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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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부서진 세상 속의 레지오 단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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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6-06 ㅣ No.875

[레지오 영성] 부서진 세상 속의 레지오 단원들

 

 

며칠 전, 사랑하는 15세 아들을 백혈병으로 먼저 하느님의 품으로 떠나보낸 어머니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겹고 착하디착한 아들과의 이별, 사경을 헤매는 아들에게 어떠한 힘도 되어 주지 못하고 그 죽음을 망연히 바라보아야만 했던 한 어머니의 깊은 슬픔과 자책과 원망의 넋두리를 들으면서 7년 전에 들었던 또 하나의 슬픈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귀엽고 이쁜 8세 아들을 선천성 면역결핍증으로 잃고서 그 슬프고 아프고 텅 빈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사별자모임을 찾아야 했던 막 세례를 받은 한 엄마의 이야기였습니다.

 

구구절절 두 어머니의 슬픈 이야기가 너무도 닮아있지만, 또한 두 분 모두 어떤 위로의 샘이랄까, 어떤 생명의 빛이랄까 어떤 희망의 씨앗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성모님이었습니다. 두 분 모두 이야기의 끝부분에 성모님을 언급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아들의 고통을 애절하게 지켜보셔야 했고, 결국 십자가에서 내려진 아들의 싸늘한 시신을 안고서 통곡하셔야 했던 성모님의 찢어지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 그 극심한 고통의 길을 착하신 아드님과 함께 걸으셔야만 했다면 자신들의 감당하기 힘든 이 까닭 모를 고통에도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신앙의 고백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의 아픔을 아시는 위로의 성모님, 이분들의 피맺힌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시오!’

 

시메온의 예언대로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루카 2,35)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의 죄로 말미암아 고통과 죽음이 이 세상 속으로 들어왔다고 가르치면서도(창세 3장, 4장) 의인들의 운명에 대하여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지혜 3,2-3)라며 의인들의 고통을 계시해주고 있습니다. 나아가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지혜 3,4)라며 어떤 악행에 대한 대가를 의인들이 치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러한 의인들에게 보상 즉, 장차 그들이 하늘에서 누릴 평화와 영광이 약속되고 있으나, 선하고 무죄한 이들의 고통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잊고 맙니다. 아니 끊임없는 의문에 휩싸이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왜 하필 이들에게…?’ ‘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정의의 하느님은 어디에…?’ 등등. 사실 무죄한 이들의 고통은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습니다. 특히 이러한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 때 우리는 연거푸 무심한 하늘을 향해 한탄과 원망을 쏟아붓기 일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고통받는 의인들을 ‘고난받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라고도 합니다.

 

 

세상의 치유는 ‘주님, 제 탓입니다.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고백할 때 가능해

 

그렇습니다! 과연 우리는 죄로 부서진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죄가 있는 한 이 세상에는 혼란과 분열, 고통과 어둠, 그리고 죽음이 혼재할 것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무죄한 이들의 고통과 의인들의 희생을 우리는 하느님께 봉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서는 8장에서 우리에게 더 큰 희망을 알려줍니다. 우리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지만,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으며, 마침내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이라고 희망찬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희망 속에서 인내하기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4-25)

 

그러므로 이 부서진 세상을 치유하는 데에 성모님과 함께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레지오 단원들은 무엇보다 이 희망과 인내심을 깊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누차 발현하셔서 당부하신 대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이 희망과 인내로써 끊임없이 기도하고 활동합니다. 레지오 교본은 제2장에서 레지오의 목적은 단원들의 성화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며, 단원들은 “뱀의 머리를 바수고 그리스도 왕국을 세우는 성모님과 교회의 사업에 기도와 활동으로 협력함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한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5장의 말씀도 레지오 단원들에게 하나의 등불이 되어 줍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5,3-5)

 

그리고 부서진 세상을 치유하기 위하여 레지오 단원들은 자신 또한 부서진 존재임을 깊이 의식하며 계속 정진합니다. 나탄 예언자가 다윗 임금에게 가한 질책은 우리에게도 좋은 훈계가 됩니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2사무엘 12,7) 성인군자 다윗도 자신의 은밀한 죄에 더하여 이를 간과하는 잘못까지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도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루카 6,42)라고 따끔한 일침을 가하십니다.

 

과연 우리는 겸손한 자세로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자신의 성화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세상의 치유는 우리 각자가 진심으로 ‘주님, 제 탓입니다.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고백하고 기도할 수 있을 때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누구보다 자신의 약함과 죄스러움을 잘 아는 사람들이며, 그럼에도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겸손과 용기와 솔직함을 겸비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악을 당신 선으로, 우리의 죄를 당신 은총으로 이끄시고 바꾸어놓으시는 권능과 자비의 주님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용서와 화해의 사도가 되어야

 

참으로 우리 모두는 용서하시는 자비로우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하는 법을 그분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용서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참회할 힘도 용서할 힘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오는 것임을 우리는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용서받은 죄 많은 여인의 이야기에서(루카 7,36-50)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가 한 여인을 변화시키는 감동적인 장면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그러하듯 그분의 용서는 우리의 지각을, 우리의 참회를 앞서가면서 우리를 그분과의 더 깊은 친교로 이끌어줍니다.

 

그분의 용서는 있었던 일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눈감아주는 관용이나, 우리의 참회에 대한 그분의 시혜적인 보상이나, 보속이나 희생 등 어떤 조건적인 타협이 아니라 우리가 자신의 죄와 잘못을 딛고 일어서서 그분과의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게 하는 새로운 창조입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바로 이러한 용서와 화해의 사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죤 잉글리쉬 신부님의 말씀이 의미 깊게 다가옵니다. “우리를 우리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부당하게도 사랑해주시는 하느님을 만날 때 우리 존재 안에 새로운 느낌으로서의 수용과 자유가 자리 잡습니다. 이 자유로이 주어진 선물을 자유로이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하느님 사랑의 방식으로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되며, 그리고 바로 그곳에 완전한 자유가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6월호, 안정호 이시도르 신부(이주노동자 지원센터 이웃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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