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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헌ㅣ메시지

사랑의 기쁨에 관한 첫 고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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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5-14 ㅣ No.771

「사랑의 기쁨」에 관한 첫 고찰들 (상)


교황은 왜 이혼 후 재혼자들의 성체성사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나?

 

 

지난 4월 8일에 발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에 관해 세계 각국의 여러 언론이 정치적인 해석 방법으로 저마다 아전인수적 의견들을 제시하여 호도하고 있다. 이에 교회 내의 혼인과 가정 분야에 관한 연구에서 최고의 권위자라 할 수 있는 로마 교황청립 라테란대학교 혼인과 가정 연구를 위한 요한 바오로 2세 대학 학장인 리비오 멜리나(Livio Melina) 몬시뇰이 「사랑의 기쁨」에 간략한 해설 원고를 발표했다. 이 원고는 이탈리아의 여러 언론에서 전문을 게재하는 등 반향을 일으켰다.

 

평화신문은 “한국에서도 이 원고가 소개되기를 바란다”고 희망한 멜리나 몬시뇰의 요청에 따라 한국 교회의 사목자들과 신자들이 교황의 공적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복음화에 온전히 투신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전문을 우리말로 옮겨 2회에 걸쳐 연재한다. 우리말 번역은 광주가톨릭대학교 윤리신학 교수이자 대전가톨릭대학교 혼인과 가정 신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는 전주교구 김상용(요셉) 신부가 했다.

 

 

혼인과 가정 연구를 위한 요한 바오로 2세 대학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2년 이상에 걸친 시노드 여정을 마감하면서 내놓으신 시노드 후속 사도적 권고 「사랑의 기쁨」을 존경과 감사, 그리고 자녀된 자세로 환영합니다. 우리는 ‘가정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탄생된 영감의 풍요로움을 천착해 온 우리의 공헌이 간과되지 않도록 열리고 분명하며 기탄없는 태도로써 이 여정을 함께 하였습니다. 늘 가정 사목의 구체적 체험과 긴밀한 관계 안에서 수행해 온 연구와 교육을 통하여 우리의 노력은 34년 동안 성숙되어 온 것입니다.

 

이 문헌을 일별한 후에 떠오른 생각들을 곧바로 나누고 싶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 가르침은 가정들을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구체적 문제점들과 유약성 안에서 만나고, 그들이 사랑을 통하여 회개하고 성장할 수 있는 모든 길을 열어놓은 채로, 자비의 관점에서 가정이라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자 하는 다함 없는 사목적 열정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가르침에 마땅한 주의를 기울여서 그것을 심화시키는 연구가 이루어질 시간들과 기회들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 안팎으로 벌어진 논쟁과 주장들은 하나의 구체적인 물음에 큰 관심을 보여왔습니다. 그것은 국법상 새로 결합한 이혼자들이 영성체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으로서, 사목적 관점으로 볼 때 다른 문제들에 비해 더 중요한 것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사실, 프란치스코 교황 자신이 이 문제가 시노드의 중심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는, 혼인의 사회적 역할 상실, 가정을 위협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모든 가정이 그리스도를 모시도록 하는 큰 과제 등, 가정에 관하여 교회가 맞고 있는 큰 도전을 생각할 때에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문제(국법상 새로 결합한 이혼자들의 영성체 가능성 여부 문제)에 관해서만 주목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교리적 차원이 아니라 사목적 차원만으로라도 교회의 입장이 혹시 변화하게 될는지를 확인하려고 하였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들을 위한 동반과 통합의 여정

 

그러므로, “최근에 출판된 이 문헌이 적어도 몇몇 경우들에 대해서는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의 영성체를 허용함으로써, 과연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에 변화를 가져온 것인가”라고 묻는 것은 옳습니다.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제8장을 읽고 도출해낼 수 있는 가능한 결론은 오직 하나입니다. 사도적 권고 「사랑의 기쁨」은 「가정 공동체」 제84항이 언급하고 「사랑의 성사」 제29항이 재확인하고 있는 교리적 근거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교회의 가르침을 변화시키지 않았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제8장의 어디에서도 성체성사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몇몇 경우들에는 국법상 새로 결합한 이혼자들이 성체성사에 다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하고 있는 내용을 우리는 어디에서도 읽어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의 교도권으로 항구히 견지해 온 교회의 가르침과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는 바에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이 문헌이 영성체에 관해서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분명하다는 점에 관해서 최소한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가정 공동체」에서 그리고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사랑의 성사」에서 사실 이 점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따라서 교회 내에서의 공동합의성 원리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시노드에서 결정된 사항들을 넘어서는 결정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문헌이 제안하고 있는 바는 세례받은 이 사람들이 복음 생활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는 통합의 여정입니다. 사도적 권고를 소개하는 자리에 있었던 쇤보른 추기경도 상기시키고 있는 바와 같이, 「가정 공동체」 제84항(그리고 「사랑의 성사」 제29항)은 계속해서 사목적 빛을 제시해주고 있으며 모든 경우에 있어서 필요한 식별의 객관적 기준들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이 규정들은 주관적 죄책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모든 복음화가 지향하고 있는 목표를 가리켜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만인에게, 예외 없이 그리고 경우들을 따로따로 헤아리지 않고, 베풀도록 부름 받은 바, 곧 복음에 일치하는 충만한 삶을 말합니다. 이 삶은 사실 가능합니다. 복음이 요청하고 있는 바이기 때문입니다(「사랑의 기쁨」 제102항). [평화신문, 2016년 5월 8일, 리비오 멜리나 몬시뇰(교황청립 요한 바오로 2세 대학 학장), 번역 김상용 신부(광주가톨릭대 교수)]

 

 

「사랑의 기쁨」에 관한 첫 고찰들 (하)

 

혼인과 가정에 대한 교회 가르침 재확인

 

 

그렇다면, 제8장의 새로운 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교리의 새로운 변화가 아닙니다.

