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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교회미술 현주소(상): 체계적 보존 관리 기구 설립, 구속력 있는 실행 규정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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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8-01 ㅣ No.87

교회미술 현주소 (상)


체계적 보존 관리 기구 설립ㆍ구속력 있는 실행 규정 마련을, 불법 복제ㆍ작가 몰래 판매ㆍ방치…

 

 

최근 복원이 완료된 미켈란젤로 마지막 프레스코화 중 하나인 '십자가에 못박힌 성 베드로'. 교황청은 2004년부터 5년 간 58억 원을 들여 교황궁 내 바오로 경당을 수리하고 미술품을 복원했다 ▶관련기사 7면. 미술품을 보존하기 위한 교황청의 이같은 노력은 성미술 작품들이 방치되거나 버려지고 있는 우리 현실을 반성하게 한다.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전례헌장」에 하느님 성전의 장식인 성당 기물이나 귀중한 작품들이 처분되거나 소멸되지 않도록 애써 돌보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전례헌장」 126항) [사진=CNS]

 

 

성미술품에 대한 관리와 보존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지만 아직까지도 이에 대한 관련 규정이나 지침이 미비한 상태다. 성미술품 실태와 보존 방안을 두 차례에 걸쳐 알아본다.

 

 

#1. 독창적이면서도 작품성 있는 성물을 제작해온 조각가 A씨. 그는 주문이 들어오면 작은 가정용 성물에서부터 제법 규모가 큰 성물까지 성심껏 작품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최근 몇년 전부터 가정용 성물 제작을 중단한 상태다.

 

이유는 무단 복제품 때문이다. A씨는 자신이 계약한 성물방에 성물을 공급하면 2~3주 뒤 어김없이 인근 성물방에서 자신의 작품을 복제한 성물을 싼 가격에 팔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복제품을 판 성물방에 항의도 해보고 누가 복제했는지 알아보려 했지만 성물방 측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달리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결국 A씨는 가정용 성물 제작을 포기했다.

 

A씨는 "성물 복제에 관한 관련 규정이 없어 속만 끓였다"면서 "교회가 성미술에 투신한 미술가들과 그들 작품을 보호할 법적 근거를 마련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2. 가톨릭 원로 미술가 B씨는 최근 황당한 소식을 접했다. 자신이 한 성당에 기증한 14처를 성당 측에서 팔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성당에 가보니 14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작품 행방은 묘연해졌다.

 

B씨는 "그 성당 분위기에 맞게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인데 작가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팔아버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냐"며 안타까워 했다.

 

B씨는 "법적으로 대응할까 고민했지만 일이 시끄러워질 것 같아 그냥 넘어갔다"면서 "작가와 작품을 무시하는 이런 일이 사실 교회 내에서 비일비재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3. 당대 내로라하는 미술가들이 참여해 지은 서울의 C성당. 1950년대 세워진 이 성당은 건축 설계부터 작가들이 참여했고 내부 제대와 제단, 스테인드글라스, 성상 등은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예술적 가치가 높은 성 미술품들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가톨릭 신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C성당 역시 건물을 증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성 미술품과 그 역사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성당 측은 아예 성당을 헐어버리고 새성당을 세웠다. 그 과정에서 성물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일부는 쓰레기더미에 묻혔다.

 

정수경(가타리나, 숙명여대 미술사학과) 박사는 "한국 가톨릭교회가 교회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톨릭교회 미술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할 기구 설립과 구속력 있는 실행 규정이 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한국 가톨릭교회 내에는 교회 미술품과 성물에 대한 관련 규정이나 지침이 미비한 상태다. 교회 미술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지만 어떤 작품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기초적 목록화 작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작가의 고유한 창작 성미술품이 버젓이 불법 복제돼 팔리고 있지만 대다수 사목자들은 이같은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심지어는 본당 사제가 무명 작가들에게 "어느 성당에 가보니 성모상이 좋던데 싼값에 그와 비슷한 성모상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

 

신자들은 제대나 제단이 지닌 의미는 물론이거니와 자신들 성당에 설치된 성상들과 스테인드글라스, 성화들이 어느 작가의 작품이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만큼 교회 미술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것이다.

 

이같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해 주교회의 문화위원회는 2006년 11월 '교회 문화유산 보존ㆍ관리'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교회 건축과 박물관, 미술 등 세부분으로 나눠 교회 작품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보존과 관리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당시 '교회 미술의 보존 현황과 개선 방안'을 발표했던 정수경 박사는 "한국 가톨릭 미술사를 연구하면서 역사적 기록들과 보존 현황을 제대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힘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작가 증언을 통해 작품이 제작됐다는 사실만 확인되고 있고 작품이 소멸돼 연구 자체가 진행될 수 없던 적도 있다"면서 "3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교회의 문화위원회는 심포지엄 후속작업을 계속 진행해 현재 '교회 문화 유산 보존과 관리'와 관련한 지침 초안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이 지침은 50여쪽 분량으로 검토 중에 있다.

 

그러나 이 지침은 권고안일 뿐 구속력 있는 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자칫 '허공의 메아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서울가톨릭미술가회 담당 지영현 신부는 "이제라도 각 교구별로 성미술품에 대한 실사 조사와 등록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면서 "오래된 성물과 미술품들은 본당이나 교구 차원에서 역사관 같은 박물관을 만들어 보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평화신문, 제1027호(2009년 7월 12일),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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