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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헌ㅣ메시지

교황 환경 회칙 해설 - 찬미를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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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6-27 ㅣ No.693

[교황 환경 회칙 해설 - 찬미를 받으소서] (1) 생태 위기, 회개와 행동의 요청


우리의 편의와 욕심에 환경은 파괴되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환경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Laudato Si’)는 역사상 처음으로 환경과 생태 문제를 주제로 삼고 있다. 6개장, 총 246항과 2개의 기도문으로 구성된 회칙은 4만개에 달하는 단어로 구성된 방대한 문헌이다. 회칙은 성경과 신학, 철학은 물론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성과까지도 포용, 교회 안팎의 모든 인류를 향해 회개하고 행동할 것을 호소한다. 특히 교황은 생태의 위기가 자연환경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모두 관련되는 것임을 장엄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알아듣기 쉽게 선언한다. 

 

오늘날 인류의 가장 급박한 과제인 환경과 생태 문제에 대한 회칙의 권고와 초대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총 6회에 걸쳐 해설기사를 마련한다.

 

 

기대와 반포 배경 

 

이미 전세계는 오래 전부터 프란치스코 교황의 환경 회칙을 고대해왔다.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보여준 모습들은 그의 도덕적 권위를 단지 가톨릭교회 안에 가둬두지 않았다. 

 

가식과 형식, 권위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먼, 진정으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해오는 모습들,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안에 집약된 교회의 새로운 면모, 가르칠 뿐만 아니라 가르친 바를 직접 실천하는 교황이 펴낼 회칙은 자연스럽게 전세계 관심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이번 회칙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의 이유는 무엇보다도, 환경과 생태의 위기는 지구촌, 인류의 미래를 매우 비관적으로 전망해야 할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미 수많은 과학적인 연구들은 현재 지구 온난화라는 기후변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고, 그 원인의 대부분은 인류의 무분별한 파괴 행위라는데 큰 이견이 없다. 

 

교황은 회칙의 첫 부분에 이러한 자연과학의 연구 결과를 위치시키고, 강한 어조로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하면서, 특별히 각국의 지도자들을 질책한다. 

 

결국 교황은 인류가 과학자들의 충고대로 더 늦기 전에 환경과 생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회심과 직접적인 행동에 즉각 나서지 않는다면 파국에 이를 것이라는 위기감 속에서 모든 이들을 ‘열린 대화’로 초대하려 한 것이다.

 

 

의의와 중요성

 

이번 회칙은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인간, 자연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담고 있다. 

 

회칙은 환경 위기에 대해 말하지만 그것은 자연 생태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이번 회칙의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은 ‘온전한 생태학’이다. 이 개념은 ‘정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회칙에서 제시된다. 환경의 문제와 인간 사회의 문제는 서로 깊이 연관되므로 인간, 사회, 자연이 모두 온전히 하느님의 피조 세계로서 훌륭하게 보존될 수 있는 포괄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회칙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이로써 볼 때, 회칙은 단순히 자연 환경의 보전에 대한 권고에 그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 하느님의 피조물에 대한 더욱 폭넓은 이해와 더불어 하느님-인간-자연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에 대한 성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미 「복음의 기쁨」, 그리고 교황으로서의 교회 통치 방향에서 가장 근간인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의 정신이 강조된다. 

 

교황은 생태계의 파괴가 철저하게 가난한 이들, 남반구의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과 희생을 가져왔고, 기술의 발전은 지식과 자본을 가진 이들에게 편중돼 왔음을 강하게 지적한다. 피조물에 대한 무자비한 지배는 자연 환경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가진 것이 적은 사람들과 나라들에 대한 억압과 지배로 나타났다. 그래서 생태의 위기는 곧 인간 생태의 위기로 이어지고, 이는 하느님의 피조물에 대한 사랑을 배신하는 악덕이다. 

 

두 번째, 회칙은 정치적, 경제적, 이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사목적이고 도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교황은 교회가 위기에 대한 구체적인 정치적, 사회적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교황이 제시하는 해결 방식은 ‘회심’, ‘생태적 회심’이다. 모든 이들이 새로운 생활습관을 추구해야 한다. 동기 부여와 교육의 과정 없이 변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회심과 함께 교황은 책임 있는 이들을 ‘대화’와 ‘행동’으로 초대한다. 즉, “특정 이해관계나 이념들이 공동선을 침해하지 않도록 솔직하고 개방적인 논의”를 위해서 국가 지도자와 정부들은 대화에 나서야 한다.

 

 

교회 안팎의 반응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에 대한 교회 밖의 반응은 대체로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지구 위기는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에. 교회 밖 사람들은 교황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타종교 지도자들 중 미국 네바다주 르모에 있는 힌두교학회 의장 라잔 제드는 자연 환경 보존을 가난한 이들에 대한 정의 문제와 연관지은 점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칙이 공공 정책 수립, 개인의 생활 습관 변화, 그리고 타종교 지도자들이 환경 보존을 적극 지지하도록 이끄는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북아메리카 이슬람 연합의 모하메드 마지드 이맘은 “올해 라마단 기간에 이슬람 교도들은 교황이 제시한 지구 환경 보호의 호소를 깊이 성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는 회칙 반포 전인 6월 15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기후변화가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인류가 한 가족이라는 인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루터교 목사인 데이빗 베크만은 “교황은 우리가 왜 기후변화에 맞서야 하는지에 대해서 매우 설득력 있는 도덕적 설명을 해주었다”고 말했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기상학 교수 마이클 만 교수는 교황이 “정확하게 과학이 말해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회칙에 영감을 받아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300인의 랍비 선언을 주도한 아서 와스코우 랍비는 교황과 회칙의 도덕적 권위가 환경 문제 해결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메리카 인도주의협회 로이 스펙하르트 사무총장은 “가톨릭교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는 여섯 장에 걸쳐 환경문제 성찰

 

제1장 “더불어 사는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17-61항) 

 

현재의 생태 위기 현상에 주목한다. ▲ 오염과 기후변화, 특히 화석 연료 사용으로 초래되는 지구 온난화 ▲ 식수 오염 ▲ 생물 다양성의 감소 ▲ 낮아진 인간 삶의 질과 사회의 붕괴 ▲ 세계적인 불평등 ▲ 문제 해결을 위한 지도력의 부족을 언급하고 있다.

 

제2장 “피조물에 관한 복음”(62-100항)

 

피조물에 대한 인류의 책임을 성경의 전승에 비추어 설명한다. 자연 환경은 인류의 공통 유산이며 모든 이가 책임져야 하는 것(95항)이다. 인간의 삶은 근본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세 가지 관계, 곧 하느님과의 관계, 우리 이웃과의 관계, 지구와의 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 세 가지 핵심적인 관계가 이 세상과 우리 안에서 깨어졌다. 이 불화가 바로 죄이다(66항).

 

제3장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들”(101-136항) 

 

위기의 증상과 원인을 철학과 사회과학과의 대화를 통하여 성찰한다. 기술의 오용을 막기 위해서 올바른 한계를 정하고 바른 자제력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건전한 윤리와 문화와 영성이 필요하다(105항). 세계에 대한 인류의 ‘지배’는 책임있는 관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116항). 고용과 노동 문제도 온전한 생태학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제4장 “온전한 생태학”(137-162항) 

 

회칙이 정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안하는 핵심 개념. 환경의 문제와 인간 사회의 문제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우리는 자연계와 사회 체계의 상호작용을 고려하는 포괄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 장은 세부적으로 환경 생태학, 경제 생태학, 사회 생태학, 문화 생태학, 일상생활 생태학, 공동선의 원칙, 세대 간의 정의를 다룬다.

