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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중림동 약현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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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8-08 ㅣ No.274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27) 중림동 약현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보석 같은 스테인드글라스에 얽힌 역사적 의의

 

 

- 이남규, 성녀 김효임 골룸바·김효주 아녜스 자매의 순교,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의 달드베르 작품, 1975.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스테인드글라스 작가인 이남규(1931~1993)의 첫 작품으로 1975년에 완성돼 설치됐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에 참형 장소였던 서소문 밖 네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중림동 약현성당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주교좌성당인 명동성당에 앞서 1892년에 건립된 한국 최초의 서양식 교회 건축이다. 

 

1974년 이 성당 보수공사와 함께 교회 내 스테인드글라스도 새롭게 계획됐고 당시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연구하고 귀국한 이남규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해 진행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달드베르(Dalle de verre) 기법으로 완성한 중림동 약현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고 희생된 성녀 김효임 골룸바와 김효주 아녜스 자매의 순교를 작품 주제로 삼고 있다. 

 

중림동 약현성당 스테인드글라스는 두 가지 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 첫째로는 한국 최초의 서양식 성당에 한국 작가에 의해서 새로운 유럽 스테인드글라스 양식인 달드베르 작품이 처음으로 수용됐다는 것이다. 달드베르는 2~5㎝ 정도 두께의 평판 색유리를 원하는 크기로 자르고 망치를 이용해 절단 모서리를 임의로 커팅한 뒤 시멘트나 합성수지로 접합하는 기법으로 1920년대 프랑스에서 처음 선보인 새로운 스테인드글라스의 표현이다. 이남규는 프랑스 유학 시절 장 바젠(Jean Bazaine)과 페르낭 레제(Fernand Lger)의 달드베르 작품이 설치된 오뎅쿠르(Audincourt)성당을 방문하고 그 영향을 받아 귀국 후 똑같은 기법의 작품을 설치했다. 실제로 그는 1990년 평화신문에 연재한 ‘세계 가톨릭 미술 기행’에서 유럽 현대 성당에서 본 달드베르 기법을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 혜화동성당, 시흥동성당 등에 활용해 창을 설치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필자 역시 오뎅쿠르성당을 방문해 달드베르 작품을 처음 대면했을 때 깊은 감동을 받아 그 신비로운 인상을 오랫동안 간직했다. 창이자 곧 벽이기도 한 달드베르 작품은 빛을 내뿜고 반사하기보다는 색유리 안에 빛을 머금은 채 빛나고 있어 마치 보석의 광채를 보고 있는 듯하다. 

 

둘째로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훼손된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을 당대 화가에게 의뢰했던 유럽의 새로운 경향이 국내에도 그대로 실현된 최초의 사례라는 점이다. 주로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에서 제작된 작품들이 수용되던 시기를 거쳐 마침내 우리나라 작가 작품이 기획, 제작, 설치되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도 1970년대에 그와 같은 일이 실현되었다는 것은 우리 교회 미술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중림동 약현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완성되자 한국 작가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가톨릭교회에서 첫선을 보였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1975년 5월 「경향잡지」에서는 한국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중림동 약현성당이 건립된 지 82년 만에 복원공사가 한창이며 우리나라의 작가 이남규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됐다는 소식을 완성작 설치 사진과 함께 크게 다뤘다. 

 

이남규의 여러 달드베르 작품 가운데 중림동 약현성당의 작품을 소개하게 된 것은 그의 첫 작품이라는 점 외에도 마치 인상주의 회화에서 점묘법을 구사하듯이 색유리로 아름다운 색 점들을 찍어놓은 것 같은 독창적인 표현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중림동 약현성당의 달드베르에 표현된 작은 색 점들은 노랑과 파랑, 초록과 빨강 등 보색이 서로 인접하도록 배열돼 인상주의 회화의 보색대비 법칙을 그대로 나타내며 더욱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다. 이렇게 작가는 프랑스의 새로운 스테인드글라스 경향을 수용하면서도 자신의 회화적 관심사였던 빛의 문제에 더욱 집중하면서 자신만의 표현방식을 개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림동 약현성당의 달드베르는 색유리와 빛으로 형상화된 또 다른 인상주의 회화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중림동 약현성당 달드베르의 아름다운 광채는 1999년 화재 이후에 그 깊이를 더했다. 화염 속에서도 다행히 소실되지 않고 남아있는 작품에는 열로 인한 유리 내부의 미세한 균열들로 더욱 아름다운 난반사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중림동 약현성당에 첫발을 딛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보석의 빛을 대하는 것만 같다’고 평하곤 한다. 작품의 내구성과 안전상의 이유로 보수의 문제가 거론되는 이 작품이 모쪼록 원형의 모습을 상실하지 않고 오래도록 보존돼 작품 본연의 의미와 가치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평화신문, 2016년 8월 7일,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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