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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대전교구 부여 금사리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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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8-08 ㅣ No.275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1) 대전교구 부여 금사리성당


시골 소녀의 풋풋한 민낯같은 소박함 간직한 고성당

 

 

- 농촌 마을 한가운데에 세워진 금사리성당은 주변 자연과 이질감없이 조화를 이루는 게 건축적 매력이다.

 

 

국내 순례에 관한 관심이 늘면서 예쁜 성당을 소개하는 기사를 실어 달라는 독자들의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독자들의 성원에 부응하고자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연재를 시작한다.

 

 

녹색 향연이 펼쳐진 한여름의 들녘 마을은 마치 섬 같다. 마을 초입 마중 길에서 나그네에게 환영인사를 하듯 시원한 여름 바람을 안겨주는 느티나무의 넉넉함과 생채기 난 돌담 사이로 맵시를 뽐내는 능소화의 수줍은 자태가 소담하다. 드리운 녹음 사이로 빼꼼 내밀고 있는 성당 종탑은 한 폭 그림이다. 밑그림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수채화같이 유서 깊은 성당은 옛사람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충남 부여 금사리성당도 그중 하나이다.

 

 

충남 부여의 첫 번째 성당

 

백제의 옛 도읍 사비 땅에 자리잡은 금사리성당은 대전교구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충남 부여에 지어진 첫 번째 가톨릭 교회 건축물이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143호인 금사리성당은 부여군 구룡평야를 끼고 도는 구룡천 서쪽에 형성된 쇠양이마을 한가운데 야트막하게 자리하고 있다. 쇠양이는 늪(沼)과 벼랑이 있는 곳으로 금빛보다 더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는 마을이라 해서 한자어로 금양(金陽)이라 표기했다. 금사리(金寺里)는 금양(金陽)마을과 사동(寺洞, 절골)이 합쳐진 이름이다.

 

- 110년된 금사리성당은 화려한 장식 없이 회색과 붉은색 벽돌로만 지어졌는데도 아름다운 건축미를 뽐낸다.

 

 

금사리성당의 첫인상은 마치 페르메이르의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마주하는 듯하다. 소박하면서도 화려하고, 단순하면서도 장엄한 느낌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짙은 영적 울림을 주는 기도처이다. 금사리 성당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건축물이다. 당시 유행하던 한옥과 서양 고딕 양식을 절충한 형태로 지어졌기에 다소 밋밋한 외형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양식의 이질감 없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금사리성당의 매력이다. 성형기 없는 풋풋한 시골 소녀의 얼굴에서 자연미를 느끼듯 금사리성당에서 싱그러운 자연과의 조화로움을 발견하게 된다. 

 

금사리성당의 풋풋한 자연미는 돌 기단 위에 회색과 붉은 벽돌을 나눠 쌓고 지붕과 종탑을 올려놓은 외관에서 드러난다. 외벽의 장식이라고는 창 윗부분을 아치형으로 둥근 곡선을 줘 우아함을 가미한 것이 전부다. 또 전면 7.8m, 측면 18.5m 규모의 아담한 단층 건물로 지어 이웃 농가와의 이질감이나 위압감도 찾아볼 수 없다.

 

 

평마루와 나무기둥 등 소박한 내부

 

성당 내부도 소박하기 그지없다. 제대를 중심으로 중앙 통로 한가운데에 일렬로 나무 기둥을 세워 남녀 신자석을 구분했다. 바닥도 평마루다. 오직 전례만을 위해 만든 실용적 공간이다.

 

- 전례 공간의 실용성을 채운 금사리성당 내부. 나무기둥으로 남녀 신자석을 구분해 놓은 것이 이채롭다.

 

 

금사리성당은 110년 전에 지어진 성당이다. 이곳에 본당 사목구가 설립된 것은 1901년 4월이다. 초대 주임인 줄리앙 공베르(J. Gombert, 재임 1901.4 ~ 1923. 5) 신부는 이미 1900년 5~6월께 쇠양이마을의 가옥 3동 35칸의 집과 대지, 임야를 1300냥에 매입했다. 성당 부지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공베르 신부는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성당 건립 공사를 시작했다. 182㎡ 규모의 단층 성당을 짓기까지는 신자들의 아낌없는 희생이 있었다. 본당 신자들은 중국인 건축 기술자들과 함께 직접 황토로 벽돌을 구워냈다. 또 지붕틀과 기둥으로 사용할 목재를 금지리와 내산면 남살매돌, 삼바실 푸른매 일대에서 벌목해 가져왔다. 석재들은 금사리 앞 냇가에서 주워 일일이 쪼개고 다듬어 사용했다. 성당 건축 공사는 5년간 지속됐다. 신자들의 희생과 수고로 지어진 아름다운 금사리성당은 1906년 4월 초 완공돼 1913년 9월 2일 뮈텔 주교 주례로 축성, 봉헌됐다.

 

 

사제의 피로 지켜진 성당

 

금사리성당은 사제의 피로써 지켜진 성당이기도 하다. 6ㆍ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금사리성당은 인민군에게 몰수돼 공산당 집회 장소로 사용되는 수난을 겪었다. 당시 본당 주임 요셉 몰리마르(Joseph Molimard, 재임 1948년 9월~1950년 9월) 신부는 폭격을 피하려는 인민군의 강압도 있었지만, 미군 전투기가 나타날 때마다 수단을 입고 지붕 위로 올라가 공격하지 못하도록 손을 흔들어 댔다. 이렇게 아군과 적군 양측으로부터 성당을 지켜낸 몰리마르 신부는 그해 9월 말 대전 목동 수도원에서 공산군에게 처형돼 순교했다.

 

- 성당 마당에는 루르드 성모 동굴이 꾸며져 있다.

 

 

금사리성당은 2006년 건립 100주년을 맞아 보수와 복원 작업을 거쳐 새 단장을 했다. 벽 전체를 헐어 다시 쌓고 동판 지붕에 종탑을 복원했다. 본당 신자들은 1968년에 지은 새 성당에서 전례를 하고 있다. 외딴 농촌 마을에 그리 넓지 않은 대지에 성당이 2개가 있으니 이채롭다.

 

 

대전교구 금사리성당 

 

주소 : 충남 부여군 구룡면 금사리 334 성충로 1342번길 21

성당 사무실 : 041-832-5355

미사 시간 : 주일 6:00, 10:00 ; 평일 월ㆍ수  6:00, 화ㆍ목ㆍ금 20:00

 

[평화신문, 2016년 8월 7일, 글·사진=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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