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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한국 가톨릭 회화의 토착화: 또 하나의 획을 그을 순교도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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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6 ㅣ No.86

[경향 돋보기] 한국 가톨릭 회화의 토착화


또 하나의 획을 그을 순교도를 기대하며

 

 

9월은 순교자성월입니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배선영 노엘라 수녀의 경주대학교 대학원 문화재학과 문학석사 학위 논문(2005년 12월) ‘한국 가톨릭 회화의 토착화 과정에 관한 연구 - 순교도(殉敎圖)를 중심으로’를 필자의 동의를 얻어 발췌 소개합니다.

 

 

순교도는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을 기념하거나 순교자들의 행적을 신자들에게 알리려고 제작한다. 한국 순교자들을 군상으로 그린 순교도는 ‘영광도’, ‘79위 복자도’, ‘24위 복자도’, ‘순교자도’, ‘한국 103위 성인도’가 있으며, 대표적인 인물의 순교도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도’, ‘세 프랑스 신부 순교도’, ‘김효임 골롬바 ? 김효주 아녜스도’,  ‘유대철 베드로도’가 있다. 또 한국교회사의 내용을 사화(史畵) 형식으로 그린 작품도 있다.

 

가톨릭교회의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려고 제작된 순교도는 시기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변하면서도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작가의 신앙 안에서 그 시대를 표현하고 있다.

 

순교도는 순교를 상징하는 특징과 도상을 다양하게 묘사하여 그 의미를 전달한다. 승리와 순교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 월계관, 칼, 형구들, 순교장소,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순교도는 교회의 공인된 성화로서 자랑스러운 순교선열들의 삶을 모든 신자들에게 알리려고 제작된 것이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첫 순교도는 시대적인 상황과 여건으로 외국 화가가 제작하였고, 시복식 이후에는 한국화가들의 작품이 나타난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순교도는 3시기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기마다 여러 작품이 있지만 지면 관계로 몇 가지 작품들만 소개한다 - 편집자)

 

 

제1기 : 1784-1925년 조선교회 창설부터 79위 시복식까지

 

1784년 조선 천주교회가 창설되고 이희영 루카가 신자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성화는 한 점도 남아있지 않다. 1831년부터 우리나라에 진출한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교회미술품을 본국에서 가져오거나 그들이 직접 제작하였다. 최초로 우리나라 순교자들을 성화를 통하여 알린 사람은 이탈리아 화가 주스타니안(Giustanian)이다.

 

1925년 7월 5일 기해박해(1839년 / 70명)와 병오박해(1846년 / 7명) 때 순교한 한국 순교자 79위의 시복식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비오 11세의 주례로 거행되었다. 이때 성당 안에 걸었던 79명의 순교자를 그린 ‘영광도’와 ‘소년 순교자 유대철 베드로도’, ‘순교자 김효임 골롬바 · 김효주 아녜스도’, ‘세 프랑스 신부 순교도’ 등 4점이 주스타니안의 작품이다.

 

외국인 화가의 서구적인 인물묘사로 우리 정서와 맞지 않는 거리감이 있다. 제1기는 초기단계로서 한국화가의 활동은 1920년부터 시작된다.

 

 

제2기 : 1926-1968년 79위 시복식 후부터 24위 시복식까지

 

제2기는 도약기로서 한국의 첫 성화가 장발 루도비코 화백을 중심으로 가톨릭 화가들의 모임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한국 순교자 24위는 병인박해(1866년) 때 순교한 24위를 말한다. 1968년 10월 6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과 한국 주교단 그리고 평신도 대표 등 136명이 참석한 가운데 교황 바오로 6세의 주례로 한국 순교자 24위 시복식이 거행되었다.

 

이때 제대 위에 걸었던 ‘24위 복자도’도 이탈리아 화가의 작품이다. 줄리오 단테가 그린 이 그림은 서울로 가져와서 절두산성당에 모셨다고 전하지만 아쉽게도 확인할 수 없다.

 

병인순교 100주년과 24위 시복식을 기념하여 정창섭 암브로시오 화백이 그린 ‘순교자도(별칭 영광도)’는 서울 절두산순교박물관에 있다.

 

 

제3기 : 1969-1984년 24위 시복식 후부터 103위 시성식까지

 

1984년은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이 되던 해로, 그해 5월 6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주례로 시성식이 거행되어 한국 103위 성인이 탄생하였다. 이를 기념하여 문학진 토마스 화백이 1977년에 79위 복자와 24위 복자를 함께 그린 ‘한국 103위 복자도’를 시성 기념 성화로 공인하고 시성식 제대 뒤에 전시하였다. 철저한 고증과 각계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순교자들의 모습을 재현한 이 그림은 시성식 이후부터 ‘한국 103위 성인도’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밖에도 탁희성 비오 화백의 김대건 신부 일대기 24점, 최양업 신부 일대기 30점, 동정부부 일대기 28점과 새남터성당에 있는 방오석 마르가리타 화백의 성인도들도 제작되었다. 제3기는 본격적인 토착기로서 그리스도 신앙의 메시지가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조형언어로 표현됨으로써 차츰 토착화가 진전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톨릭 화가들은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다양한 조형언어로 표현하였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이 시대와 접목하여 생명을 불어넣은 작품을 통해 화가들은 오늘도 그분들과 우리가 하느님의 영 안에서 서로 만나 어우러지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 가톨릭교회사와 더불어 역사가 길지 않은 미술사에서 순교도가 차지하는 범위는 넓지 않다. 그 이유는 가톨릭 신앙을 가진 화가들도 많지 않아 순교자를 주제로 발표한 작품도 적고 순교도가 주로 시복시성 기념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초기 교회 지도자들을 포함한 124위의 시복시성을 준비하고 있다. 영광스러운 그날에 한국 가톨릭 미술사에 또 하나의 획을 그을 순교도가 제작되어 전 세계 모든 이에게 알려지기를 소망한다.

 

[경향잡지, 2006년 9월호, 정리 배봉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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