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강론자료

2023-09-17.....한국순교자대축일...이동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3-09-16 ㅣ No.2396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순교자 대축일 [0920]

지혜서 3,1-9       로마서 8,31-39      루카 9,23-26

2023. 9. 17. (주일로 옮겨서 기억함)

주제 : 신앙인으로 드러낼 본보기

오늘은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나보다 신앙을 먼저 받아들였고, 그 신앙을 세상의 삶에 비교하여 더 중요하게 드러냈다는 이유로, 정치를 담당하던 왕과 왕족 그리고 정치가들에게 미움을 사서 세상의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전례에서 사용하는 표현은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를 포함하고 1만명이 넘는다는 순교자가 보인 자세를 기억하는 대축일입니다.

 

전례에서 기억하는 날짜는 920일이고, 올해는 이번 주간의 수요일이 제날짜이지만, 신앙인들이 많이 모이는 날인 주일로 앞당겨서 전례를 거행합니다. 제날짜보다 앞당겨서 기념하자는 권고를 따라, 우리가 말로만 하는 기억이나 기념이 아니라, 현실의 생활로 드러나기를 바람으로 할 행동은 무엇이겠습니까?

 

순교자들보다 뒷날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내가 신앙을 행동으로 드러낸 성현들을 기억하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일을 기억하는 내가, 성현들보다 후대의 사람으로 살기를 바란 일은 없지만, 사람이 태어나는 순서는 개인이 정한 시각과 뜻에 따르는 일이 아니므로, 우리의 생각이 적용될 가능성은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시간에 따라서 그냥 이루어진 일이라고 아무런 일도 할 것이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는 나중에 살게 된 사람으로서 나보다 앞서 살았던 분들이 어떤 삶의 태도를 드러낼 것인지를 기억하고, 내 삶으로는 무엇을 본받거나 무엇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일이 좋을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순교(殉敎)'라는 낱말은, 신앙인의 삶에서 움직이는 세상의 삶에 관해서 먼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지는 않더라도 신앙을 증거하고 증언했다는 이유로 내 삶에 찾아온 죽음에 관해서 먼저 말합니다. 순교라는 말은 많은 사람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현실의 삶에서 그 의미를 찾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드러낼 삶의 태도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보이는 행동에서 그 의미를 찾자는 일입니다. 물론 우리가 신앙에서 죽음이라는 표현을 말한다고 해서, 죽음을 찬양하자는 일은 아닙니다. 살아있기에 내 몸으로 드러내는 행동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그 중요하게 여기는 사실을 자기의 몸으로 드러내는 삶의 방법과 태도를 올바르게 선택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관해 들으면서 제대로 실천하려는 신앙인에게 세상의 고통은 힘을 쓰지 못할까요? 세상에서 고통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는 고통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지혜서의 말씀은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그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바르게 하기를 권고합니다.

 

신앙은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자세를 바꾸게 할까요? 아니면 과거에 신앙을 낮추어 보려고 했던 사람들처럼, 현실에서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도록 마약의 기능을 발휘한다고 여겨서, 그 신앙을 거부해야 옳겠습니까?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더라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현실이 역경이고 고난이라면 이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말로만 기도하라는 권고여서는 할 일도 아니고, 그냥 참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곤란한 일입니다. 그런 목적을 갖고 행동하면서도 우리가 가져야 하는 올바른 태도를 오늘 지혜서의 말씀으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기대하며 사는 일은 좋지만, 신앙을 탓하거나 세상에 발휘하는 신앙의 의미를 바르게 알아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말을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참된 축복은 하느님에게 오는 것이지, 우리가 세상을 좋은 마음으로 대했다고 해서, 세상이 나에게 주는 복은 아닙니다.

 

지혜서의 저자가 우리에게 권고하는 자세를 기억하고, 바오로사도가 로마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강조한 자세를 가진 사람으로서 산다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축복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하느님의 축복을 기대하는 사람이기에, 세상에서 오는 어려움도 충분히 이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을 두렵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으로 산다는 일은 세상의 한계를 알기에 그 너머를 볼 줄 안다는 뜻이고,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느님의 축복을 기대하는 사람으로 머물고 축복과 영광을 얻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신앙의 본보기를 드러냈던, 우리의 성인과 순교자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 우리도 하느님의 사랑에 충실하게 일치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7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