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아! 어쩌나: 어떻게 견디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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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570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139) 어떻게 견디냐구요?

 

 

Q. 재개발지역에 사는 신자입니다. 저희 동네도 신부님이 사는 가좌동처럼 재개발 바람이 불어 몇 차례 갈등을 겪었고, 지금도 해결이 안 된 채로 있는데 지난번 가좌동성당에서 신부님 강의가 있기에 들으러 갔더니 저희 동네보다 더 심한 상황이더군요.

 

언덕 위에 성당 하나 덜렁 있는 모습이 참으로 마음 아팠습니다. 그리고 그런 곳에 사는 신부님이 걱정되더군요. 안 무서우신지요? 신부님께서 그곳에서 몇 년을 살았다고 들었는데 그동안 어떻게 견디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제가 이곳에 부임했을 때 바로 옆 동네는 철거가 거의 마무리 돼 집이라고는 몇 채 없고 저녁이면 공동묘지처럼 음산한 곳이었습니다. 저녁식사 후 산책을 하는데 음산한 동네에 간신히 난 길을 웬 처녀가 걸어가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아, 참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 무서운 곳을 어떻게 저렇게 담담하게 걸어갈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 얼마 후 제가 그 처녀처럼 조명 없는 밤길을 걷게 됐고, 지금은 무서움 없이 그저 담담한 마음으로 밤길을 걷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고요, 시간이 가면서 적응이 되고 나름대로 심리치료 방법을 저 자신에게 사용하면서 힘이 붙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무서웠지요.

 

아시다시피 많은 재개발이 주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부 업자들 배를 불리면서 기존에 살던 사람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쥐꼬리만한 보상만을 해주고 내쫓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온갖 협박과 강요가 난무하고 심지어 빈집에 방화하는 일까지 곳곳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저희 동네에서도 똑같이 일어났고, 저 역시 성당이 방화 대상이 될까봐 밤에는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고, 자다 놀라서 깨는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불도저들이 막무가내로 집들을 밀어내면서 생기는 소음과 먼지 때문에 피부병도 자주 걸렸습니다. 가장 신경이 예민해졌을 때는 귀에서 쇳소리가 나는 이명현상까지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불안감이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과연 성당을 지킬 수 있을까? 아니면 제대로 보상이나 받고 나갈 수 있을까? 무능력한 본당신부가 돼서 밀려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녀서 늘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심리치료법을 저 자신에게 모두 사용했습니다. 불안한 생각 끊기부터 시작해, 시간만 나면 한강으로 자전거를 타러나가거나 동산에 올라가 심호흡을 하고 내려오는 등 불안한 생각에 휘말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가면서 심리적 안정감이 오더군요.

 

나중에는 “그래, 불 내려면 내봐라. 신문에 너희들 기사를 내서 싸그리 감방에 보낼테니” 하는 마음까지 들면서 한밤중에도 혼자 좁고 어두운 재래시장 안을 묵주 하나 달랑 들고 기도하러 다니게 됐습니다. 새가슴인 제가 간이 부은 것이지요. 동네 깡패들이 벼른다는 말도 이제는 겁나지 않습니다. ‘다치면 병원에서 몇 달 푹 쉬지 뭐’ 하는 오기까지 생겼고요.

 

불안감이 가시자 그 다음에 찾아온 손님은 ‘분노’였습니다. 힘없고 아는 것 없는 선량한 주민을 속인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끊임없이 올라오더군요. 머리가 아프고 체한 듯 배가 쓰렸습니다. 한의원을 하는 분이 ‘화병에 걸린 것’이라고 하더군요. 화병은 제가 치료 전문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불안 치료 때와 마찬가지로 제가 아는 분노 치료법을 저 자신에게 사용했습니다. 우선 모리 박사처럼 걸어 다니며 욕설을 내뱉는 간단한 방법부터 시작했습니다. 손에 묵주를 들고 걸어가면서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욕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새벽에 동네 산책을 하면서 욕을 하고 나면 개운해지더군요.

 

그리고 샌드백을 사다 사기꾼들 얼굴을 그려놓고 두들겨 팼습니다. 매일같이 가슴 속이 풀릴 때까지 두들겨 팹니다. 그래도 뱃속이 마치 체한 것처럼 힘들고 괴로우면 마지막 방법으로는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집 한 채 없는 동네 길을 오르면서 온갖 고함을 지릅니다. 물론 욕설이지요. 그렇게 하고 나면 숙면을 취하고 다음 날 개운한 마음으로 일어나게 되더군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쁘게 사는 것입니다. 방송 준비에 강의 준비, 신문과 잡지 원고 준비 등 하루 종일 바쁜 일정을 만들어 일하고 외부활동을 나갑니다. 쓰레기더미만 너무 오래 보면 우울해지므로 외부강의를 하러 서울이건 지방이건 많이 다니면서 마음속 우울감과 불안감, 적개심을 덜어내며 조합과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주위 분들의 관심과 기도입니다. 이곳에 나 홀로 있지 않고,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가장 큰 힘이 됩니다. 특히 제가 만든 상담카페 도반모임 회원분들은 제게 가장 소중한 동지들입니다.

 

[평화신문, 2012년 2월 19일, 홍성남 신부(한국가톨릭상담심리학회 1급 심리상담가, 그루터기영성심리상담센터 담당,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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