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기도 맛들이기: 영혼의 어두운 밤이 다가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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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0-26 ㅣ No.1686

[기도 맛들이기] 영혼의 어두운 밤이 다가올 때

 

 

많은 신자의 하소연이 꼭 제 것 같아 신기합니다. 곤경 중에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느님께서는 깊은 침묵 중에 계시는 느낌입니다. ‘혹시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은 아닌 건지.’ 하는 의혹과 ‘지금 내가 열심히 바치고 있는 기도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하는 회의감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가톨릭교회 안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영성 생활의 대가들께서도 비슷한 체험을 하신 기록이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놀랍게도 콜카타의 성녀 마더 데레사 수녀님께서도 갑작스레 다가온 하느님 부재 체험, 메마른 사막 체험, 깊은 영혼의 어두운 밤 때문에 평생토록 힘겨워하셨습니다. 신비가요 관상가이며 하느님 체험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예수의 성녀 데레사 수녀님이나 십자가의 성 요한 신부님도 오랜 세월 동안 메마른 영혼의 사막을 헤맸습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 수녀님께서는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잊혀졌다는 느낌과 고통스러웠던 세월의 흔적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 지루하고 고통스런 삶이여! 산다고 할 수 없고 완전히 버림받아 그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삶이여! 주여, 언제이옵니까? 아직 얼마나 더 계속 되려나이까?”

 

오랫동안 지속된 깊은 영혼의 어두운 밤, 끔찍한 하느님 부재 체험, 지루한 자신과의 싸움 그 와중에도 탁월한 기도의 스승들께서는 영적 생활의 무미건조함에 대해서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 부재 체험이 강하게 느껴질수록 더욱더 예수님께 집중했습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더 예수님을 사랑했고, 특히 예수님의 수난 속에서 그분과 하나 되고 싶어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기본적인 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은 결과 다음과 같은 깨달음에 도달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귀여워하시는 이들을 고생길로 이끄시고 많이 아끼실수록 많은 고생을 내리십니다. 최고 단계의 완전성은 내적 위로나 고상한 황홀감이나 현시, 예언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뜻을 그분의 뜻에 합일시키고 그분의 뜻을 우리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상태입니다. 구원은 하느님의 뜻과 우리의 뜻을 동일시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영혼의 어두운 밤, 하느님 부재 체험의 순간, 버림받은 느낌이 다가올 때, 기도의 의미를 찾기 힘들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가 있습니다. 바로 캄캄해도 희망하는 일입니다. 언젠가 이 어둠이 걷히고 밝은 대낮이 밝아 오리라는 것을 확신하는 일입니다. 그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앞길이 막막해도 우선 내 발에 묻은 진흙을 털어내는 일입니다. 기도의 응답 여부에 개의치 않고 꾸준히 기도하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로 내 등 뒤에서 나를 떠받치고 있음을 확신하는 일입니다.

 

[2021년 10월 24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 수원주보 3면,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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