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강론자료

1109-라떼라노성전 봉헌일-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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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11-08 ㅣ No.524

라떼라노 대성전 봉헌축일 [1109]

 

        에제키엘 47,1-2.8-9.12     1고린토 3,9ㄷ-11.16-17      요한 2,13-22

    2003. 11. 9. (주일)

 

주제 : 내 몸은 하느님을 모시는 성전(聖殿)

 

한 주간 안녕하셨습니까?  입동이 지났으니 겨울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건강조심하시기.......

오늘은 로마에 있는 라떼라노 성전 봉헌 축일입니다.  오늘 축일은 그리스도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인정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부인에게 속해있던 궁전을 교황님에게 기증(313년)했고, 멜키아데스 교황은 그 궁전을 성전으로 개조하여 하느님께 봉헌한데서 비롯한 축제일입니다.

 

오늘 기억하는 라떼라노 성전이 우리 땅에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마음먹는다고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 라떼라노 성전을 기억하는 축일에 보이지도 않고, 쉽게 볼 수도 없는 성전에 대한 것을 말하는 것보다는 현실의 우리를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선교지역으로 돼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신자들의 숫자가 늘어나기는 했어도, 만족할 만한 숫자에 도달하지 못했고, 신앙에 대해서 소홀한 냉담 신자들의 비율이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유럽의 다른 그리스도교 국가들이 서러워할 만큼 열심히 뒤쫓아 뛰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신앙을 올바른 시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동양적인 시각, 기복적인 모습으로 바꿔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엊그제(7일, 금요일) 밤 9시가 넘어서 마당을 거닐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씨였는데, 어떤 사람이 빗장이 걸린 철문을 이리저리 흔들다가 그냥 갔습니다.  그로부터 5분정도 지났을까, 한 사람이 산 쪽에서 내려오면서 큰소리쳤습니다.  ‘뭔 교회가 이따위야. 차도 세워놓지 못하게 문을 잠가놓고, 그러면서 뭘 한다고?.......’  아마도 문을 흔들던 사람인 듯 했습니다.  자기 차를 세우지 못하게 했다고, 못된 말을 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람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신자들 가운데는 동네 사람들을 위해서 주차장을 무조건 개방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성전의 의미는 여러분이 들어와 있는 건물을 가리키는 말도 되고, 오늘 독서에서 들은 말씀처럼 ‘우리들 각자의 몸이 성전’도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몸이 하느님을 모시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힘을 드러내는 성전이라고 느끼십니까?  우리가 바오로 사도의 말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던 간에 내가 하는 행동은 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이해해 줘야한다고 이야기하고, 나는 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겸손하고 신중하게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지 그 원리가 참으로 묘했습니다.  가까운 신자들과 동네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보는데, 정치꾼들이 정치 개혁한다고 말하면서 ‘자기 밥그릇’ 지키려고 애쓰는 것을 보며 우리가 뭐라고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정치꾼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본래 그들의 속성인데 말입니다.

 

우리는 신앙인들입니다.  신앙인이란 신앙을 자기 삶의 척도, 자기 삶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성당에 들어와 있는 우리는 자기 몸이 성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과연 올바른 성전의 모습을 나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있는지 돌이켜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전이라면 당연히 세상을 향하여 생명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에제키엘 1 독서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 성전의 우편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은 죽음의 바다, 짠물 호수마저도 생명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바꾼다고 했습니다.  실망하기 쉽게 변한 세상을 보면서 신앙인의 숫자가 적어서 세상이 그렇게 됐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창세기 18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와는 분명 다를 수 있어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 구원받지 못하고, 4명밖에 없던 곳이었기에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도시입니다.

 

신앙은 현실과 따로 놀기 쉽습니다.  많은 경우 신앙인이라고 여기는 것은 우리가 성당에 왔을 때만 그렇게 생각합니다.  성당을 벗어나면 아무 일이나 해도 괜찮은 일반인으로 겉모양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그렇게 볼 수 있다면, 세상의 기준에 따라 편리한대로 움직인 신앙인들이 변질된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사람을 이상한 쪽으로 변하게 하는 세상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겠습니까?

 

오늘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오신다면, 복음에 나오는 것과 같이 흥분하지 않으실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성전이 제 모습을 갖추고 있는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성전을 제대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를 물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 몸이 성전이라는 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산다면 분명 그 성전을 향하여 예수님은 다시 채찍을 잡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채찍을 휘두르신 일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채찍을 두려워하여 몸을 움츠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도 생명의 힘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성전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세상을 향하여 참된 생명의 힘을 나눠주는 곳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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