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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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함께하는 거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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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7-02 ㅣ No.1621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함께하는 거룩함

 

 

이기적 개인주의

 

건강한 개인주의는 중요합니다. 사람은 독립된 개체로서, 즉 하나의 주체로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독립되고 고유한 주체로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회가 공인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전통적 신분제 사회에서는 소수의 계층만 개별적 주권과 주체 의식을 갖고 살았습니다. 전통사회에서 개인주의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봉건적 질서 안에서 피동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근현대에 이르러서야 모든 사람의 평등과 개별적 자율성이 인정됩니다.

 

주체의 탄생과 개인의 탄생은 근대화의 여정과 맞물려 있습니다. 주체성과 자율성의 강조를 통해 출발한 좋은 의미의 개인주의는 자본주의 문화와 안에서 점점 퇴색되어갑니다. 자본주의 물질문화는 개체의 쾌락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개인주의를 발생시켰습니다. “늘어나는 소비적 개인주의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떨어져서 행복을 찾으며 고립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46항).

 

포스트모던 사회는 이성과 사유를 강조하기보다는 감정과 욕망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개인보다는 체험하고 느끼고 욕망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을 더 강조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의 흐름을 지식인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게 하는 건강한 측면도 지닙니다. 하지만 사유와 성찰의 기능을 놓쳐버리고 감정과 욕망만을 강조하는 현대 문화는 사람들을 점점 더 감정적 개인, 탐욕적 개인, 이기적 개인으로 만듭니다.

 

 

건강한 공동체 안에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아무리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개체로 살아간다고 해도, 사람은 공동체를 향한 본능적 지향성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은 소속감과 친밀성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함께 어려움을 헤쳐갈 수 있는 가족과 친구와 동료가 필요합니다.

 

참다운 공동체는 단순히 경쟁과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모인 이기적인 집단과는 다릅니다. 사실, 오늘날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고 배제하는 방식으로 자기 집단만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집단이 많습니다. 이들은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저 이기적인 집단, 이기적인 부족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개인적 이기주의에서 집단적 이기주의로 변모한 것뿐입니다. 진정한 공동체는 이러한 이기적 집단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이기적 개인주의와 이기적 집단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신앙인은 참다운 공동체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과 떨어져 살아간다면, 욕정, 악마의 올가미와 유혹 그리고 세상의 이기심에 맞서 싸우기 매우 어렵습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40항). 혼자 감당하고 견뎌내기에는 오늘의 유혹들은 너무 많고 집요합니다. 더불어 함께 싸워나갈 때만 이기적 유혹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거룩함

 

“성덕은 다른 이들과 나란히 함께하는 공동체 여정에서 성장합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41항). 신앙인은 언제나 더불어 함께 거룩해집니다. “다른 이와 함께 살거나 일하는 것은 확실히 영적 성장의 길이 됩니다”(141항). 신앙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유혹과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물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다듬어지고 단련되는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공동체의 신앙 성숙과 영적 성장을 통해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실제적인 예들은 교회가 성인들을 시성하는 과정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공동체 전체를 시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리아의 종 수도회 창설자 7인의 성인, 일본의 성 바오로 미끼와 동료 순교자들, 한국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동료 순교자들”(141항)이 그 본보기입니다. 사실, 신앙 공동체는 “부활하신 주님의 감추어진 현존을 체험하는 하느님 계시의 장소”(142항)입니다. 오직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거룩해집니다.

 

 

섬세한 사랑의 공동체

 

하느님께서는 공동체를 성화하십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45항).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성화되어 갑니다. 하지만 현실의 공동체가 항상 장밋빛 색깔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는 언제나 ‘되어가는’ 공동체입니다. 거룩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서로가 신앙적 관심과 섬세한 배려와 사랑의 태도를 지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렙톤 두 닢을 넣은 과부를 알아보신 섬세함. 신랑이 늦어지자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여분의 기름을 챙기는 섬세함. 제자들에게 가지고 있는 빵 조각이 얼마나 있는지 물어보시는 섬세함”(144항). 이러한 섬세함을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가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즉, “구성원들이 서로 돌보아 주고 복음이 스며들어 열린 환경을 만드는 공동체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현존하시는 곳”(145항)이기 때문입니다.

 

 

소통과 친교가 이루어지는 공동체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공동체는 이념 공동체, 생활 공동체, 정서 공동체로 구분됩니다. 공동체는 생각과 비전과 이념을 공유합니다. 공동체는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생활을 함께합니다. 공동체는 정서적 친밀함을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이상적인 공동체는 이념과 생활과 정서가 다 공유되는 공동체입니다.

 

이념과 생활과 정서가 다 중요한 요소이지만,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념적 측면입니다. 생각과 비전을 공유하며 말을 나누는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공동체의 목적과 지향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생각과 말을 자유롭게 나누며 소통하는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단순하게 말해, 말을 나누는 공동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생활을 함께 한다 해도, 그래서 고운 정 미운 정이 쌓여 정서적으로 친밀하다 해도, 정작 목적과 지향을 놓치고 생각과 말을 나누지 못하면 죽은 공동체입니다. 가끔 제가 농담처럼 말합니다. 생활과 정서를 가장 잘 나누는 공동체는 조폭들이라고 말입니다. 조폭들은 합숙하며 생활하고, 어떤 의미에서 의리로 뭉친 집단입니다. 말 그대로, 생활과 정서의 집단이지요. 참다운 목적과 지향을 놓쳐버린 공동체, 생각과 말의 자유로운 소통을 놓쳐버린 공동체는 공동체가 아니라 집단에 불과합니다.

 

주님을 향한 목적과 지향을 되새기면서, 신앙인 각자가 정직하고 자유롭게 생각과 말을 나누며, 본당이라는 장소에서 신앙생활을 더불어 함께 하면서, 신앙의 친교와 형제애를 느끼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거룩해질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7월호,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안동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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