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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세계 교회 건축의 영성: 천장, 은총이 내려오는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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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7-27 ㅣ No.271

[세계 교회 건축의 영성] 천장, 은총이 내려오는 하늘

 

 

산 마르코 대성전, 이탈리아 베네치아.

 

 

성당 건축은 내세와 이 세상의 관계를 ‘저쪽’과 ‘이쪽’이라는 장소로 표현한다. 저쪽은 앞으로 올 세상과 하늘나라를, 이쪽은 이 세상을 나타낸다.

 

그러나 저쪽은 이쪽에 모인 회중을 끊임없이 초대한다. 제대가 바로 그곳이다. 미사를 올릴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제대 위에서 넘을 수 없는 경계를 넘어오신다. 이렇게 볼 때 성당은 단순히 벽으로 닫힌 건물이 아니다.

 

집의 천장은 영어로 ‘ceiling’인데 이는 라틴어 ‘caelum(천국, 하늘)’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 ‘caelum’은 하늘나라의 둥근 천장(볼트)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하늘나라를 어떤 공간으로 인식하고 이를 집에 비유하여 생각했다는 말이다.

 

이렇게 해서 아무리 작고 초라한 집일지라도 집은 ‘세계 속의 세계(a world within a world)’가 되고, 집 안에서 올려다보는 천장은 하늘을 보는 것과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하물며 그럴진대 하느님의 집인 성당은 어떠하겠는가? 당연히 성당의 천장이 하늘을 표상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다니는 성당의 천장이 과연 하늘나라의 천장, ‘세계 속의 세계’를 깊이 느끼게 해주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권능이 미치는 이 땅의 천국

 

성당의 중앙 돔이나 천장 또는 원형 제단의 반원 돔 안에 커다란 ‘판토크라토르(Pantocrator)’를 가짐으로써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묘사하는 것은 교회의 전통이었다. 판토크라토르는 만물의 주재자라는 뜻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임금처럼 왕관이나 홀(지휘봉)을 갖지 않으시고 바라보는 이의 정신을 커다란 눈으로 직접 보고 계신다. 이러한 판토크라토르가 건축 구조물과 함께할 때 성당의 내부는 하느님의 권능이 미치는 이땅의 천국이 된다.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대성전에는 예수 승천, 예언자, 성령 강림 등 몇 개의 돔이 반복되어 있다. 성당의 내부 전체에는 금빛 바탕에 수많은 모자이크가 그려져 있는데 주원형 제단 위에는 앉아계신 그리스도의 판토크라토르가 있다.

 

아치 밑면과 펜덴티브(사각형 평면의 변에서 올라온 아치가 그 위의 돔을 받칠 때 이웃하는 아치와 함께 만들어 내는 면)에도 많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산 조반니 세례당, 이탈리아 피렌체.

 

 

평면이 팔각형인 산 조반니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에는 장대한 모자이크 천장 한가운데 채광 창이 있는데 그것을 중심으로 바깥쪽으로 천사 성가대, 창세기, 성모 마리아와 그리스도, 요한 세례자 이야기, 그리고 밑의 3분의 1쯤에 최후의 심판이 차례대로 그려져 있다.

 

교회의 천장에는 구름도, 별이 수놓은 밤하늘도 있을 수 있으며, 하늘의 위엄 속에 앉으신 예수님도 계실 수 있다. 그렇게 하여 천상의 예루살렘에서 빛나는 별과 함께 영광에 빛나는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다.

 

상트 샤펠(Sainte-Chapelle)의 천장은 고딕의 리브 볼트가 엮인 푸른 바탕에 수많은 별이 그려져 있다. 천상의 예루살렘을 비추는 별들이다. 칼라일 대성당(Carlisle Cathedral)의 성가대석 위에 있는 감색의 14세기의 원통 볼트에는 금색의 별이 반짝이는 모습을 그려 넣었다. 종말에 빛날 별의 모습이다.

 

천장을 이루는 볼트 사이의 평탄한 면이 좁아 이런 이미지를 표현하기 어렵다면 편평한 표면에 돌이나 나무로 만든 돋을새김이나 장식에 새겨놓기도 한다.

 

이런 장식을 보스(boss)라고 부르는데, 고딕 대성당에서는 리브 볼트가 교차하는 키 스톤(아치 꼭대기의 쐐기돌)에 주로 나타난다. 영국 블리스버그의 성삼위 교회(Holy Trinity Church)는 보스에서 튀어나온 천사가 중앙의 지붕마루를 장식하고 있다.

 

성삼위 교회, 영국 블리스버그.

 

 

성당 건축의 원형은 성막이었다. 텐트가 사람을 감싸듯 지붕은 내부 공간을 감싸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옷이 몸을 감싸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하느님의 힘이 사람을 감싸는 이미지였다.

