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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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한계를 두지 않고(마음의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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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6-06 ㅣ No.877

[레지오와 마음읽기] 한계를 두지 않고(마음의 시계)

 

 

갑(甲)이 바뀌거나 돌아온다는 의미인 환갑(換甲) 혹은 회갑(回甲)인 만 60세는 단어 뜻 그대로 새로운 시작의 때이다. 그래서 수명이 짧았던 예전에는 그때까지 살아 있음이 축복이었기에 큰 잔칫상을 받았다. 그런데 2020년 3월 모 방송국 예능프로그램에서 ‘UN이 발표한 새로운 연령 분류 기준’에서는 60세를 청년이라 한다고 소개하자 많은 사람이 놀랐다. 60세를 청년이라고 하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공감이 어려웠기 때문이리라.

 

그 후 이 구분은 정확한 공식 기록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지금도 가끔 회자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우리들의 건강 상태가 양호해져 60세를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색한 면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1979년 어느 날, 미국 뉴햄프셔주의 옛 수도원에 70~80대 노인 8명이 들어와 생활을 시작한다. 그들이 안내된 곳은 그 당시보다 20년 전 시대의 환경이었다. 영화 ‘벤허’를 보고, 냇 킹 콜의 노래를 듣고, 당시 핫뉴스였던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익스플로러 1호 발사 등을 이야기하며 당시의 시사 문제에 관한 토론도 했다. 그리고 식사 메뉴를 정하고, 요리와 설거지, 청소 등을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해냈다. 그렇게 20년 전으로 돌아가 산 지 일주일. 그들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놀랍게도 노인들은 실제로 젊어졌다고 한다. 시력과 청력, 기억력 등이 향상되고 체중이 늘었으며, 누군가의 부축 없이는 걷기 힘들었던 한 노인은 심지어 꼿꼿한 자세로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제삼자에게 실험 전과 후 노인들의 사진을 보여주자 모두 일주일 후의 사진이 더 젊다고 말했다.

 

 

마음의 시계 거꾸로 돌린다면 육체의 시간도 되돌릴 수 있어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라고 이름 붙여진 이 실험은, 마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면 육체의 시간도 되돌릴 수 있다는 결론으로, 노화와 육체의 한계에 도전하는 단순하고도 혁신적인 실험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리고 이 실험을 실시한 30대의 미국 심리학자 엘렌 랭어 박사는 여성 최초로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종신 교수직에 임용되었고, 이제 60대 노인이 된 그녀는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하여 2009년 ‘마음의 시계’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다방면에서 화제가 되었고, 영국 BBC 방송국에서는 이 연구를 똑같이 재현해 ‘젊은이들(The Young Ones)’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 인기리에 방영하였다. 한국에서도 2013년 EBS 다큐프라임 ‘1982년으로 떠나는 시간여행—황혼의 반란’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개되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랭어 박사는 노화가 인간 발달의 한 단계일 뿐 쇠퇴나 상실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나이에 대한 인식은 고정관념에 불과할 뿐이라고 한다. 실제로 노인들은 살아온 만큼 경험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유능하다. KFC의 커넬 샌더슨은 창업 당시 61세였고, ‘반지의 제왕’을 출간한 톨킨은 62세였다. 그리고 넬슨 만델라는 76세에 대통령이 되었다.

 

이에 엘렌 랭어는 말한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내라고.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노화와 육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즉 나이라는 숫자에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지 말고 일상에서 소소한 선택의 기회를 자주 가지면 그것으로도 삶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 후 세례받고 타향에서 다양한 간부직을 수행하며 단원 생활을 하던 K자매는 60세에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치게 되었다. 회복을 위해 꽤 긴 시간을 보냈지만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 그녀는 고향으로 내려와 조용히 기도에만 전념했다. 그러다 그런 그녀를 눈여겨본 한 자매가 입단을 권유하자 고민이 되었다. 그곳에는 신자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 자신이 아주 젊은 부류에 속했기에 입단한다면 간부직까지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그녀는 다시 단원이 되었고 지금은 예전 같지 않은 능력이지만 기쁘게 봉사하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제가 기도 생활만 하고자 했던 건 제 능력에 대해 자신감도 없었지만, 죽음을 준비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통사고 이후 죽음이 늘 가깝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저는 성향상 사람을 좋아하는 데다 공동체 봉사로 신앙을 키워왔던 터라 혼자만의 신앙에서 기쁨을 찾기는 어려웠는지 봉사 없는 고향 생활은 그리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저보다 연세 많으신 분들의 건강하신 모습과 함께, 지금 기쁘게 신앙 생활하는 것이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라는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깨달은 바가 많았습니다. 이후 병원 치료도 더 적극적으로 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면서 제 몸을 보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봉헌 기도에 나와 있는 것처럼 ‘주님께 받은 몸과 마음을 오롯이 도로 바쳐 찬미와 봉사의 제물로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레지오는 한계를 두지 않고 아낌없이 봉사하도록 부름 받아

 

단원 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퇴단의 유혹을 느낄 때가 있다. 더구나 그 이유가 나이 들어 생기게 되는 한계일 때는 더욱 불가항력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교본 346쪽에서 초자연적인 영신 세계에서는 자연적 한계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레지오는 한계를 두지 않고 아낌없이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교본 32쪽)라고 되어 있으니, 우리들이 한계라고 생각하는 다양한 상황들은 결코 단원 생활을 그만두게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나아가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열망과 믿음이 크면 클수록, 믿음을 실천하고자 하는 우리의 행동의 힘도 함께 커진다”(교본 465쪽)라고 하니, 한계는 오히려 열망과 믿음이 있다면 더 큰 힘으로 행동하게 할 것이다.

 

이만하면 레지오 단원 생활을 그만해도 되겠다고 생각하는가? 교본은 ‘한평생 사도직 활동을 꾸준히 지속하는 것 자체가 바로 영웅적 행위’(교본 32쪽)라고 한다. 점점 몸을 돌봐야 하는 시간은 많아지는데 봉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가? 교본에 ‘신앙은 옆으로 미루어 놓을 문제가 아니라 그의 삶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한다’(98쪽)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 삶의 나이테가 늘면서 질병이나 노화 등에 따른 불편함으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작아질수록, 그 시간을 봉사로 채워 주님께 봉헌하는 행위는 그 가치가 결코 작지 않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기에,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신앙이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어쩌면 죽음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가장 공평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삶의 시간에는 끝이 있다. 이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달릴 곳을 끝까지 다 달려야만 하는 이유이다.

 

‘평생을 변함없이 사도직 활동에 몸 바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바로 은총이며, 이 은총은 지속적인 활동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다.’(교본 32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6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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