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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미술 기획 - 한국교회 문화유산 보존 관리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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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2-25 ㅣ No.202

[성미술 기획] 한국교회 문화유산 보존 관리 실태


더 이상 ‘지우는 교회미술사’ 계속되면 안된다



1954년 한국 미술가들에 의해 처음으로 개최된 가톨릭미술 전람회 출품 작품들은 교회의 무관심과 관리 소홀로 인해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최근 정수경(카타리나·인천가대 조형예술대학) 교수가 서울 가톨릭대 성신교정 전례박물관 내에 보관된 <성모칠고>(남용우 작), <성모영보>(김정환 작), <십자가의 그리스도>(김병기 작) 등을 발견하기 전까지 세 작품은 ‘작자미상’으로 기록돼 있었다.

정수경 교수는 “한국 가톨릭 미술가 협회의 초석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와 역사적 가치를 갖는 전람회였지만 출품작의 소재를 알기 어렵고 몇몇 작품은 보존상태가 양호하지 못하다”며 “작품성이나 역사적 가치에 있어 한국교회의 소중한 문화유산이기에 그에 맞는 보존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교회 내에서는 가톨릭미술 전람회 개최 60년을 맞이하는 올해 유실된 작품들을 발굴하고 훼손된 작품들을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교회문화유산 관리 시스템 구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 문화유산 유실 현주소

지난 2011년 의미 있는 성미술 작품 복원이 이뤄졌다. 서울 시흥동본당에 설치된 고(故) 이남규(루카, 1931~1983) 선생의 작품 ‘빛이 있으라’가 온전한 형태로 빛을 발했다. 이전까지는 작품 설치 이후 생긴 2층 성가대석으로 인해 예술이 아닌 창에 불과했던 작품이었다. 작품은 온전한 형태를 되찾으면서 예술로써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교회에 이러한 복원 사례는 굉장히 드물다. 실제로 많은 성미술품이 유실되거나 훼손된 사실이 취재 과정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교회의 한 기관에서는 미술가가 기증한 작품을 지하 수장고에서 보관하고 있었지만, 습기와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전문 수장고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탓에 작품에는 곰팡이가 내려앉아 복원도 불가능할 정도다. 교회의 소홀한 관리로 인해 작품이 예술적 가치를 잃어버린 셈이다. 또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성미술품인데도 불구하고 시대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성당으로 보낸 사례도 찾을 수 있었으며, 서울대교구 내 한 성지에 설치된 작품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헌장’에 따르면, “하느님 성전의 장식인 성당 기물이나 귀중한 작품들이 처분되거나 소멸되지 않도록 애써 돌보아야 한다”(126항)고 지적하고 있지만 이 지침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곳이 드물 정도다. 본당의 작은 성미술품도 교회의 재산이지만 제대로 보존되는 것은 물론 기록, 관리조차 허술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부실한 성미술품 관리는 교회 재산의 유실 혹은 훼손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성미술을 향한 미술가들의 관심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며, 이는 곧 작품성 높은 교회미술 작품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거라는 전망으로 이어진다.

교회의 관리 소홀로 작품이 손상된 한 미술가는 “이제는 성미술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하느님께 받은 탈렌트를 교회에 돌려드리기 위해 작품을 봉헌했는데, 방만하게 관리하는 것을 보니 제 신앙이 작품과 같이 취급되는 것 같아 상처를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2011년 3월 20일 서울 시흥동본당에서 열린 고(故) 이남규 선생 작품 ‘빛이 있으라’ 복원식. 본당 주임 주수욱 신부가 유리화를 축복하고 있다.


■ 교회의 관리 노력

그렇다고 한국교회의 노력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교회의 문화위원회는 2006년 ‘교회 문화유산 보존·관리’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마련했고, 2009년 「한국천주교 문화유산 보존 관리 지침서」를 발간했다.

「한국천주교 문화유산 보존 관리 지침서」는 각 교구와 본당, 기타 교회 기관 및 단체들이 소유하고 있는 교회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교회의 의지를 보여주는 지침이기도 했다.

문화위가 오랜 연구 끝에 한국교회의 상황에 맞는 보존 방안을 내놓았지만 구속력이 없는 지침서가 사목 현장에서 얼마나 적용되고 있는지는 지금까지 미지수다. 발간 당시에도 본당 및 기관, 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지침서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우려 섞인 전망이 현실화된 것이다.

지침 발간 1주년을 맞아 2010년 열린 ‘가톨릭교회 문화유산 보존 관리 방안 연구’ 세미나에서 실천 방안을 발표한 정수경 교수는 “지침서를 발간한지 1주년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미술품을 지침에 따라 정리하고 있는 본당은 그리 많지 않고, 심지어 발간 사실을 모르고 있는 본당도 다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서울대교구는 교구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를 통해 “기존 교회 미술품 가운데 보수가 필요하다면 원 제작자를 찾아 보수해야 한다”며 “원 제작자를 모르거나 없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사회복음화 6항)에 명시했고, 2009년에는 교구 본당과 기관을 대상으로 미술품 소장 현황을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

당시 조사를 담당했던 지영현 신부는 2009년 9월 6일자 본지 인터뷰를 통해 “교회의 모든 미술품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우리들의 소중한 유산”이라며, 현황 조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조사 과정에서 난항을 겪으며 현실화되지 못했다.

가톨릭미술가들 또한 교회의 문화유산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미술가들이 모여 세미나를 하는가 하면, 신학생 대상의 강의를 열기도 했다.

교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년 한국교회 역사 동안 문화유산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가장 큰 원인으로 일선 본당 사목자, 사무장 등의 인식이 지적된다. 따라서 시스템을 마련하기에 앞서 사목자, 사무장 등에게 관련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1954년 개최된 성모 성년 축하 성미술 전람회. (출처 : 노기남 대주교 화보집)


■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

최근 한국교회는 보편교회 안에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교회 세 번째 추기경이 서임되는 한편,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 결정과 함께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이 논의되고 있다. 또한 올 8월에는 대전교구에서 아시아청년대회를 개최할 만큼 외적, 내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반면, 한국교회의 교회문화유산 관리 시스템은 그 위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황청 문화재위원회는 1999년 이미 ‘교회문화유산의 목록과 도록’이 필요하다고 촉구했으며, 2001년 발표한 「교회 박물관의 사목적 기능」에서 “더 이상 일반 용도로 쓰이지 않는 중요한 예술적 역사적 세습 자산을 실질적으로 보존하고, 법률적 차원에서 보호해야 하며, 사목적 차원에서 가치를 증진하는 기능을 가진 교회 박물관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탈리아교회는 이에 앞선 1992년 「이탈리아 교회문화재 지침」을 발표했고, 필리핀교회 역시 「교회문화유산 보존에 관한 안내서」를 마련했다.

교황청을 비롯 세계 각 교회가 교회문화유산 보존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성미술품이 조형 언어로써 사목적인 측면에서도 역할이 큰 것은 물론 예술적, 역사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교회도 이제 문화유산 관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나설 때다.

정수경 교수는 “우리교회 작품들이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기록되고 보존될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더 이상 지우는 가톨릭미술사가 계속되지 않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가톨릭신문, 2014년 2월 23일,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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