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5일 (금)
(자) 대림 제2주간 금요일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성경자료

[성경] 히브리어 산책: 다라크, 데레크, 할라크(밟다, 길,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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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02 ㅣ No.3672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다라크, 데레크, 할라크


주님을 따라 주님과 함께 주님의 길을 밟자

 

 

- 다라크. ‘밟다’는 뜻의 동사원형이다. 발로 밟는 노동을 뜻하기도 한다. 동사 어근은 이처럼 대문자로 적지만 관습적으로 ‘아’(?)를 넣어 읽는다. 그러므로 위 글자는 ‘다라크’로 발음한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은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설명해 주셨다.’(루카 24,27) 필자는 오늘의 복음을 위해 히브리어 단어 몇 개를 묵혀 두었다. 보잘것없는 지식이 엠마오로 떠나는 분들의 ‘길 위의 성찰’에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좋겠다.

 

 

‘다라크’는 ‘밟다’

 

히브리어 ‘다라크’는 ‘밟다’는 뜻의 동사다. 발을 내디뎌 한 발 한 발 밟는 것을 다라크라 한다. 여호수아기를 보자. 백성이 요르단 강 서쪽 지역을 나눌 때, 칼렙이 여호수아를 찾아가 주님께서 복을 주셨음을 상기시킨다. 그는 “네가 주 나의 하느님을 온전히 따랐으니, 네 발로 다라크한(밟은)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들의 상속 재산이 될 것이다.”(여호 14,9)라는 주님의 약속이 꼭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을 품었고, 그 희망은 실현되었다.

 

다라크는 또한 발로 꽉꽉 누르는 노동을 의미했다. 포도주를 짜거나 올리브기름을 힘껏 밟아서 짜는 일을 다라크라고 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포도(를) 다라크하는(밟는) 이”(아모 9,13; 이사 16,10; 63,2)는 수확한 포도를 힘차게 밟아서 포도주를 만드는 사람을 일컬었다. 올리브를 다라크하는 것은 ‘올리브를 짜다’(미카 6,15)로 옮기기도 한다.

 

데레크. ‘밟은 것’에서 파생된 말로서, 길을 의미한다. 달레트(d) 안의 하늘색 점은 일부 자음(bgdkpt)으로 음절이 시작한다는 표시이므로(약한 다게쉬), d를 겹쳐 쓰지 않는다. k안에 세로로 찍은 파란색 두 점은 어떤 음가도 없기에 발음되지 않는다.

 

 

데레크는 길(道)이다

 

데레크(길)는 다라크에서 파생한 말이다. 문자 그대로 하면 ‘밟은 것’이라고 옮길 수 있다. 밟아서 평평해진 땅이요, 그렇게 난 길을 데레크라고 한다. 무릇 길은 원래부터 있지 않았다. 인간이 한 발 한 발 밟아서 길이 된 것이다. 길은 ‘밟은 것’이기에, 계속해서 밟지 않으면 길은 사라질 것이다. 교회의 거룩한 전승도 마찬가지 아닐까? 누군가 전승의 길을 계속해서 밟아야만 전승이 계승될 것이다.

 

데레크는 ‘집 밖’을 대표하는 말이기도 했다. 모세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데레크를(길을) 갈 때나”(신명 6,7) 한결같이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라고 권유한다. ‘집과 데레크(길)’는 인간이 지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공간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하느님은 태초의 낙원에 이미 데레크(길)를 마련해 주셨다. 인간이 죄를 지어 에덴에서 쫓겨날 때, 하느님은 “에덴 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 생명 나무에 이르는 데레크를(길을) 지키게 하셨다.”(창세 3,24)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거닐었을 데레크(길)가 차단된 것도 인간적 죄의 결과 중 하나다.

 

데레크는 한자의 도(道)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계약을 베푸실 때, “내가 그를 선택한 것은… 그들이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여 주님의 데레크를(길을) 지키게”(창세 18,19) 하시려는 뜻이 있었다. ‘주님의 데레크’는 곧 ‘주님의 도(道)’다. 이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계약부터 ‘주님의 도(道)’를 지키는 것은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는 것임이 명확했다.

 

- 할라크. ‘걷다’ 또는 ‘따르다’를 뜻한다. 역시 동사 어근이므로 관습적으로 ‘아’(?)를 넣어, ‘할라크’로 읽는다.

 

 

하느님 체험은 할라크로 이어진다

 

한편 할라크는 ‘걷다’를 의미하는 말이다. 구약성경을 보면 특이하게도 하느님 체험을 깊이 한 사람은 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길을 떠나는 일이 많았다. 지면의 한계 때문에 두 가지 예만 들겠다. 아브라함은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할라크해라(가거라)”(창세 12,1)는 명령을 받고 길을 떠났고, 호세아 예언자도 “너는 할라크하여(가서) 창녀와 창녀의 자식들을 맞아들여라”(호세 1,2)는 주님의 말씀을 따랐다.

 

할라크는 그냥 터벅터벅 걷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할라크에는 ‘따르다’는 의미도 있다. 모세는 ‘바알을 할라크한(따라간)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모두 멸망시키셨다’(신명 4,3)는 광야의 기억을 상기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다른 신들을 할라크하여(따라가)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예레 7,6) 말 것을 호소했다.

 

하느님을 체험하면, 데레크(길)로 나가서 할라크한다(걷는다). 그것은 하느님을 따르는(할라크) 것이다. 원죄로 인해 하느님과 함께 걸었던 길이 차단되었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의 길이 새롭게 열렸다. 예수님과 함께 걷는 길은 세상에서 일어난 일과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길이다. 주님을 따라 주님과 함께 주님의 길을 밟는 모든 ‘엠마오 도반(道伴)’들이 큰 복 받으시길 기원한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4월 30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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