 

제5장 “접근법과 행동 방식”(163-201항) 

 

‘대화’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대화는 인류가 자기 파괴의 소용돌이에서 탈출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163항). 교황은 “교회가 과학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정치를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밝히며 “특정 이익이나 이념이 공동선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솔직하고 열린 토론을 권장”하고 있다.

 

제6장 “생태 교육과 영성”(202-246항) 

 

모든 이에게 ‘생태적 회심’(216-221항)을 권유한다. 뿌리 깊은 문화적 위기 상황에서, 교육과 훈련 없이 인간의 습관과 행동의 변화는 불가능하다. 이는 모든 교육 분야, 무엇보다도 학교, 가정, 매체, 교리교육에서 이뤄져야 한다.   

 

회칙을 마무리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 세계의 신자들을 두 가지 기도, 곧 “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와 “그리스도인이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기도”를 바치도록 초대한다. [가톨릭신문, 2015년 6월 28일, 박영호 기자]

 

 

[교황 환경 회칙 해설 - 찬미를 받으소서] (2) 제1장 ‘더불어 사는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버리는 문화’로 생태계 훼손 · 균형 파괴

 

 

서문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 1~16항은 회칙 전체 구조와 기본 개념을 요약한다. 최대한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지구는 우리의 누이이자 어머니이다. 누이인 지구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울부짖고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자연을 무책임하게 사용하고 남용해 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죄이고 따라서 우리는 죄를 깨닫고 뉘우쳐야 한다. 뉘우침에 응답하기 위해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모범에 따라 생태적 회개를 하고 즉각 실천적 행동을 해야 한다. 

 

‘온전한 생태학’의 개념을 중심으로 한 이같은 가르침을, 교황은 회칙의 6개 장에서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전개한다. 

 

과학적 연구 결과, 즉 지구가 위기에 처해있고 그 원인은 인간이 제공했다는 판단에 귀기울인다(1장). 이어 그리스도교 전통, 특히 성경과 신학이 하느님,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는지를 성찰하고(2장), 위기 증상과 원인을 철학과 사회과학과의 대화를 통해 분석한다(3장). 

 

이 분석의 목적은 ‘온전한 생태학’을 정립(4장)하는 것이며,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종교, 과학의 대화를 위한 지침(5장)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회칙은 ‘생태 교육과 영성’의 지침들(6장)을 제시하고, 두 가지 기도문으로 마무리된다.

 

 

제1장 

 

회칙은 자연과학의 연구 결과를 첫 머리에 둠으로써 신자와 비신자 모든 이들이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문제 제기를 한다. 즉, 과학이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현재의 생태적 위기의 여러 측면들’을 다룸으로써, 생태 위기는 신앙인 뿐만 아니라 지구 위에 사는 전 인류가 함께 긴급함을 인식하고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교황은 매우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각 측면들을 하나씩 짚어간다.

 

 

자연 생태의 위기, 황폐화된 지구 

 

그 첫 머리에는 자연 환경의 오염과 기후 변화가 놓인다. 

 

- 오염, 쓰레기, 버리는 문화(20~26항) : 심각한 환경 오염은 ‘버리는 문화’ 때문이므로 재사용과 재활용을 바탕으로 하는 생산 방식을 도입하고 재생 불가능한 자원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 

 

- 공공재인 기후(23~26항) : 기후는 공공의 재화이다. 기후 변화는 세계적 차원의 문제로 사회와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더 많은 자원과 정치적, 경제적 힘을 가진 이들은 문제를 호도하거나 가리는데 급급한다. 이 비극에 대한 대응이 부족한 것은 이웃에 대한 책임감의 상실이고, 기후 보전은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중요한 도전 과제’이다. 

 

- 물 문제(27~31항) : 오염된 물로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고, 대수층(帶水層)은 공장과 도시의 폐수로 끊임없이 오염되고 있다.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물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는 보편적인 기본 인권입니다.” 물은 인간 생존에 필수적이고, 가난한 이들이 물에 접근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생명권을 부인하는 것’이다. 

 

- 생물다양성 감소(32~42항) : 인간이 초래한 식물과 동물의 멸종은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앞으로 나타날 결과들을 예측할 수 없게 한다. 이것들은 착취할 ‘자원’이 아니라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그 가치는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다. 풍부하고 다양한 생물이 있는 지역을 보호하는 것은 생태계 균형과 생명의 균형을 이루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데, 종종 초국가적인 경제 이익은 이러한 보호를 저해한다.

 

 

인간 생태 위기, 가난한 이들과 불평등 

 

위기는 자연 생태에만 닥친 것은 아니다. 회칙은 위기 현상에 대한 설명 절반을 인간 삶과 사회 위기, 인간 생태 위기에 할애한다. 

 

- 인간 삶의 질 저하와 사회 붕괴(43~47항) : 현재 개발의 모습은 인류 대부분의 삶의 질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며, 이는 지난 두 세기의 성장이 늘 온전한 발전을 이끌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도시들은 거대하고 비효율적인 체계를 갖고 있으며 에너지와 물을 지나치게 낭비하고 있다. 그리하여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는 곳이 되고 일부 특권층을 위하여 보존된 지역을 제외하고는 자연과의 접촉이 제한된다. 

 

- 세계적 불평등(48~52항) : 환경과 사회 훼손은 지구촌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자주 이들은 ‘단순한 부수적 피해자들’로 여겨진다. 그러나 참된 생태학적 접근은 언제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이 되고, 따라서 지구 환경과 가난한 이들의 외침 모두에 귀기울이는 것이다. 생태 위기의 해결책은 출생률 감소가 아니라 일부 사람들만이 누리는 ‘지나친 선택적 소비주의’에 대응하는 것이다. 

 

- 미약한 반응(53~59항) :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겪는 비극에 대한 반응이 미약하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긍정적인 예들이 없지는 않지만, ‘자기만족과 커다란 부주의’가 팽배하다. 생활 양식, 생산과 소비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마음이 부족하다. ‘생태계를 보존할 수 있는 법적 틀’ 마련이 시급하다.

 

 

다양한 의견들, 정직한 ‘대화’ 필요 

 

제1장 말미에서 회칙은 ‘다양한 의견’(60~61항)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한편. 교회가 구체적인 정책을 해답으로 제시할 수는 없음을 주지시킨다. 현상의 분석과 가능한 해결책에 대해서 다양한 분석과 접근법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극단의 한쪽에는 새 기술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며, 아무런 윤리적 고려나 깊은 변화도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또 다른 극단은 인간 존재와 인간의 환경 문제 개입 자체가 모두 자연을 해치는 일이기에 지구상의 인구가 감소돼야 하고 모든 형태의 개입이 금지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교황은 해결책이 이 양 극단 사이 어느 지점에서 찾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다양한 제안이 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통합적인 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문가들 사이의 정직한 대화가 이뤄져야 하며, 무엇보다도 지구가 이미 심각하게 황폐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회칙은 권고한다. 

 

이 대목에서 회칙은, 여전히 희망은 있지만 “상황은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전 세계에서 사회적, 심지어 재정과 금융 위기가 빈발하는 동시에 대규모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한다. ‘종말론적 예언’까지는 아니어도 오늘날 인류의 다양한 당면 문제들은 서로 깊이 연결돼 있고, 현재 지구촌의 체제는 모든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형태’가 아니라고 교황은 명백하게 말한다. 

 

교황은 회칙 제1장 마지막 부분에서 문제의 긴박함과 즉각적인 행동 개시의 필요성을, 전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말을 인용해 강조한다. 

