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영성심리: 건강한 죄책감을 위해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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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9-25 ㅣ No.1982

[영성심리] 건강한 죄책감을 위해 구별하기

 

 

어느덧 가을을 기다리고 있지만, 올여름은 유난히도 더웠습니다. 매일 밤 열대야가 계속되던 때도 있었지요. 더위에 밤잠을 설치고 난 다음 날이면 낮에도 정신이 몽롱합니다. 사무실에서도 멍하니 있기 일쑤고, 쉬고 싶은 마음만 자꾸 듭니다. 이런 마음이 든다면 잘못일까요? 근무 시간임에도 업무에 성실히 임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들어야 마땅할까요?

 

여러 일로 정신없이 바쁜 날이 있습니다. 일정이 겹쳐서 점심도 못 챙기는 날이죠. 늦은 오후가 되면 배가 고파 옵니다. 회의 석상에 앉아있지만, 머릿속엔 자꾸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릅니다. ‘식탐’일까요? 회의 시간에 다른 것을 생각하는 잘못된 모습일까요?

 

오랜만에 동창 신부들을 만났습니다. 본당에서 했던 사목 활동이 좋은 열매를 얻어서 이 내용을 동창들과 나누고 내심 자랑도 하고 칭찬도 듣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은 동창 한 명이, 그 활동은 본인이 이미 몇 년 전에 했던 것인데 그걸 이제서야 했느냐며 저를 놀립니다. 뿌듯했던 마음이 초라해지고 무시당한 느낌과 함께 그 동창에게 서운한 마음, 미운 마음이 듭니다. 고해성사 때 고백해야 할 죄일까요?

 

앞서 그릇된 죄의식과 죄책감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이나 계명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보면서 곧바로 죄의식과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죄를 “어떤 것에 대한 비뚤어진 애착 때문에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참다운 사랑을 저버리는 것”(1849항)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어떤 것에 대한 비뚤어진 애착’ 자체와 그 애착 때문에 ‘사랑을 저버리는 행위’ 사이의 구별입니다.

 

열대야로 잠을 설친 다음 날, 몸이 피곤해서 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쉬고픈 마음 자체와, 그래서 말없이 자리를 비우거나 사무실 문을 닫고 잠자는 ‘행위’는 다릅니다.

 

점심을 굶어 회의 시간에 음식 생각이 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식욕을 느끼는 것 자체와, 그래서 회의 시간 내내 내용에 집중하지 않고 음식 생각만 계속하는 ‘행위’는 다릅니다.

 

동창 신부에게 무시당한 느낌에 상처받고 서운한 마음, 미워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충분히 자연스러운 움직임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 자체와, 그래서 동창 신부에게 화를 내거나 꽁한 마음으로 앙심을 품고 간직하는 ‘행위’는 다릅니다.

 

‘어떤 것에 대한 비뚤어진 애착’ 자체와 그 애착 때문에 ‘사랑을 저버리는 행위’ 사이의 구별, 바로 건강한 죄책감을 얻는 데 필요한 중요한 구별입니다.

 

“마음이 빗나간 자도 제 행실의 결과로 채워지고 착한 사람도 제 행동의 결과로 채워진다.”(잠언 14,14)

 

[2023년 9월 24일(가해) 연중 제25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서울주보 7면, 민범식 안토니오 신부(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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