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악보ㅣ감상실

[화답송][NWC] [공통]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 박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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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정성가대 [piusmok5] 쪽지 캡슐

2008-06-29 ㅣ No.7183

+ 찬미 예수님

박현미 체칠리아 작곡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화답송 NWC파일을 올립니다. 공통] 전례에 속하여 2006년도에 만들었던 파일을 다시 올립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귀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작곡해주신 체칠리아 자매님과 라파엘 형제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눔의 신비에 감사드리며,

목5동성당 성가정성가대 나눔터지기 올림

화답송 : 시편 31(30),3ㄷ-4.6과 7ㄴ과 8ㄱ.17과 21ㄱㄴ (◎ 6ㄱ)
◎ 주님, 제 목숨을 주님 손에 맡기나이다.
○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원할 성채 되소서. 주님은 저의 바위, 저의 성채이시니, 주님 이름 생각하시어 저를 이끌고 인도하소서. ◎
○ 제 목숨을 주님 손에 맡기니, 주 진실하신 하느님, 주님께서 저를 구원하시리이다. 저는 오로지 주님만 신뢰하며, 주님의 자애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
○ 주님의 얼굴을 주님 종 위에 비추시고, 주님의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주님 앞의 피신처에 그들을 감추시어, 사람들의 음모에서 구해 내소서. ◎

오늘 전례
한국인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21년 충남 당진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부모의 깊은 신앙심을 물려받으며 자랐다. 그는 16세 때 사제 후보자로 모방 신부에게 발탁되어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떠났다. 동남아 일대를 전전하며 공부를 마친 그는 1845년 8월 17일 사제품을 받았다. 상해 인근의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가 집전한 서품식이었다.
두 달 뒤인 10월 충청도 나바위 인근 바닷가로 입국한 김대건 신부는 다시 선교사들을 영입하려고 서해의 뱃길을 알아보려다 1846년 6월 5일 백령도 부근의 순위도에서 체포되었다. 여러 차례 문초를 받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결국 그해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26세의 젊은 나이였다.

오늘 전례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성령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어렵고 힘든 박해 시기에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며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 역시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살다가 순교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지녔던 불굴의 용기와 굳은 믿음을 깊이 묵상해야겠습니다. 아울러 그러한 은총을 우리에게도 내려 주시기를 주님께 청해야겠습니다. <매일미사에서>

* 이 날의 미사 전례문 전체를 보시려면 이곳을 클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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