 

“우리 별의 곳곳을 살펴 보면, 우리는 인류가 하느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는 것을 즉각 알게 될 것입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2001년 1월 17일, 일반 알현 연설 중에서) [가톨릭신문, 2015년 7월 5일, 박영호 기자]

 

 

[교황 환경 회칙 해설 - 찬미를 받으소서] (3) 제2장 ‘피조물에 관한 복음’


하느님 사랑의 선물인 피조물… 인간은 정복 권리 없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문에서 회칙 전체를 조망한 뒤, 제1장에서 자연과학의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지구 환경과 생태계, 즉 인류와 피조물 전체가 ‘더불어 사는 집’이 직면한 위기 상황을 통렬하게 자각하고 즉각 행동에 나설 것을 호소했다. 

 

회칙은 이어 제2장에서 유다-그리스도교 전통, 즉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들 속에서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신앙적인 당위성을 정리해서 제시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지구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교회의 가르침들을 바탕으로 더욱 깊이있고 명확하게 알려준다. 

 

‘복음’이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그 사랑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을 보내시어 구원의 역사를 펼치신 ‘기쁜 소식’이다. 마찬가지로 제2장 ‘피조물에 관한 복음’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그 사랑 때문에 모든 피조물을 마침내 당신의 ‘충만함’으로 이끌 것이라는 ‘기쁜 소식’이다. 

 

회칙은 기쁜 소식이 단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 전체에 해당되는 것임을 일깨운다. 인간만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느님의 사랑이고 선물이며, 그래서 각각 나름의 고유한 가치와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자연을 자기 마음대로 오만하게 정복하고 착취하고 오용할 권리가 없다. 

 

물론 인간은 하느님의 남다른 사랑을 받는 존재이다. 그런 만큼 오히려 피조물들을 잘 보존하고 돌봐서 마침내 피조물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충만함’(83항)에 이르도록 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는 것이 회칙이 말하는 교회의 가르침이다. 

 

2장은 복합적인 생태 위기가 영성과 종교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와 학문의 대화를 요구한다고 전제하는데서 시작한다. 특히 회칙은 여기에서 신앙이 ‘자연’과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할 이유와 동기를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서 자연에 대한 책임감은 ‘신앙의 일부’라고 분명하게 강조한다. 

 

이어 성경의 창조 이야기를 통해, 해방과 구원의 하느님이 바로 창조의 하느님이심을 일깨운다. 나아가 인간 삶이 근본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세 가지 관계, 곧 하느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지구와의 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일러준다. 이 관계들이 이 세상과 인간 안에서 깨어졌고 그 불화가 바로 죄이다. 하느님께서 창조주이시며, 소유가 아니라 선물로 지구를 주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창조주이신)하느님의 자리를 빼앗고, 피조물을 발 아래 두고 짓밟는 무제한적 권리를 요구”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피조물은 하느님 사랑의 선물이다. “모든 피조물은 각각의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불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 모든 물질은 하느님 사랑을 말합니다”(84항). 그래서 우리는 피조물들로부터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무한한 사랑과 자비에까지 이를 수 있다. 창조는 하느님의 충만함에 이를 때까지 계속 이뤄진다. 인간은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고유성’(81항)을 갖지만 그것이 자연을 함부로 오용하는 권리를 주지는 않으며, 인간은 오히려 피조물에 대한 책임을 갖는다. 

 

무엇보다도 지구는 ‘공동의 유산’이다. 여기에서 회칙은 자연 뿐만 아니라 사람,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해 강조하면서, 사적 재산권은 재화의 보편적 목적에 종속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회칙은 바로 이 원칙이 모든 윤리적·사회적 질서의 첫 번째 원칙임을 지적한다. 회칙은 이와 관련해 뉴질랜드 주교단을 인용, 세계 인구의 20%가 가난한 나라들과 미래 세대가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재화들까지, 거의 강탈의 수준까지 소비해버릴 때, 이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톨릭신문, 2015년 7월 12일, 박영호 기자]

 

 

교황이 지적한 생태 위기 현상 (1) 환경오염과 버리는 문화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에서 가장 처음 지적되는 생태 위기 현상은 ‘환경오염과 버리는 문화’다. 

 

교황은 버리는 문화가 환경오염을 야기하고, 이는 사람들의 건강과 직결돼 인간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환경오염의 원인 또한 매우 넓어서 요리와 땔감을 때는 등 자칫 인식하지 못하는 일상적 행위는 물론 교통수단과 매연, 살충제, 살균제, 제초제 등 다양하다. 

 

교황은 회칙을 통해 이러한 문제점을 심각하게 지적하고, 기술이 이러한 문제들을 푸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매년 수백만 톤의 썩지 않는 쓰레기들이 버려지고 있고, 이것들은 매우 유독하고 방사성이 있다”고 말한 교황은 “우리의 고향인 지구가 엄청난 쓰레기 더미와 같아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시도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소비를 줄이고 재생이 되지 않는 물건들을 제한하고, 물건의 효율적인 이용을 늘리고, 재활용품을 다시 활용하는 것이다. 

 

교황이 설명한 실천 노력들은 ‘복음삼덕과 사추덕’과도 맞닿아 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가 편찬한 「창조질서 회복을 위한 우리의 책임과 실천」은 복음삼덕과 사추덕이 생태위기 시대에 위기를 극복하고 창조질서를 회복하기에 꼭 필요한 실천지침이라고 전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덕목이기도 하다. ‘가난’의 덕을 통해 물질은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고, ‘순명’의 덕을 통해 하느님 말씀과 피조물의 요구에 귀 기울인다. 영적 열매의 전제 조건인 ‘정결’의 덕은 다른 이들에게 더 자유롭게 봉사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사추덕은 절제, 지혜, 용기, 정의다. ‘절제’의 덕은 함부로 소비하거나 낭비하지 않도록 하고, ‘지혜’는 내일을 내다보며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창조질서의 회복을 위한 선한 행위를 분별한다. ‘용기’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수고나 위험, 박해도 감수하게 한다. ‘정의’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과 후손들까지 생각하도록 한다. 

 

교회가 오래 전부터 진행해온 ‘즐거운 불편운동’ 또한 생태를 위한 올바른 실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승용차 이용하지 않기, 전기 코드 뽑아두기, 일회용품 사용 자제하기 등이 그 예다. 즐거운 불편운동과 같이 가정과 본당, 교구, 사회에서 교황이 권유한 덕목들이 실제로 이뤄지기만 한다면 환경오염과 버리는 문화에 대한 대안은 이미 마련돼 있는 셈이다. 

 

2008년 교황청 내사원이 고해 사제들을 위해 실시한 워크숍에서는 ‘환경오염’을 비롯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죄(social sin)들이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점증하는 지구화로 사회에 악영향을 준다고 강조된 바 있다. 

 

「창조질서 회복을 위한 우리의 책임과 실천」은 “물질차원에 치우친 우리의 의식과 생활습관을 청산하고 내면적 풍요를 추구하는 삶으로 방향전환이 이뤄지도록 생태적 고해성사를 실천해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7월 12일, 오혜민 기자]

 

 

[기고] 창조질서보전 위한 신앙인 책임과 실천

 

지난주 서울대교구 신학생들 사회사목연수로 내성천과 영주댐 공사 현장에 다녀왔다. 내성천은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모래 강이며, 그곳에는 토종 물고기인 흰 수마자와 수달, 먹황새 등이 살아간다. 

 

그런데 내성천 상류에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영주댐이 완공되고 있다. 댐 공사로 물길이 막혀 모래 강 내성천은 마르고 있고, 그 품에 살던 멸종위기종 1급 흰 수마자, 수달, 먹황새들이 사라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건너편 산 위에서는 댐 주변 새로운 도로를 만들기 위해 포크레인 3대가 산을 무너뜨리고 있다. 산 위에서 바위를 깨뜨리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과 흙이 먼지를 일으키며 무너져 내린다. 비산 먼지에 대한 아무런 대책과 안전 설비도 없이 산을 깨부수고 있는 것이다. 

