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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바실리카 : 신앙의 자유 선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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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05 ㅣ No.76

[전례 상식 / 교회 건축] 바실리카 : 신앙의 자유 선언 이후

 

 

1. 성당 건축의 개화기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촉진된 건축활동은 성당을 비롯하여 그리스도 공동체를 위한 여러 건물들의 활발한 건축의 시기를 열었다. 이것은 또한 제국 내에 성당 건축양식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인이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와는 관계없이 황제가 그리스도교 예배를 위한 건물의 발전과 확산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초기의 주요한 그리스도교 건축물은 모두 그 공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돌려 마땅하다. 로마에서는 교황 밀티아데스(Mi1tiades 311~314년)에게 구세주 대성당이 서있는 에퀴테스 싱굴라레스(Equites singulares) 지역을 선사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뒤로 라떼라노 대성전과 성 베드로 대성당 등이 건축된다. 로마 밖에서는 베들레헴에 예수 성탄 대성당과 나자렛에 성모영보 대성당 그리고 콘스탄티노폴리스에는 성 소피아 성당을 건축하게 된다. 안티오키아와 알렉산드라, 티로 등지에도 여러 대성당들이 건축된다. 한마디로 4세기는 건축과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보조를 함께하며 발전하는 때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5세기부터는 건축공사들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건물을 세우기 위해 기존의 낡은 건물들을 이용한다.

 

6세기에는 특별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덕을 입어 동방에서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서방에서는 라벤나를 중심으로 하여 예술의 발전에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이 두 도시를 중심으로 한 동서방의 예술의 교류도 나타나게 된다.

 

 

2. ‘바실리카’와 건물의 방위

 

그리스도교 성전에 붙여진 ‘바실리카’(Basilica)라는 용어는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의 공간에 특별한 의미를 주면서 처음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교인들이 이미 사람들이 집회를 가질 수 있도록 정해진 건물에 붙인 이름이었다. ‘바실리카’라는 용어는 콘스탄티누스와 심마쿠스 시대에 넓게 퍼진 용어이다.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얻기 전에는 주로 ‘에클레시아’(Ecclesia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에클레시아’라는 용어는 대 그레고리오 교황 시대에 다시 나타나 이후로는 거의 예배를 위한 건물의 독점적인 이름이 되었다. ‘바실리카’와 ‘에클레시아’는 오늘날에도 성당을 가리키는 두 용어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특정한 시대와 어떤 지역에 따라서는 ‘도무스’(Domus 집)와 ‘아울라’(Aula 궁정)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 이름들은 보통 초세기 그리스도 공동체들의 집회장소를 가리키는 용어들이었다. 그 밖에도 기도실, 집, 성전 등의 많은 용어들이 예배공간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이름과 마찬가지로 바실리카의 방위(方位)도 변경 불가능한 대상은 아니었다. 시리아 전례에 관한 여러 가지 귀중한 정보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사도헌장”(Constitutiones Apostolicae)은, 얼굴을 해가 떠오르는 쪽을 향하게 하여 기도하는 관습을 존중하여 동쪽을 향하여 성전을 짓도록 규정하고 있다(1,67). 이러한 관습의 기원은 그리스도교의 많은 관습들이 그렇듯이 유다의 전통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동쪽은 제대의 후진(Abside(이탈리아어), Apse(영어))의 방향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 먼저 제대의 위치를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사제가 신자들을 등 뒤에 두고 미사를 집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때 사제의 오른편에는 남자들이, 왼편에는 여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동쪽을 향하는 것이 시리아의 일반적 관습이었다고 하지만 다른 많은 교회들은 어떤 규정을 따르기보다는 그 지역의 지형적 여건에 따라 지어졌다. 어떤 교회들은 그 안에 모시게 될 순교자의 무덤을 향하게 짓기도 했다. 그러나 8세기부터는 동쪽을 향한 방위의 규정은 많은 교회들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었고, 11세기에는 로마의 교회들을 위한 불변의 규범이 된다.

 

[경향잡지, 1995년 2월호, 김종수(주교회의 사무차장, 본지 주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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