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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김대건 신부 첫 입국 나바위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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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호 [event] 쪽지 캡슐

2006-08-12 ㅣ No.464

[성지] 김대건 사제 서품후 첫 입국 나바위 성지

 

나바위성당은 완공된지 100년이 되며

국가지정문화재 ( 사적 318호 ) 로 지정되어 있다.

 

김대건신부일행이 한국땅을 밟은 것을 기념해서

베르모렐신부 ( 장약슬 요셉 )가 1897년 설립해서 1906년 성당 건물을 완공하였다.

성당설계는 명동성당 포아넬 신부가 도왔고 공사는 중국인들이 맡았다.

1916년 목조벽을 벽돌조로 바꾸고 고딕식 벽돌조 종각을 증축하였다.

한국문화의 특성에 맞게 한옥목조건물에 기와를 얹은 나바위 성당건물은

특히 회랑이 있어서 한국적인 미를 맛볼수 있는 곳이다.

채광을 위한 팔각형 창문은 밤이면 더할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소나무와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나바위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1845년 10월 12일 밤 조선교구 3대 교구장이신  고주교님과 다블뤼(Daveluy)안신부님 그리고 11명의 조선교우들과 첫발을 내디디신곳이다. 김대건신부는 1821년 8월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당시로는 면천고을 솔뫼에서 부친 김제준이냐시오와 모친 고우르술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미 증조부 김진후비오와 조부 김택현 안드레아 등이 순교한 순교자가문이다.


솔뫼에서 태어나 박해를 피해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 골배마실로 이주하게 된다. 이때가 7살이었다. 김대건의 부친은 1839년 기해박해때 서소문 밖에서 참수 치명하신 순교성인이시다. 김대건이 첫영성체를 한 것은 1836년 1월에 입국한 파리외방전교회 모방(Maubant) 나신부님에 의해서였다. 조선인 성직자를 양성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적당한 소년을 찾고 있던중 골배마실 은이공소에서 김대건소년이 신학생으로 선발하게 된다.


어린 몸에 어려운 길을 서슴지 않고 따르겠다고 나선 소년 김대건의 소망은 겨레의 영혼을 구하겠다는 너무나도 거룩하고 원대한 것이었다. 신학생으로 선발된 김대건은 7월에 서울로 올라와 최양업토마스, 최방제프란치스코와 함께 그해 12월 중국인 유방제 신부가 귀국하는 길에 유학의 길을 떠나게 된다.


장차 한국교회의 순교성인으로 빛날 교우들인 정하상바오로 현석문가롤로 조신철가롤로의 호송을 받으며 일행은 고국산천을 작별하고 부모를 떠나 만주땅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세 소년은 조선의 교우들과 작별하고 중국인 안내자를 따라 봉천, 산해관, 북경, 천진, 광동을 거쳐 목적지인 마카오를 향해 떠나게 되었다.


세소년은 1837년 6월6일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에 도착한다. 그러나 함께 갔던 최방제가 1년만에 병사하는 불행을 맞는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김대건, 최양업 신학생이 학업에 열중하고 있을 때 조국에서는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 김대건의 부친과 최양업의 부모님이 순교하게 된다. 모방(Maubant) 나신부님과 2대 교구장이신 앵베르 주교님 그리고 정하상 , 유진길, 조신철 한국교회의 지도급 교우들이 순교하는 대박해였다.


조선은 또다시 목자없는 교회가 되어 교우들은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다. 김대건은 1844년 조선교구 3대 교구장으로 선임된  고주교님에게 12월15일에 부제품을 받게 된다.


그리고 선교사의 조선영입을 위해 1845년 1월 김대건은 의주쪽으로 어렵게 혼자 입국하는데 성공한다. 그에게는 교회의 실정을 자세히 살펴보고 주교님을 맞아 들여야 하는 중대한 의무가 주어져 있었다. 외국인 성직자들이 육로로 조선에 들어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는 작은배 한 척을 사서 현석문 가롤로등 11명의 교우들과 상해로 돌아갔다.