 

그 옆 내성천이 끼고 도는 금강마을은 500년이 넘은 오래된 마을이다. 이 마을도 영주댐 건설로 수몰될 예정인데, 마을 인근에서 ‘금강사’ 절터가 발견되었고, 고려시대 유물이 나왔다. 역사적으로 귀중한 문화재이기에 문화재 전문가들은 수몰을 반대하지만 댐 공사는 지연될 뿐이다. 

 

이 모습들을 본 한 신학생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래 강을 없애고, 그 안에 더불어 살아가는 동식물들을 죽이며 소중한 역사적 가치를 마구 파괴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태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를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미래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기를 바랍니까?” 

 

머지않아 사라질 내성천과 금강마을을 바라보며 묻던 신학생 질문의 연장선상이다. 교황은 생태회칙을 통해 ‘온전한 생태학’을 이야기한다. 생태회칙의 핵심이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으로 창조된 특별한 존재이기에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자연만물을 돌보아야 하며, 때문에 자연을 우리와 다른 존재로 생각하거나 우리에게 필요한 단순한 배경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일갈이다. 

 

모래 하천을 마르게 하고, 꼭 필요하지 않은 대형 댐을 만들며 역사적 가치를 깡그리 무시하는 그 원인을 교황은 우리 시대에 만연한 ‘효율성’과 ‘즉시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돈’ 때문이다.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회칙은 자본의 가치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매우 불편한 회칙이다. 진리는 불편하지만, 희망을 만든다. 우리가 생태적 회개를 이루고, 매일 우리의 성찰 속에 벗들인 ‘하늘, 땅, 물, 동식물들’을 포함시킨다면, 그리하여 매순간 생태적 가치를 선택하며 살아간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이것이 하느님 창조질서를 보전하기 위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며 실천인 것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7월 12일, 맹주형(아우구스티노 ·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교육기획실장)]

 

 

[교황 환경 회칙 해설 - 찬미를 받으소서] (4) 제3장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들’


‘기술관료적 패러다임’ ‘인간 중심주의’ 벗어나야

 

 

회칙은 지구 생태 위기를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일별하고, 이 위기에 대한 적극적 대처가 신앙의 소명임을 밝힌 뒤, 이제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제시한다. 여기에서 교황은 철학과 사회과학과의 풍성한 대화를 나누면서 위기의 ‘증상과 심층적 원인들을 성찰’(15항)하고 있는 것이다. 

 

교황은 우선 ‘기술’이 결코 그 자체로 중립적인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기술 과학이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지만, 그것이 인류와 사회의 발전을 곧바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술은 인간이 원하고 바라는 대로 쓰인다. 

 

회칙은 특히 여기에서 한 가지 명확한 관점을 지적한다. 즉, 기술은 “온갖 기술 지식, 특히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경제적 재원을 확보한 이들이 인류 전체와 온 세상을 강력하게 지배할 수 있도록” 합니다(104항). 기술이 자체의 논리로 자기 힘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며, 모든 이들이 기술의 이용에 참여해 공동선을 위해서 선용 되기보다는, “누구의 손에 이 모든 힘이 주어지느냐”가 중요하고, 소수에게만 기술의 창조성과 힘이 주어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한다(104항). 따라서 회칙은 “올바른 한계를 정하고 바른 자제력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건전한 윤리와 문화와 영성”(105항)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현대인들은 (기술의) 힘을 잘 이용하도록 훈련되지 않았다”라는 문제는 오늘날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의 만연으로 더욱 심화된다. 이 패러다임은 기술이나 기술의 창조력과 힘을 소유한 사람들이 권력을 행사하도록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현실을 기술로 제한 없이 조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패러다임 아래에서 기술의 산물들은, 강력한 힘을 지닌 집단들이 원하는 대로 인간 삶과 사회 구조들을 형성한다.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은 경제와 정치를 지배한다. 특히 “경제는 이윤을 목적으로 기술의 모든 발전을 받아들인다.”(109항) 회칙은 그러나 시장 자체가 온전한 인간 발전을 보장할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기술적 방법에만 의존하는 것은 “실제로는 서로 연결돼 있는 것들을 따로 떼어 생각하는 것이고, 전 세계의 체제가 안고 있는 가장 뿌리깊은 진짜 문제들을 숨기는 것”(111항)이다. 

 

그래서 ‘생태 문화’는 환경 오염이나 자원 고갈 등의 시급한 문제에 대한 부분적인 대처가 아니라,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의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사고방식, 정책, 교육, 삶의 양식, 그리고 영성”(111항)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교황은 ‘대담한 문화적 혁명’을 촉구한다. 기술과 과학을 버리고 석기시대로 되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줄이고’ 현실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보는 눈을 키우자는 것이다. 나아가, 무조건 ‘큰 것만 찾는 억제할 수 없는 망상’ 때문에 사라져버린 ‘가치들과 위대한 목적들을 회복’(114항)해야 한다. 

 

회칙은 이어서, 현대의 잘못된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한다. 기술적인 사고방식은 우주와 자연의 본래적 가치를 무시한다. 이때 인간은 자연 속에서의 자기 존재를 잘못 이해하게 되고 결국 자기 자신을 해치는 행위를 하게 된다. 하느님은 자연 뿐만 아니라 동료 인간까지도 인간에게 선물로 주셨고,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지배’는 책임 있는 관리의 의미에서” 올바르게 이해돼야 한다.(116항) 

 

그래서 인류 스스로의 쇄신 없이 자연과의 관계에서의 쇄신은 불가능하고, 올바른 인간학이 없이는 올바른 생태가 있을 수 없다.(118항) 잘못된 인간 중심주의를 바로잡는 일은 인간들간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의 생태 위기는 “현대 세계의 윤리적, 문화적, 영성적 위기의 한 가지 작은 징표”이기에 “모든 근본적인 인간들 간의 관계를 치유하지 않고서는 자연과 환경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다.”(119항) [가톨릭신문, 2015년 7월 19일, 박영호 기자]

 

 

[기고] 회칙에 나타난 ‘통합 생태’ 살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한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는 오늘 교회가 인류와 지구 공동체와 함께 직면한 과제를 식별해 응답한 문헌이다. 6장, 246항으로 구성된 이 문헌에서 교황은 ‘통합 생태’(integral ecology) 비전을 제시하면서, 이것이 신학교와 모든 교육 기관과 본당에서 체계적으로 교육되기를 희망하고 있다.(214항) 

 

이 문헌이 발표되자 일반적으로 ‘환경 회칙’으로 불리고 있다. 자연환경에 대해 명시적으로 다루고 있으니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그런데 교황은 이 회칙 처음부터 끝까지 ‘integral’한 생태를 말한다. ‘integral’은 누구도 손대지 않은 온전한 상태나 그렇게 온전하게 하기 위한 통합 행위를 가리킨다. 이 말에 대가 되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 나눠져서 부분화된 것(partial)이다. 교황에게서 integral한 존재는 하느님 한 분이시고, 그분의 살림밖에 integral한 것이 없다. 

 

교황이 ‘integral ecology’를 말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집안 살림(oikosizing)이 통의 것이어서, 그분의 생태살이가 파편화된 형태로 접근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득하려는데 있다. 교황이 선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2007년과 2010년 세계 평화의 날 메시지와 회칙 「진리 안의 사랑」(2009년)에서 사용한 ‘자연생태’ ‘인간생태’ ‘사회생태’ 개념을 원용해 삼생태 차원을 기본틀로 삼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교황은 창조된 만물에 대한 성사적 이해와 관계 맺기를 주목하면서, 자연과 세계를 대할 때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의 살림에 비추어 사랑으로 관상할 ‘신비’로 보도록 요청한다.(12항) 이것은 하느님이 이루시는 일에 대한 신뢰 없인 불가능하다. 이런 기초 위에서 우주적 형제애(universal fraternity), 생태적 형제애(ecological fraternity)를 제안한다.(11, 70, 92, 221, 228항) 

 

이것은 하느님의 창조와 온 창조계를 생태적 감수성 혹은 생태적 센서(ecological sensor)로 알아보고 따뜻하게 품어갈 수 있게 할 것이다. 이 회칙은 앞으로 가톨릭교회가, 특히 우리의 경우 동아시아의 우주 친화적 정체성을 교황의 우주적 형제애와 통합해 우리의 신학과 영성과 사목에 육화시켜 가는데 발판이 돼줄 것이다. 

