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강론자료

2023-09-03.....연중 제22주일 가해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3-09-09 ㅣ No.2394

                                                             연중 제22주일 (가해)

예레미야 20,7-9      로마서 12,1-2      마태오 16,21-27

2023. 9. 3.

주제 : 하느님이 원하시는 삶

오늘은 올해 순교자성월을 지내는 첫째 주일입니다. 요즘 세상은 우리의 목숨이나 생명을 요구하는 순교(殉敎)’라는 말을 아무래도 많이 듣지 않는 세상이라서, 어쩌면 신앙생활을 하는 일이 쉽다고도 말할 시대에 우리는 삽니다만, 반드시 순교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 옛날에 살았던 신앙인이 보인 본보기는 기억하고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눈으로 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는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변화를 위하여, 다른 사람이 자기의 삶에서 실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일에 관하여, 그 내용을 설명하는 일이 있습니다. 물론 그때 오고 가는 소리는 듣는 사람의 사정을 먼저 살핀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주장을 주로 담은 것이라서, 좋은 말을 듣는다는 사람이 그대로 행동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생기는 안타까운 표현이 가능합니다. ‘너는 내가 말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내용을 반대로만 하느냐?’는 푸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동물은 자기가 인정하기 전에는 좀처럼 삶의 태도를 바꾸기가 어려운 동물이라는 것을 안다면 실망하는 일도 줄어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삶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에게도 이렇게 안타까움을 느끼는데, 세상을 만드시고 그 안에 우리더러 살게 하신 하느님이 사람을 볼 때, 하느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삶에 다가올 일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관한 표현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게서 말씀하신 내용이 삶에서 바라는 행복이나 즐거움에 관한 것이 아니라서, 우리가 쉽사리 받아들일 내용은 아니지만, 그 내용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그 소리를 들으면서 제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어느 순간에 당신의 삶에 찾아올 일을 말씀하셨지만, 아직 그 일이 현실로 드러나기 전인데도, 베드로 사도는 펄쩍 뛰는 소리를 말하면서 예수님을 막아섭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행복과 기쁨이 될 부활에 관한 일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생각하기가 싫었을 고난과 죽음에 관하여 자기의 생각을 더 크게 드러냅니다. 자기가 싫어하거나 생각하지 않은 일은 예수님의 삶에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사람에게 무슨 능력이 있어서, 나의 삶에 일어나도 좋거나 내 삶에 기쁨이 될 일만 선택하겠습니까?

 

좋은 일은 즐거운 마음으로 반기고, 싫은 일은 멀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사람이 주장하는 일이겠지만, 우리가 베드로 사도처럼 말한다면, 예수님에게서 너는 사탄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베드로 사도보다 좀 더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행복에 이르는 길에 십자가의 역할을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사람이 듣기가 싫어하는 것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싫어하는 일은 내가 내 삶에서 밀어낼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러한 행동의 결과로 나에게 행복이 오지 않는다면 어떤 불만을 말하겠습니까?

 

십자가를 가까운 친구로 대하는 삶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자기의 생각을 담아서, 십자가를 싫어하거나 미워하고 그 십자가를 멀리하겠다고 말만 하면, 정말로 십자가와는 관련이 없는 좋은 일만 내가 세상에서 만나게 될까요?

 

우리보다 먼저 신앙인으로서 살았고, 하느님의 뜻을 선포했던 예레미야 예언자는 삶을 서글프게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일에 먼저 생각하고 살았기에 세상에서 그의 삶은 힘들고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도 예레미야 예언자가 보인 것처럼 어리석게, 그러나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행복을 만나려는 자세로 살 수는 있을까요?

 

나의 삶에 무엇이 정해져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드러내는 삶의 모양에 따라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거나 허락하시는 행복은 달라지겠지만, 나는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하여 나는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이겠습니까?.

 

나에게 세상을 하느님의 뜻대로 바꿀 힘이 없다는 이유와 핑계로, 내가 신앙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세상의 기준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만족한다면 딱한 일입니다. 좋은 일을 피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