 

그런데 성당은 오랫동안 돌로 만들어졌으므로 사각형의 벽으로 둘러싸인 건물 위에 둥근 돔이 놓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 둥근 돔과 사각형의 벽과 기둥은 순수하게 건축적인 필요에 따라 생긴 것인데도, 둥근 돔은 하늘나라를 나타내고 벽으로 둘러싸인 밑 부분은 땅을 나타낸다고 여겼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성당의 공간 자체가 상징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성당 건축에서 중요한 것은, 한가운데에 서서 저쪽과 이쪽을 본 다음에, 눈을 머리 위로 돌리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아래에 모인 이들을 덮는 듯이 위와 아래가 이어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성당 건축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우리를 이끄는 깊이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위에서 아래로 우리를 덮듯이 나타나는 방향이다. 이렇게 하여 지붕 밑에 있는 공간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충만한 곳이 된다.

 

 

성당 안을 감싸는 구원의 은총

 

아야 소피아 성당, 터키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 성당(Hagia Sophia, 아야 소피아 또는 하기아 소피아는 537년 완공되어 1453년까지 그리스 정교회 성당이자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의 총본산이었다. 1204-1261년까지는 가톨릭교회의 성당이었으며, 1453-1931년까지는 모스크로 사용되었고, 1935년부터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이 지어지고 꼭 50년이 지난 뒤 시리아에서 쓰인 찬미가가 있다. 그것은 비잔틴 교회 건축을 요약하는 아야 소피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았던 에데사(Edessa) 성당을 묘사한 찬미가다.

 

둥근 볼트는 하늘나라처럼 확장되고 모자이크와 함께 별들처럼 비치고 있으며, 솟아오르는 돔은 하느님께서 계신 하늘나라 중의 하늘나라이고, 돔을 받치는 네 개의 기둥은 세상의 네 방향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들이 하늘과 땅, 사도들, 예언자들, 순교자들 그리고 참으로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표현하고 있다고 이 찬미가는 노래하였다. 건축의 구조가 하늘나라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의 백성과 하느님까지도 나타내고 있다는 노래다.

 

아야 소피아 성당은 거룩한 지혜이신 그리스도께 바쳐졌고, 긴 사각형의 바실리카에 볼트로 된 지붕이 결합하였다. 천장이 평탄한 바실리카와 크게 다르게, 벽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돔이 바닥에서 약 50m 높이로 떠있듯이 얹혀있다.

 

이 성당에는 엄청난 크기로 이쪽에서 저쪽으로라는 깊이 방향과 더불어 위와 아래의 높이 방향이 함께 나타난다. 이렇게 거대한 하나의 돔을 올린 이유는 오직 하나, 이 땅에 있으나 하늘나라를 닮은 것을 눈과 몸으로 보고 느끼게 해주려는 것이다. 거대한 돔은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하늘이고, 회중이 모이는 바닥은 땅이다. 이처럼 성당에서 위와 아래는 하늘과 땅의 관계에 있다.

 

그러나 이 돔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사람들을 보호하고자 에워싸는 공간이 아니다. 돔의 밑부분에는 40개의 창이 잇따라 뚫려있어 빛의 띠를 이룬다. 돔은 뚜렷하고 견고한 것이 아니라 무수한 빛의 신비한 공간 그 자체이며, 건물 전체가 거룩함으로 가득 차 있다.

 

아야 소피아의 공간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사람은 유스티아누스 대제의 궁정 역사가인 프로코피우스다. 그는 아야 소피아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였다.

 

“성당은 빛으로만 가득 차 있어서 이 장소는 밖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비추는 것이 아니라, 성당 안에서 나오는 빛으로 비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돔으로 덮인 성당의 내부는 하늘의 거룩한 빛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안에서 나오는 빛”은 은유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하늘나라의 돔’은 성당의 천장 전체가 금박을 입힌 모자이크로 덮여있고 이것이 둘러싸고 있는 모든 방에 반사된다. 여기 돔에는 그리스도께서 내려다보시며 당신의 백성에게 복을 내려주시는 이미지를 그렸다. 그래서 성당은 실제로도 ‘안에서 나오는 빛’으로 가득 차게 되며 그 빛으로 가깝게 다가와 하느님 백성을 감싸주신다.

 

프로코피우스는 또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께 기도하려고 이 성당에 들어오는 이의 … 마음은 하느님을 향해 들어올리고 고양되므로, 하느님께서는 멀리 떨어져 계실 수가 없고 당신 자신께서 선택하신 이 장소에서 특히 즐겨 머물고 계심에 틀림이 없다고 느낀다.”

 

빛으로 가득 찬 이 돔의 공간은 위에서 은총이 밑에 모인 이들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려와 ‘어제도 오늘도, 시대와 세기를 넘어,’ 하늘과 땅, 하느님과 사람이 일체가 됨을 드러낸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계가 아닌, 하느님과 나의 관계라는 세계 안에서 세상이 펼쳐지고 그 안에 구원의 은총이 내려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성당이라는 건축물의 공간으로 말이다.

 

* 김광현 안드레아 - 건축가. 서울대교구 반포본당 교우.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전주교구 천호성지 내 천호부활성당과 천호가톨릭성물박물관, 성바오로딸수도회 사도의 모후 집 등을 설계하였다.

 

[경향잡지, 2016년 7월호, 김광현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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