 

이렇게 삼생태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게 되면, 구체적으로 복음서에서 가라지의 비유를 읽을 때, 밀과 같은 존재가 되는데 초점을 맞춰 개인 윤리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게 된다. 이제는 가라지도 하느님께서 있게 하신 생명이라는 것, 그러므로 가라지 같이 여겨온 존재들에게도 그들의 존재과정이 있고, 그러므로 그들에게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헤아릴 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을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연결 짓자면, 지금까지는 일반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강도들도 포용해 이들이 나타나게 된 상황은 물론 이들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는 사회생태의 구조까지 성찰해 오늘 우리의 사회관계 안에 육화시켜 가게 될 것이다. 

 

이런 토대 위에서 우리 교회는 눈앞에서 자연 생태가 겪는 파괴와 고통을 보다 더 충실하게 식별하게 될 것이다. 인간중심적으로 구축된 문명 속에서 쓰고 버리는 문화로 인해 자연 생태가 오염되고 훼손, 파괴, 멸절되면서 겪는 고통은 ‘우주적 형제애’에 근거할 때, 우리의 아픔이고 하느님의 살림 공동체의 아픔이고 하느님의 아픔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 생태 보존과 하느님의 창조 질서 보전은 할 수 없이 혹은 의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저절로 이뤄지는 무엇이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이 당신의 온 창조계와 인간 사이에 내장시켜 놓은 우주적 형제애와 그분의 통살림을 깨달으면, 자연과 인간과 사회 생태를 하느님 나라 살림에 부합한 형태로 만나면서 이를 ‘정치적 사랑’(231항)으로 동반해갈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이때 원리는 아주 단순하다. 우리가 사랑하면,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는 존재에게 귀를 기울인다. 충실하게 사랑하면 충실하게, 적게 사랑하면 적게 귀를 기울인다. 이것이 순명의 핵심이고, 관상의 정도다. 삼생태를 통합해 관상적 사랑과 사회적 사랑을 통합하면서, 이를 통해 온 창조계와 함께 하느님 살림을 찬양하는 것. 바로 여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번 생태 회칙을 발표한 깊은 목적이 자리 잡고 있다고 믿는다. [가톨릭신문, 2015년 7월 19일, 황종렬 박사(대구가톨릭대 신학과 겸임교수)]

 

 

교황이 지적한 생태 위기 현상 (2) 기후 변화

 

‘환경오염과 버리는 문화’에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를 통해 ‘기후 변화’에 대해 지적한다. 교황은 기후를 ‘공동의 재화’(common good)로 바라본다. 인간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많은 기초조건과 기후가 연결돼 있으며, 우리 인간은 기후 온난화의 증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종교단체와 시민단체는 심각하게 변화하고 있는 기후 온난화에 있어 많은 우려를 표명해왔다. 지난 6월 23일 서울 우면동성당에서 종교환경회의가 마련한 제14회 종교인 대화마당의 주제는 ‘기후 변화 위기와 종교인의 영성’이었다. 종교환경회의는 천주교 창조보전연대를 비롯한 각 종교 환경단체들이 연대해 만든 모임이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하승수 변호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는 2013년 지구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을 넘어섰으며, 지난 65만 년 동안 300ppm을 넘어선 적이 없던 이산화탄소 농도가 이렇게까지 올라간 것은 ‘인간 때문’임을 성토했다.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메탄, 아산화질소, 불소 같은 온실가스의 농도도 증가하고 있는데, 이러한 요소들도 기후 온난화라는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기후 온난화가 두려운 것은 단지 날씨가 더워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수면 상승, 홍수와 가뭄, 농업에 대한 치명적 타격, 식량위기, 물 부족과 같은 생존에 직결된 일들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 변호사는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온실가스 배출 7위국이고 경제규모에 비해 배출량도 많다”며 “지금이라도 기후변화를 극복하기 위한 강력한 정책과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황 또한 공동의 재화인 기후가 이토록 변화하는 이유가 ‘탄소순환(carbon cycle)’에 있으며, 끊임없이 탄소를 배출하는 우리 모두의 책임을 묻고 기후 변화 문제의 경각심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있다. 

 

기후 변화 문제에 있어 교황이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빈곤층’이다. 대기오염과 유독물질 폐기, 해수면 상승 등으로 고통 받고 있고, 앞으로 고통 받을 이들은 결국 빈곤층이기 때문이다. 

 

교황은 회칙을 통해 “기후 변화는 동식물이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도록 이끌 것이며, 이것은 다시 빈곤층의 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그리며 그들의 아이들과 함께 그들의 고향을 떠나도록 강요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가톨릭신문, 2015년 7월 19일, 오혜민 기자]

 

 

[교황 환경 회칙 해설 - 찬미를 받으소서] (5) 제4장 ‘온전한 생태학’


환경 · 경제 · 문화 ·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 포함하는 통합적 시각 요청

 

 

‘온전한 생태학’(intergral ecology)은 회칙의 핵심 개념이자 ‘정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안된다. “모든 것이 긴밀하게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지구적 위기의 모든 요소들을 고려할 수 있는 전망을 요청하기 때문에, 인간적이고 사회적 차원들을 분명하게 존중하는 온전한 생태학의 요소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바입니다.”(137항) 

 

이를 통해 교황은 첫째, 자연이든 인간 사회든 간에 모든 것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강조한다. 둘째, 따라서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의 문제는 자연과 인간, 사회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연결된 것이고 따라서 위기의 모든 국면과 차원들을 통합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시각과 전망을 필요로 한다. 셋째, 그래서 교황은 자연 뿐만 아니라, ‘인간적이고 사회적 차원’들까지도 모두 고려하는 ‘온전한 생태학’을 제안한다. 

 

이러한 생태학은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우리의 고유한 자리와 우리와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존중하는 생태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15항)으로 기대된다. 교황은 자연을 “우리 자신(인간)과 분리되거나 우리가 사는 단순한 배경”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139항)고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회칙은 ‘온전한 생태학’에 관한 제4장에서 환경,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일상생활의 생태학을 검토한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우리는 환경과 사회와 관련된 두 가지 별개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동시에 환경적인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에 당면한 것”(139항)이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역시 사회적 접근과 환경적 접근을 모두 필요로 한다. 구체적으로, “빈곤과의 싸움, 배제된 사람들에게 존엄성을 회복시켜주기 위한 노력, 그리고 동시에 자연 보호를 위한” 통합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 회칙은 특별히 사회 제도의 건전함이 환경과 인간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142항)을 지적한다.

