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강론자료

2016-04-22.....부활 제4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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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4-21 ㅣ No.2039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사도 13,26-33               요한 14,1-6

2016. 4. 22.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

사람은 세상살이에 대단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표현할 때, 대단하다는 것은 좋은 의미도 있고, 좋은 것이 지나쳐서 부정적인 의미도 함께 담는 표현입니다. 아무래도 낱말이 생기면 그 다양한 표현들 가운데 좋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한 가지만 있어야 올바를 것이고, 필요하다면 새로운 낱말을 만드는 것이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공동체는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여러 가지 표현으로 전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사는 사람이 다양한 것만큼, 한 가지 표현으로 우리의 귀에 도착하는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사람은 한 가지로만 알아듣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 왜 그러하냐고 질문하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하느님의 뜻이 다양한 사람을 통해서 인간에게 다가올 때, 인간은 그 하느님의 뜻을 때로는 좋게 여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거부하는 감정으로 대합니다. 사람이 왜 그렇게 다른 행동을 하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그것은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사람은 그렇게 합니다.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내 삶에 그 하느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는 모양에 따라 다르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다가왔을 때, 그 하느님의 뜻이 인간을 힘겹게 만드는 경우는 없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다만 인간이 그 말씀을 곡해해서, 하느님의 말씀과 뜻이 각자의 삶에 불편한 결과를 만든다고 우기기 때문에 싫다고 말하고,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일은 부모님이 자녀들을 교육하는 것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의 삶에 불편하고, 부족하고 손해가 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자녀들을 교육하는 어른들이 없는 것과도 마찬가지이지만, 피교육자인 자녀들은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바오로사도는 예수님이 죽으신 일에 대해서 탓은 없다고 봐줄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가졌던 잘못된 마음과 생각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듣는 사람이 흥분하지 않을까요? 물론 사람이 늘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과거에도 옳은 방식대로 살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니, 흥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올바른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그 지혜를 어디에서 배우겠습니까? 누가 우리에게 그 지혜를 알려주겠습니까? 누가 알려주면, 그것이 하느님을 따르는 방법이라고 우리가 인정하고, 그런 소리에 아무런 이론도 없다고 그 말씀에 따겠습니까?

 

그 뜻을 아주 가까운데서 들었을 제자들도 예수님에게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는데, 가르쳐주는 길은 더 모르겠다(!)’고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어디에서 어떻게 배우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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