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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일본 나가사키현 그리스도교 사적지 순례2: 고토 열도가 기도의 섬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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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0-21 ㅣ No.1065

일본 나가사키현 그리스도교 사적지 순례 (하) 고토 열도가 '기도의 섬'이 되기까지

피땀 어린 신앙유산의 보고, 세계에 널리 알려야



- 고토열도 가쿠레키리시탄들은 섬 곳곳에 성당 50개를 세우며 신앙의 자유를 되찾은 기쁨을 만끽했다. 한 주민이 소라 나팔을 불어 미사 시간을 알리던 옛 풍습을 재연하고 있다.
 

일본 남서부에 있는 나가사키현.


일본 천주교 신자 수는 53만여 명으로 복음화율은 0.4%에 불과하다. 1614년 금교령이 내려졌을 때 신자가 20만여 명이었으니 세기가 네 번 바뀌는 긴 세월 동안 고작 33만 명이 늘어난 것이다.

일본 천주교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나가사키현은 가톨릭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일본에서 그나마 가톨릭의 흔적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1549년 일본에 도착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1552)는 이듬해 나가사키현의 작은 섬 히라도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했다.

나가사키대교구 복음화율은 4.35%로 일본 평균의 10배가 넘고, 일본 전체 성당의 13.3%(133개)가 나가사키현에 있다. 특히 1566년 선교사 루이스 데 알메이다(Luis de Al meida) 신부에 의해 천주교가 전파된 고토(五島)열도에는 무려 50개의 성당이 있다. 복음화율은 25%가 넘는다.

나가사키대교구와 나가사키현은 쿠로시마성당을 비롯한 천주교 사적지 12곳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박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신앙유산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고, 신자들에게는 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아울러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고 있는 사적지들이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통해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나가사키현 천주교 역사와 관련 유산을 소개한다.


"이 나라는 늪지대야. 결국 자네도 알게 될 테지만, 이 나라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늪지대였어. 어떤 묘목이라도 그 늪지대에 심으면 뿌리가 썩고 잎이 누렇게 말라 버리지. 우리는 이 늪지대에 그리스도교라는 묘목을 심은 거야."

- 신부와 키리시탄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준다는 박해시대 공지문. 신부는 은전 500냥, 수도자는 은전 300냥의 현상금이 걸렸다.


일본 천주교 박해사를 다룬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의 한 구절이다. 자신 때문에 신자들이 모진 고문을 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배교한 페레이라 신부는 굳은 선교의지를 갖고 있던 로드리고 신부를 만나 '왜 일본에 가톨릭이 뿌리 내릴 수 없는가'에 대해 설명한다.

일본은 '늪지대'라는 단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천주교에 끔찍한 박해를 가했다. 1614년 에도막부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일본 전역에 금교령이 내려진 후 1873년 신앙의 자유를 되찾을 때까지 25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일본의 키리시탄(포르투갈어 크리스타오에서 유래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뜻)들은 박해에 시달리며 죽임을 당했다.
 

포상금 내걸어 배교 부추겨

일본 정부는 키리시탄을 잡기 위해 막대한 포상금을 내걸어 키리시탄들 간의 배신을 부추겼다. 또 정기적으로 후미에(예수님, 성모 마리아 등을 새긴 목판ㆍ동판)를 밟는 날을 만들어 키리시탄을 색출하고 고문했다.

1566년 천주교가 전파돼 '기도의 섬'이 된 고토도 예외는 아니었다. 20㎡ 남짓한 방에 키리시탄 300명을 몰아넣어 압사시키고, 귀에 구멍을 뚫은 채로 거꾸로 매달아 조금씩 피를 흘리게 해 고통을 주는 '구멍 매달기' 등 온갖 끔찍한 고문으로 배교를 강요했다. 또 순교한 키리시탄 목을 잘라 사람이 볼 수 있는 장소에 내걸어 공포감을 조성했다. 


- 고토열도 인구가 줄어들면서 빈 성당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무인도에 있는 노쿠비성당.