 

생태학은 환경, 경제, 사회 뿐만 아니라, 문화 생태학도 포함한다. 자연 유산 뿐만 아니라, 역사적, 예술적, 문화적 유산들 역시 오늘날 지속적인 말살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넓은 의미에서 생태학은 인류의 문화적 보화를 보호하는 것도 포함하기 때문(143항)이다. 회칙은 나아가 오늘날 경제의 세계화, 다국적 기업 등에 의해 야기되는 소비주의적 사고와 체제가 문화적 유산의 다양성을 파괴한다고 본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 이 메커니즘으로 인해서 지역사회와 토착공동체의 문화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문화의 말살은 식물이나 동물 종의 멸종에 버금가는, 또는 그보다 더 심각”한 위기이고, 서구 중심의 세계화되고 단일한 생산과 소비의 행태와 연관된, “지배적 라이프스타일의 (지역 문화와 사회로의) 이식은 자연 생태계를 바꿔놓는 일 만큼이나 해로운 일”(145항)이다. 그래서 토착 공동체와 그들의 전통적인 문화에 대한 존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146항) 

 

온전한 생태학은 일상생활을 포함한다. 일상 삶이 이뤄지는 방, 집, 직장, 이웃 등은 인간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회칙은 특별히 도시 환경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데, 빈곤, 인구 밀집, 열린 공간의 부족, 주택과 교통 문제 등은 가난한 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환경 여건들이 더욱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온전한 생태학은 ‘사회윤리의 원칙인 공동선의 개념과 분리될 수 없는 것’(156항)이다. “불의가 판치고 많은 이들이 기본적 인권을 빼앗기고 소모품처럼 여겨지는”(158항) 오늘날 공동선을 위한 노력은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158항)에 기초한 연대를 바탕으로 한다. 또한 공동선은 미래 세대와 연관된다. 세대 간의 연대를 무시한 채 지속가능한 발전을 논할 수는 없다.(159항) [가톨릭신문, 2015년 7월 26일, 박영호 기자]

 

 

교황이 지적한 생태 위기 현상 (3) 물 문제

 

프란치스코 교황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이어 ‘물 문제’(THE ISSUE OF WATER)를 언급한다.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 생태라는 통합생태의 관점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물 문제는 앞서 말한 환경오염, 기후변화문제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환경오염은 기후온난화를 야기하고, 기후온난화는 해수면 상승, 홍수와 토양침식, 가뭄과 사막화, 식수 부족 등을 일으킨다. 오염된 물로 사람들은 병들어 죽어가고, 이러한 물 문제는 식량위기를 불러오고 농업에 치명적 타격을 가한다. 

 

지난 4월 24일~5월 2일 열린 ‘기후변화 대응 아시아시민사회 컨퍼런스’에서 몽골 아디야수렌 교수(에코 아시아대학교)는 ‘기후변화, 사막화, 황사’를 주제로 한 발제를 진행했다. 우선 그는 지표수 부족과 오염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빙하에 대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빙하가 1940년~2002년 평균 30% 이상 감소했다”며 “몽골 또한 시장경제로 전환한 후 사람들이 벌목, 천연광물 채취, 불법사냥 등 천연자원의 혜택을 과도하게 활용해 생태계가 파괴되고 사막화가 초래됐다”고 말했다. 

 

해수면 상승과 홍수 또한 문제다. 동남아시아의 우기 강우량이 증가하고 히말라야의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상승하고 지표수나 지하수의 염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교황은 회칙을 통해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물은 인간의 건강 증진과 농업, 산업 등에 필수적인 요소”라며 “이러한 물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는 보편적 기본 인권”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교황은 아프리카 대륙의 물 결핍 사례를 들면서 풍부한 물 자원을 가진 선진국과 달리,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물을 얻을 방법조차 없고, 이미 많은 가뭄으로 식량위기에 놓였던 아프리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교황이 물 문제를 언급한 것은 인간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인 ‘물’에 가난한 이들이 접근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그들의 ‘생명권’을 부인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안전하지 못한 물을 마신 다수의 사람들이 죽고, 물과 관련된 질병이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도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7월 26일, 오혜민 기자]

 

 

[기고] 욕망이 빚은 재앙, 기후변화

 

많이 가물어 텃밭에 고추와 가지가 한 대씩 말라죽었다.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고추와 달걀만한 가지를 매단 채로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바싹 말라버린 것이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물을 줬는데도 말라죽다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최대 인공호인 소양호와 충주호 역시 30, 40년만의 가뭄으로 흙바닥을 드러내고 누워있다니 땅 속 물 사정이 어떨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여전히 비 소식은 온다고 말만 무성한 채 또다시 뜨거운 한낮이 시작되던 주말 아침, 텃밭으로 향했다. 짐작한대로 텃밭의 채소들은 다들 늘어져 힘겨워보였고 호박은 회생이 가능할까 싶을 만큼 시들어 있었다. 한 30분쯤 밭에서 움직였나보다. 쏟아지는 땀방울이 눈에 들어가 따가웠고 어지럼증이 느껴져 정리하고 일어서는데 몸이 후들거리고 눈앞에 별들이 마구 쏟아졌다. 

 

집에 오자마자 그대로 쓰러졌다. 몇 시간인가를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다 겨우 진정됐다. 누워있으며 지난 5월 폭염으로 2000여 명이 숨졌다는 인도 소식이 떠올랐다.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는 섭씨 50도 폭염에도 하루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이들의 선택지는 없다. 목숨을 담보로 거리에 나선 이들이 기후변화의 최전선에서 가장 잔인하게 피해를 보고 있다. 

 

기후변화는 빈곤의 문제와 가장 먼저 만난다. 기후변화로 인한 고통은 선진국들이 벌려놓은 무분별한 개발에 파헤쳐진 가난한 나라에서 식량문제, 물 문제로 가장 극심하게 시작된다. 식량과 물은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기후변화는 인권, 젠더, 불평등 등 사회의 크고 작은 문제들과도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에 기후변화는 영향을 끼친다. 

 

기후변화의 주범은 온실가스다. 왜 이 시대에 온실가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을까를 따져 들어가다 보면 결국 ‘인간 욕망’에 가 닿는다. 마음과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호의존적이다. 마음의 욕망이 물질의 욕망을 부추기고 물질의 욕망은 마음의 욕망을 또한 부채질한다. 

 

악순환의 고리인 욕망, 이 욕망을 제어할 지구상 유일한 영역은 바로 ‘종교’ 아닌가. 그런 점에서 세계인구의 80%가 종교를 갖고 있다는 통계는 오히려 절망스럽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갖고 있는데도 세상살이는 나날이 고달파지고 자연 생태계는 나날이 파헤쳐지며 허물어져 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종교란 대체 무엇인가? 종교가 세상에 나온 배경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간 고통의 해방 아니던가. 고통에서 자유를 찾는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종교이고 모든 생명이 화평할 수 있는 방법을 얘기하는 것이 종교가 아니던가 말이다. 세상 모든 종교가 그렇듯 불교도 생명의 평화를 얘기한다. 고타마 붓다의 제자가 되기를 서원하는 첫 과정에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데 그 오계의 첫 번째가 바로 불살생이다. 

 

내가 직접 누군가의 생명을 해하는 것만이 살생은 아니다. 오늘 우리 문명을 잘 들여다보면 우리는 매 순간 간접 살생을 범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이 조장한 기후변화로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생명을 앗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타클로반을 휩쓴 수퍼 태풍 하이옌, 물 부족으로 시작된 다르푸르, 시리아 내전 등 일일이 열거가 불가한 수많은 고통에는 기후변화의 지문이 새겨져 있다. 종교가 기후변화 문제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 6월 18일 ‘찬미를 받으소서’ 제하의 회칙을 발표하신 프란치스코 교종의 메시지는 그런 의미에서 종교적 당위이며 종교 울타리를 넘어 함께 지향해야 할 행동강령이다. 특히 이번 교종의 회칙은 가장 가난한 자들의 고통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유의미하다. 가장 낮은 곳, 극심한 고통 한 가운데에서 함께해야 할 종교, 그 종교가 보이지 않는 이 시대 프란치스코 교종은 보살이시다. [가톨릭신문, 2015년 7월 26일, 최원형 소장(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

 

 

[교황 환경 회칙 해설 - 찬미를 받으소서] (6) 제5장 ‘접근법과 행동 방식’


“인류, 공동의 집에 사는 한 백성”

 

 

회칙은 이제 ‘자기 파괴’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다양한 대화들을 촉구함으로써 문제에 대한 접근법과 행동 방식을 제안한다. 이 장은 그래서 인류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것들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즉, “국제 정책 뿐만 아니라 개인들이 참여하는 대화와 행동을 위한”(15항) 제안을 한다. 제안들은 실천적이어야 하며, 이념적으로 피상적이거나 환원주의적인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폭넓은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쉽지 않은 환경 문제들… 교회는 과학적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정치를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지만, 저는 특정 이익이나 이념이 공동선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솔직하고 열린 토론을 권장하고 싶다.”(188항) 

 

회칙은 대화를 5가지로 나눠 제안한다.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태도를 비판하고, 국가와 지역에서의 정책 수립을 위한 논의를 제안한다. 여기에서 특히 정책 결정 과정의 대화와 투명성이 강조된다. 정치와 경제는 참된 의미의 발전과 인간 성취를 위한 대화에 나서야 하며, 과학은 종교가 제시하는 도덕과 윤리, 인간 발전의 참된 의미를 깊이 고려해야 한다. 