1845년 8월 17일 상해에서 20리쯤 떨어진 김가항이라는 교우촌의 성당에서 김대건은 페레올 주교님의 집전으로 한국인 첫 사제로 서품되었다. 한국교회창립 61년만의 일이었다.

 

8월31일에 김대건신부는 다블뤼신부와 11명의 교우들과 페레올주교님이 라파엘호라고 이름을 붙인 작은 어선을 타고 조선을 향해 출발한다.

라파엘호가 처음에는 요동방면으로 가는 중국 배에 끌리어 산동성까지 무사히 이르렀으나 갑자기 거센풍파를 만나 키는 부러지고 돛은 찢어져 물결이 치는대로 배를 맡기게 되었다. 9월 28일 라파엘호는 제주도의 해안에 닿게 된다. 이로부터 전라도와 충청도 사이에 있는 금강으로 접어들어 60리쯤 올라가서 은진군 강경에서 조금 떨어진 나바위에 상륙하게 된다. 9년만에 사제가 되어 돌아온 김대건과 꿈에도 그리워하며 6년을 포교지를 향해 준비한 페레올 주교님은 감사의 기도로 나바위에 첫발을 내디디었다.

 

1845년 10월12일 밤 방갓과 상제옷으로 몸을 가린후 어두운밤 나바위에 첫발을 디딘 것은 상해를 떠난 지 바닷길 42일만의 일이었다. 세분 성직자들의 거룩한 첫마음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나바위성지이다.

 

 

나바위 성지 찾아가는 길

홈페이지 http://www.nabawi.or.kr/

강경에 가깝지만 전주교구 소속입니다.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1158 Tel.063-861-9210 Fax.063-861-9211 

(아래 사진은 2006년 8월 9일 촬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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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차      - 강경역에서 하차하여 49번, 50번, 50-1번 버스 이용 (강경에서 3Km지점)
 고속버스- 서울, 대전 방면은 논산에서 하차하여 논산 - 강경 - 나바위 (49번, 50번, 50-1번 버스 이용)
 직행버스 - 전주, 광주방면은 익산시에서 하차하여 익산역 건너편에서 49번, 50번 버스 이용,
                 시외버스터미널에서 333번 좌석버스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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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통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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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위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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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위 성당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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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 들어서면

 남녀칠세 부동석

남녀 신자들의 자리를

좌우로 분리하여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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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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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님 성해(聖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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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사제관, 오른쪽 성당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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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위 성지 피정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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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정의 집 -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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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의 집 -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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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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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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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상과 야외 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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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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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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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1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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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은

가벼운 등산(산책)도 겸할 수 있는

약간 오르막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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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덕 히뽈리또 신부님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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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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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11처와 망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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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금정

나바위성지는 화산(華山)이라는 산에 있다.

산이 아름답다고 해서 우암 송시열이 붙여준 이름이다.

화산(華山)의 끝자락에 넓은 바위가 있어 

 너른 바위 - 나바위라 불린다.

 

금강의 강변에 자리한 화산은 산밑 서북쪽으로

물이 닿았고 갈대숲이 우거졌다.


이곳에 한국인 첫사제 김대건이

첫발을 내디딘 것을 기념하여

나바위성당이 설립된후

초대 대구교구장이신 드망즈 주교가

해마다 5 ,6 월이면 연례피정을

화산 정상에 있는 나바위에서 가졌다.

개인피정 장소로

더할수 없이 아름답고 조용한 분위기를 감탄하며

피정을 하시는 주교님을 위해

베로모렐신부는 1915년 정자를 지어드렸다.

 

이 정자를 드망즈주교는 망금정이라 이름붙였다.

( 望錦 바랄망 , 아름다울금 )
금강을 바라보며

세분 성직자의 아름다운 영혼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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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금정과 나바위

(넓은 바위 - 너른 바위 - 나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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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 복자비와 망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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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비 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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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위에서 바라본 풍경

옛  황산포구는 메워져 비닐하우스 단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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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금강과 다리가 보이고

철도 강경역이 가까워서 그런지 열차가 지나가는

기적 소리도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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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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