 

새로운 점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비의 사목적 접근에 있습니다. 점진적인 통합의 원리에 따라, 멀리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가져다주고자 하는 그분의 갈망에 있습니다. 도덕 전통이 항구하게 인정해왔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35항이 언급하고 있는 바, 즉 무지, 공포, 무절제한 감정 그리고 여타의 이유로 해서 주관적으로 죄책이 없을지라도 객관적으로 죄의 상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관해서 문헌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 점은 중요합니다. 이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단죄해서는 안 되며,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하듯이 자비와 인내로써 대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경감되거나 면제될 수 있는 행위자의 책임을 두고 선험적으로 죄의 도덕성을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랑의 기쁨”은 그가 죄의 객관적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가능성과 필요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사랑의 기쁨」 제305항).

 

 

교회를 위한 새로운 사목적 관점

 

결의론적이고 편파적인 해석들을 배제해버린다면, 이 문헌을 통해 교황께서 우리에게 정말 말씀하고자 하신 것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단순하고도 단정적으로 답변할 수 있습니다. 교황께서 가정 복음을 새로운 방식으로 선포하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2014년 5월 예루살렘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이루어졌던 인터뷰에서 시노드의 경과를 고무시키는 데에 있어서 당신이 제기했던 근본적인 물음은 결의론적 물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가정에 가져다주시는 바”를 긴급히 선포하는 것이었다고 하심으로써, 교황님 스스로가 해석을 위한 기초 열쇠를 제공했습니다. 문헌에서도 교황님께서는, 서구 사회에 살고 있는 세례받은 이들 중에도 혼인을 더 이상 기쁜 소식으로서 인식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출발하십니다. 이것이 사도적 권고가 용기를 가지고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사목적 문제입니다. 교황께서는 교회 생활을 위한 혼인과 가정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데에 있어서 새로운 사목적 여로를 열기를 원하십니다.

 

이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 바오로 사도가 보다 나은 길로서 사랑을 말하고 있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3장의 ‘사랑의 찬가’를 교황께서 당신 묵상의 중심에 정위시키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같이 교황께서는 사랑이야말로 인간적 사랑에 관한 하느님의 계획에 대한 충심을 가지고 달려가야 할 항상 새로운 길임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적 사랑에 관한 하느님의 이 계획은 당연히 기초적인 차원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문헌이 인용하고 있는(제150항 이하 참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몸 신학이 이를 상기시킨 바 있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설명하고 주지시키고 계십니다. 이 기초적 차원들이란, 성의 상이성, 불가해소적이고 충실한 단일성, 그리고 생명의 풍요로움에로의 개방입니다.

 

사랑의 이 길을 걷는 데에 있어서 결정적인 몇몇 요소들이 제시됩니다.

 

1. 사랑을 향한 소명으로서의 교육이라는 중심 주제

 

이 문헌에서는 “여정”, “역사”, “이야기”에 대하여 자주 말하고 있습니다. 시간 안에서 자유의 차원이 지니고 있는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용어들입니다. 교회는 단순히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본래적인 그들 자신이 되게 하고 가능한 목표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도우면서 그들의 여정에 함께 합니다. “영원히”라는, 인격 전반이 개재되고 철회 불가능한 선택 앞에서 (현실적으로) 발견되는 정서적 문맹과 자유의 유약성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변은 가정·교회·사회단체가 수행해야 할 양성 작업의 쇄신 이외에 다른 어떤 것이 될 수 없습니다.

 

2. 회칙 「인간 생명」에 기초한 부부애와 출산에 관한 가르침의 명시

 

성적 친밀성을 복음화하기 위하여 교회가 제시한 바오로 6세 교황의 예언적 회칙(2018년에 반포 50주년을 기념하게 됩니다)에 재차 주의를 기울일 과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성 혁명에 기반하여 몸과 섹슈얼리티의 언어를 망각하고 있는 문화에 매우 필요한 빛입니다.

 

3. 교회의 사목 중심에 가정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

 

무엇보다, 가정은 풀어야 할 사목적 문제들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오히려, 생활하고 현존하는 하나의 주체, 즉 복음화를 위한 주요 자원입니다. 이는 보다 가정적인 교회, “하느님의 가정”이라는 면모를 지니고 있는 교회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그러합니다. 가정이 작은 교회이듯이, 교회 또한 하느님의 가정으로서의 면모들과 삶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제86항~제87항).

 

4. 그리스도교적 삶의 성사적 특성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살에까지 도달하고 인간의 살을 변모시킨 역사적 사건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바와, 그리스도교 도덕을 위기에 빠진 서구 세계의 정신에 적용하려고 하는 바에 관한 것들은 탁상에서 만들어진 사목적 계획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에 관한 어떠한 감정주의적 태도 혹은 세속적인 계약주의적 시각을 극복하고, 그리스도교 삶에서 소명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혼인의 의미를 복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의론적 논리에서 탈피하여, 이 문헌이 사목의 결정적 문제로서 교육의 문제를 중심에 놓고 사목적 도전들을 맞고자 하는 드넓은 긍정적 지평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에 교황청립 요한 바오로 2세 대학은 부여받은 사명과 신학적·사목적 차원에서 성숙해 온 체험으로 인해 매우 특별한 소명을 느끼고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5월 15일, 리비오 멜리나 몬시뇰(교황청립 요한 바오로 2세 대학 학장), 번역 김상용 신부(광주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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