 

우선, 오늘날 인류는 공동의 집에 사는 하나의 백성으로서 상호 의존 관계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소수 국가들만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 세계적 관점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164항) 교황은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접근법을 강하게 비판한다. “최근에 있었던 환경에 관한 세계 정상 회담(제2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2014년 12월 1~12일, 페루 리마)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정치적 의지가 결여되어 참된 의미가 있는 효과적인 세계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166항) 대화를 통한, “이른바 ‘인류 공공재’의 전체를 다룰 통치 제도에 대한 합의”(174항)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가와 지역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정책들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더 큰 책임감, 더 강한 공동체 의식, 다른 이를 보호할 준비, 그리고 창조 정신”(179항)이 필요하다. 환경 보호는 비용과 이익의 금융적 기초 위에서, 단지 근시안적인 효율성의 논리로만 다뤄져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회칙은 정책 결정 과정의 대화와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환경과 사회의 관점에서 경제적 제안들을 분석하고 평가해 사회적으로 가장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182~188항) 정책과 사업 계획이 ‘참다운 온전한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지 식별하기 위해서는, 솔직하고 투명한 정책 결정 과정이 수립돼야 한다.(185항) 대가를 받고 실질적인 환경적 영향을 감추려는 개발 계획이 있을 수 있고, 이러한 부패는 결국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충분한 논의도 허락하지 않는, 허울 뿐인 합의를 낳을 뿐이라는 것이 교황의 지적이다.(182항) 

 

정치와 경제가 참된 인간 성취를 향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세계 금융 위기는 ‘윤리 원칙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새로운 경제’, ‘투기 금융 관행과 가상의 부를 규제하는 새로운 방식’을 요청한다.(189항) 특히 환경은 ‘시장의 힘으로 보호되거나 증진될 수 없는 재화’이다.(190항) 발전에 관한 새로운 시각, 즉, 생산과 소비의 감소가 오히려 또 다른 형태의 진보와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인식(191항)이 필요하다. 자원의 지속가능한 사용을 위한 노력은 돈 낭비가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오히려 또 다른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투자(191항)이다. 그래서 근본적으로는 “발전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는 것”(194항)이 필요하다. 

 

경험 과학이 삶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인류가 “조화롭게 살고 희생하며, 남을 배려”하는 것을 잊는다면(200항), 과학 기술의 해법들은 효과가 없다. 이러한 점들은 주로 종교가 동기를 제공한다. 그래서 종교들은 “자연을 보호하고 가난한 이들을 옹호하며 존중과 우애의 관계망을 수립하는 대화”(201항)를 나눠야 한다. 과학과 종교, 과학들 사이에, 종교들 사이에, 그리고 학문들과 환경운동들 사이에 대화는 절실하게 요구된다. [가톨릭신문, 2015년 8월 2일, 박영호 기자]

 

 

교황이 지적한 생태 위기 현상 (4) 생물 다양성 감소

 

모든 생태가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통합 생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앞서 지적한 여러 환경문제는 ‘생물 다양성 감소’로도 이어진다. 환경오염과 버리는 문화가 기후변화로 이어지고 물 자원 부족과 더불어 생태계를 해치고 있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태계가 착취할 ‘자원’이 아니라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고, 그 가치는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풍부하고 다양한 생물이 있는 지역을 보호하는 것은 생태계 균형과 생명의 균형을 이루는 데 반드시 필요하지만, 종종 초국가적 경제 이익이 이러한 보호를 저해한다고 바라보는 것이다. 

 

실제로 ‘생물 다양성 감소’는 많은 환경단체들이 환경문제를 거론할 때 하나의 주제가 될 만큼 심각한 수준에 와있다. 하승수 변호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는 지난 6월 ‘기후변화 위기와 종교인의 영성’ 주제의 종교인 대화마당에서 “올해 5월 유명과학저널인 사이언스지에 실린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구상 생물종 멸종이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기 전보다 1000배 정도 빨리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결국 생물 다양성 감소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등이 이미 우리 인간을 포함한 생명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이날 함께 발제를 맡은 최원형 소장(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은 “기후변화의 주범인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탄소는 대기로뿐 아니라 20%는 숲과 토양으로, 30%는 해양으로 흡수된다”면서 “최근 30년 동안 녹아든 탄소량이 급증한 덕분에 해양생물들은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동물성 플랑크톤의 겉껍질이 녹아내리고, 산호초는 백화현상을 보이며 죽어간다는 것이다. 2014년 발표된 제4차 지구생물다양성 전망 보고서는 ‘인류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2020년까지 해양 산성화의 영향으로 카리브해 산호초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황은 회칙에서 이러한 생물 다양성 감소를 막기 위해서는 환경 시스템의 기능에 대한 전반적 이해와 환경의 주요변화에 대한 적절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전한다. ‘모든 창조물들이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생명을 가진 창조물들은 저마다 사랑과 존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고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다. 교황은 이들을 ‘가족’이라고 부르며 그 가족을 돌봐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가톨릭신문, 2015년 8월 2일, 오혜민 기자]

 

 

[기고] 지구, 우리 공동의 집 : 「Laudato Si’」로 세상 바라보기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Laudato Si’, 16항). 프란치스코 교종은 지난 6월 18일 발표한 회칙 「Laudato Si’」에서 생태학의 오래된 근본원리를 다시 세상으로 불러냈다. 회칙의 핵심어인 “우리 공동의 집”과 “통합적 생태학”도 만물의 상호연결이라는 생태학적 통찰에서 비롯된다(1, 137항). 

 

“모든 것은 밀접하게 서로 연관되어” 하나의 그물망을 이룬다(137항). 그물망을 이루는 모든 것은 각자 나름의 존재 이유와 본질적 가치를 지니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한 집안의 식구들이 바로 그렇지 않은가? 지구가 우리 모두의 집(ο?κο?)인 까닭이다. 한 집안에 속한 자연과 사회가 분리되어 있지 않듯, 사회의 위기와 자연의 위기도 별개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적, 환경적 차원을 함께 지닌 “복합적 위기”에 처해 있다(139항). 생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통합적 생태학이 필요한 까닭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심각한 사회 현안으로 떠오른 핵발전을 예로 들어보자. 핵발전소는 외부 세계와 절대적으로 분리, 차폐되어야 한다. 핵분열 과정에서 생성되는 ‘죽음의 재’, ‘꺼지지 않는 불’로 불리는 200여 가지의 치명적 방사성물질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완벽한 분리와 차폐는 불가능하다. 