끝이 없을 것만 같던 박해가 끝나자 곳곳에 숨어 신앙을 지켜온 키리시탄들은 신앙의 자유를 되찾은 기쁨을 만끽했다. 섬 구석구석에 성당이 세워졌다. 배를 타고 성당을 가야 했던 신자들은 아예 자신이 사는 섬에 성당을 지었다. 이렇게 해서 일본 남서부의 작은 섬 고토 열도에 50개의 성당이 생겼다.

100여 년이 지난 현재, 본당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곳이 하나 둘씩 늘고 있다. 젊은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도시로 나가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 수도 함께 줄면서 성당도 비어가고 있다.

- 고토열도 와카마쓰섬 부근에 있는 키리시탄 동굴. 키리시탄 몇 명이 박해를 피해 동굴로 숨어들었지만 발각돼 고문을 받았다.


고토열도에는 노쿠비성당, 카시라가지마성당, (구)고린성당, 에가미성당 등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준비하고 있는 성당 4곳이 있다. 1908년 건립된 노쿠비성당이 있는 노자키섬은 몇 년 전 무인도가 됐다. 에가미성당(1918년 건립)이 있는 마을에는 두 가구만 살고 있다.

1931년 지어진 (구)고린성당도 문화재로만 남아있다. 4개 성당 중 미사를 봉헌하며 본당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 곳은 카시라가지마성당 뿐이다. 성당은 50개지만 사제는 스무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기자 일행을 안내한 이리구치 이토시(나가사키 순례센터)씨는 "몇 명 되지 않는 신자들 힘만으로 100여 년 전 지어진 낡은 성당을 유지ㆍ관리하기는 힘에 부친다"면서 "이대로 두면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기도의 섬'이 잊히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리구치씨는 "이런 우려 때문에 나가사키현과 나가사키대교구가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 유네스코와 국가가 문화재를 관리하게 된다.

1865년 가쿠레키리시탄(잠복 그리스도인)이 사제를 찾아와 마리아상을 찾으며 "당신과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한 '신도 발견'이 일어난 오우라성당(1864년 건립)과 1886년 쿠로시마와 소토메에서 이주해 온 신자들에 의해 설립된 히라도시 타비라성당(1918년 건립)도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준비하고 있다.

박해 기간이 워낙 길어서인지 신자들은 지금도 신앙을 드러내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 지키는 것만을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발전(선교)에 대한 의지가 약해 교세는 수십년 째 제자리걸음이다.


소극적 신앙 교회 발전 발목 잡아

나가사키현 시마바라성당 마당에 있는 우치보리 3형제 순교자 동상. 막내는 고문을 받는 중에 손가락이 잘렸다.


또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성직자들 고민이 크다. 수도자 수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히라도시 니시코바 유치원에서 사도직활동을 하고 있는 하야시 사유리(마리아) 수녀는 "내가 종신서원(1990년)을 할 때만 해도 수도자들이 꽤 많았는데 20여 년 동안 많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타비라본당 이와무라 주임신부는 "일본교회 신자들은 자발적으로 나서서 무언가를 하는 일이 거의 없고 사제가 시키는 활동만 하는 경향이 있다"며 "신자들 연령대는 계속해서 높아지는데 그나마 있는 신자들도 소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교회가 좀처럼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한국교회 신자들은 소공동체 모임, 레지오마리애 같은 단체활동에 적극적이지만 일본 신자들은 미사 참례를 하면 의무를 다 했다고 생각한다. 이와무라 주임신부에게 레지오마리애에 관해 묻자 "우리 본당에 레지오마리애가 있었나?"하고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1868년 일본에 와 1879년 소토메에 부임한 도로 신부가 건립한 시쯔성당과 오노성당도 세계문화유산 등록 후보다. 도로 신부는 가쿠레키리시탄이 많이 살고 있던 소토메에서 천주교 부활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밀농사와 인쇄사업으로 가난에 허덕이던 소토메 주민들에게 삶의 기반을 마련해 준 도로 신부는 '소토메의 아버지'로 불렸다.

나가사키순례센터장 나카무 미치루 신부는 "박해시대부터 신앙의 자유를 되찾을 때까지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나가시키현 교회 유산에 대해 국민들은 물론이고 신자들조차 관심을 보이지 않아 아쉽다"며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순조롭게 이뤄져 전 세계 교회에 일본교회 역사가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평화신문, 2012년 10월 21일, 나가사키=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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