남긴 위대한 업적 중엔 와인이 빠지지 않는다.

가톨릭교회가 번창하던 중세시기 미사주 생산은 대부분 수도원 몫이었다. 규모가 작은 수도원일지라도 자신들만의 전용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었다. 때론 마을 전체에 이르는 포도밭 주인이기도 했다. 와인 이름에 클로(clos), 클로스터(kloster), 에르미타주(hermitage) 등이 포함돼 있으면 생산지가 수도원이라는 뜻이다.

- 페리뇽 수사가 살았던 프랑스 상파뉴 오빌레 수도원 전경. [사진제공=동페리뇽 누리방(www. creatingdomperignon.com)]
 

수도자들에게 와인은 단순한 술 이상의 의미를 지닌 미사주였다. 성혈로 변모할 와인을 만드는 데 '대충'이나 '적당히'는 용납할 수 없었다. 토양과 기후, 자연환경을 고려한 포도 재배와 품종 개량, 와인 양조법에 몰두하며, 좀 더 좋은 와인을 미사주로 봉헌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미사주 이외의 와인이 수도원의 주요 수입원이라는 현실적 이유도 무시할 수 없었다.
 
베네딕토회와 시토회는 중세 유럽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수도원의 양대 산맥이다. 지금도 두 수도회 수도원은 유럽뿐 아니라 미국, 칠레, 호주 등에서 오랜 노하우를 바탕으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수도회가 배출한 가장 유명한 와인 전문가는 '샴페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네딕토회 페리뇽 수사(1638~1715)다. 그는 수도원 와인 담당으로 와인 제조에 평생을 바쳤다. 최고급 샴페인으로 손꼽히는 '동 페리뇽'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페리뇽 수사는 와인 발효 중 생기는 탄산가스 때문에 와인 병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한 연구를 거듭했고, 코르크 마개를 이용해 샴페인을 완전히 봉인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완벽한 포도 배합 비율을 찾아내 샴페인 품질과 맛을 향상시키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그가 처음으로 샴페인을 만들었다는 것은 와전된 이야기지만 '샴페인의 아버지'로 불릴 만한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다. 샴페인 생산지 프랑스 상파뉴 지역엔 그를 기리는 동상과 박물관이 건립됐다.
 
한 여성이 수확한 포도를 모으고 있다. [사진제공=보르도와인협회, Fanncois Ducasse]
 

시토회는 프랑스 브루고뉴지방 시토마을에서 출발했다. 베네딕토회 수사였던 성 로베르토(1028~1111)는 수도원 개혁운동에 동참하며 시토에 수도원을 세우고 보다 엄격한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부르고뉴 지역에는 시토회 수도원이 500여 개나 설립될 정도로 성장했다.

시토회는 기도와 육체노동에만 전념했는데, 노동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는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이었다. 수사들은 밭이랑 하나 차이로 토양이 달라지는 부르고뉴 특유의 토질을 간파했고, 각 토양과 기후에 맞게 포도 품종을 개량하는 데 몰두했다. 부르고뉴산 와인이 생산량은 적지만 최고의 맛과 향을 자랑하는 것은 이 같은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다.
 
클로 드 부조는 시토회가 만든 와인으로 지금까지도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1155년 시토회가 클로 드 부조 와인을 기념하고자 설립한 건물(샤토 클로 드 부조)은 지금도 남아 있다.
 

교황의 와인, 천사의 와인

교황의 와인이라 불리는 샤토뇌프 뒤 파프(Chateauneuf-du-Pape)는 프랑스어로 '교황의 새로운 성'이라는 뜻이다. 프랑스 남부 론지역 포도밭(마을) 이름으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모두 샤토뇌프 뒤 파프라 부른다.

- 오크통에서 숙성되고 있는 와인. [사진제공=보르도와인협회, Philippe Roy]
 

샤토뇌프 뒤 파프는 교황 클레멘스 5세(재위 1305~1314)가 교황청을 이탈리아 로마에서 프랑스 아비뇽으로 옮긴 후 여름별장으로 사용했던 성이다. 당시 막강한 권한을 지녔던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는 교황을 곁에 두고 교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클레멘스 5세부터 그레고리오 11세(재위 1370~1378)까지 아비뇽 교황청 시기 선출된 교황이 모두 프랑스 출신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교황 클레멘스 5세는 보르도대교구장 출신답게 와인 애호가였다. 후임 교황 요한 22세 역시 와인을 좋아해 교회가 소유한 포도밭과 와인 생산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변방에 머물렀던 론 지역 와인은 '교황의 와인'이라는 날개를 달고 성장했다.

와인을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면 와인이 조금씩 증발한다. 와인 제조자들은 이를 두고 엔젤스 쉐어(angel's share, 천사의 몫)라 불렀다. "천사가 마셨다"는 낭만적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호주의 유명 와인생산업체 투핸즈는 이 이름을 딴 '엔젤스 쉐어'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성경 속 와인

성경에 따르면 포도밭을 처음 가꾼 인물은 노아다. 대홍수가 끝난 뒤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포도를 심고 와인을 생산한 뒤 벌거벗고 잠들 정도로 취하기도 했다(창세 9,20-21). 포도 원산지는 포도주 찌꺼기 화석이 발견된 코카커스 남부지역으로 알려졌는데, 일부 역사가들은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살던 곳을 이곳으로 추정한다.
 
성경에선 술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하지만, 포도주를 권하고 예찬하기도 한다. 건강을 생각해 물 대신 포도주를 마시라고 하거나(1티모 5,23) 하느님께 구원을 약속받은 기쁨을 '포도주를 마신 것처럼 기뻐한다'(즈카 10,7)고 비유했다. 또 '키스를 부르는' 아름다운 여인의 입을 좋은 포도주(아가 7,10)라고 노래했다.

포도는 가나안 땅에서 자라는 축복받은 7가지 식물 중 하나였고(신명 8,7-10), 카나의 혼인잔치와 최후의 만찬에서 엿볼 수 있듯 식사와 잔치에선 빠질 수 없는 음식이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 마신 것도 포도주다(요한 19,30).


건강을 부르는 와인

'프랑스인의 역설'로 해석할 수 있는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는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프랑스인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심장질환 사망률이 낮은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부 의학자들은 프렌치 패러독스의 원인을 와인에서 찾았다. 와인에 심장병을 예방해주는 항산화물질이 풍부하다는 이유에서다.
 
적당량의 와인은 건강을 지켜준다. 와인은 오래 전부터 우울증 치료제로 쓰였고, 미생물학자 파스퇴르는 환자에게 와인을 처방하라고 말했을 정도다. 물론 좋은 것도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이다.

와인은 한꺼번에 들이키는 술이 아닌 만큼, 맛과 향을 음미하며 천천히 마셔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또 와인에 담긴 문화와 역사 등을 공부하며 마시면 더 좋다.
 
[평화신문, 2012년 9월 2일,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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