 

잊지 말자!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핵발전으로 인한 지역적 오염은 결국 우리 공동의 집 전체를 오염시킨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핵발전은 자연만이 아니라 사회에도 다양하게 파괴적 영향을 미친다. 최대한 분리와 차폐가 요구되는 핵발전소는 태생적으로 폐쇄적 운영이 불가피하며, 투명성과 개방성의 확보가 매우 힘들다. 핵발전소가 비리와 부실운영의 온상이 되기 쉬운 까닭이다. 

 

핵발전은 인간의 노동을 요구하지만, 피폭노동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결국 사회의 가장 힘없는 이들이 생존을 위해 피폭노동을 감수한다. 핵발전으로 지역 공동체와 생태계가 파괴된다. 주로 어업에 종사하던 지역주민들의 자립적 삶은 의존적 삶으로 전락한다. 핵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대도시로 보내기 위한 송전탑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파괴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생태위기 극복을 위한 ‘생태적 접근’은 동시에 ‘사회적 접근’이어야 한다(49 93항 참조).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배제하는 사회가 자연을 친절하게 대할 리 없다(91항). 레오나르도 보프가 주장했듯이, 우리는 ‘지구의 울음과 가난한 이들의 울음’을 함께 들어야 한다(49항).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92항). 또한, 생태위기는 ‘관대한 돌봄의 정신’과 ‘적을수록 크다’는 확신을 가져오는 개인의 ‘깊은 내적 회심’을 요청한다(220, 222, 217항). 이 ‘생태적 회심’은 검약과 절제의 생활양식, 자신을 벗어나 타자를 향하는 관심으로 이어진다(217, 222, 208항).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세상 만물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으며, 따라서 하느님의 것이다(창세 1장 지혜 11,26).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에게서 비롯되는 유대로 연결되어 “보편 가족, 친교 공동체”를 이룬다(89항).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과 형제자매의 친교를 이루며 살았다. 프란치스코의 회심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와 만남으로써 시작되었으며, 자기비움과 가난의 삶으로 구체화되었다. 그의 가난은 단순한 고행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이용과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것의 거부였다(11항). 이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소중한 피조물로 알아보고 대하는 것을 뜻했다. 그럴 때, 지구는 ‘형제애의 감각’이 가득한 우리 모두의 집이 된다(92항). 프란치스코가 노래했듯 세상은 ‘우리의 생명을 함께 나누는 누이, 팔을 벌려 우리를 감싸주는 아름다운 엄마’같은 우리 모두의 집이다(1항). [가톨릭신문, 2015년 8월 2일, 조현철 신부(예수회,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교황 생태 회칙 해설 - 찬미받으소서] (7) 제6장 ‘생태 교육과 영성’


물 절약 등 일상 변화가 온전한 생태계 이루는 ‘첫걸음’

 

 

교황은 회칙의 마지막 장에서 모든 이가 생태적 회개와 회심의 마음을 지니도록 초대한다. 오늘날의 위기는 뿌리 깊은 문화적 위기이고 따라서 이를 바꾸는 일은 단순히 몇 가지 기술적인 문제를 개선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다. 습관과 행동을 바꾸는 일은 근본적인 변화를 요청하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서 교육과 훈련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변화는 그냥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교황은 “동기 부여와 교육 과정 없이는 변화가 불가능합니다”(15항)라고 확신하고 무엇보다도 “학교, 가정, 매체, 교리교육과 그 밖의 분야”(213항)를 모두 포괄하는 전폭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출발점은 “새로운 생활 양식을 목표로” 삼는 일이다(203~208항). 이는 또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힘을 발휘하는 이들에게 건전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206항)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는 소비자의 선택으로 “기업 운영 방식을 바꾸도록” 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이뤄진다. 이는 “기업들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그 생산 방식을 성찰하도록”(206항) 힘을 발휘하는 일이다. 

 

환경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는 행동과 일상 습관, 곧 물 절약, 쓰레기 분리수거, 나아가 “필요 없는 전등의 소등”(211항)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온전한 생태계는 폭력과 착취와 이기주의의 논리를 타파하는 평범한 일상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230항) 

 

모든 것은 신앙에서 나오는 관상적 관점에서 시작될 때 쉬워진다.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모든 존재하는 것들과 맺어주시는 유대를 생각하며 세상을 밖이 아니라 안에서 관찰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개별적으로 주신 능력을 발전시킴으로써 생태적 회개는 우리가 더 큰 창의력과 열정을 발휘하도록 해줍니다.”(220항)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에서 제안된 것과 같이 “자유롭게 의식적으로 발휘되는 냉철함은 우리를 해방시켜줍니다.”(223항) 다시 말해서 “행복은 우리를 해칠 뿐인 일부 욕구를 억제하는 법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삶이 줄 수 있는 많은 다른 가능성들에 열려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223항)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고 이웃과 세계에 대한 공동 책임이 있으며 선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되찾아야 합니다.”(229항) 

 

성인들은 이러한 여정에 우리와 함께한다. 이 회칙에서 여러 차례 인용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취약한 이들을 돌보고 온전한 생태학을 기쁘고 참되게 실천한 훌륭한 모범입니다.”(10항) 프란치스코 성인은 “자연 보호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와 사회적 헌신과 내적 평화 사이의 불가분의 유대”를 잘 보여준다.(10항) 회칙은 또 베네딕토 성인, 리지외의 데레사 성녀, 샤를 드 푸코 복자도 언급하고 있다. 

 

이 회칙에서 힘을 얻어 정기적인 양심 성찰에 새로운 차원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회칙은 말한다. 양심 성찰은 개인의 삶을 주님과의 관계에 비추어 이끌도록 언제나 권고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과 다른 이들과 자기 자신과 어떤 친교를 이루며 살았는지에 관한 것 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과 자연과 어떻게 친교를 이루고 살았는지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가톨릭신문, 2015년 8월 9일, 박영호 기자]

 

 

교황이 지적한 생태 위기 현상 (5) 인간생태의 위기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을 통해 환경오염과 버리는 문화, 기후변화, 물 문제, 생물 다양성의 감소를 지적했다. 하지만 교황이 지적한 생태 위기 현상은 자연생태뿐 아니라 인간생태의 위기까지 포함한다. 

 

교황은 자연생태의 위기를 언급한데 이어 인간생태의 위기로 ‘인간 삶의 질 저하와 사회 붕괴’를 꼽는다. 자연을 낭비하는 도시 중심의 인간 생태는 자연과의 접촉을 제한하고 인간 삶의 질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자연생태 위기 현상을 언급하면서 강조했던 ‘불평등’에 대한 부분도 등장한다. 교황은 “환경과 사회 훼손이 지구의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취약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며 “생태 위기의 해결책은 출생률 감소가 아닌, 일부만이 누리는 지나친 선택적 소비주의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실제로 기후변화나 물 문제 등에 있어 가장 먼저 고통 받는 것은 지구촌에 사는 가난한 이들이었다.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겪는 비극에 대한 미약한 반응도 지적하면서, 이는 자기만족과 커다란 부주의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의식적으로 생태계를 보존하려는 마음과 인식이 부족한 것이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가 2010년 편찬한 「창조 질서 회복을 위한 우리의 책임과 실천」은 회칙이 발표되기 이전부터 자연생태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전환시키고 인간생태의 문제점과 이기심을 지적해왔다. ‘인간 생태계의 붕괴’를 꼬집으며 이농현상과 도시문화 확산, 난개발 등에 대해 강조했다. 

 

농촌을 떠나 급속하게 이뤄진 도시화가 많은 환경문제를 초래하고, 세계화와 경쟁 중심의 신자유주의를 확산시키며 인간생태마저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책은 “생태 정의는 정의의 개념을 인간에게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에 적용한 것”이라며 “인간의 가치와 삶의 의미가 ‘무엇을 소유’하는데 있지 않고, ‘어떠한 인간인가’라는 존재의 문제에 달려있는 의식변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가톨릭신문, 2015년 8월 9일, 오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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