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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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얌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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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562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131) 얌체족

 

 

Q. 저희 남편은 ‘무골호인’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착한 사람입니다. 험한 세상에 저렇게 착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어 결혼했는데, 여러 가지로 속상한 일이 많이 생겨서 고민입니다.

 

남편이 어질고 착한 것을 이용해 남편에게 감당하지 못할 부탁을 하거나 보증을 서달라고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 제 마음은 늘 조마조마합니다. 남편은 남들에게는 손 한 번 벌리지 못하면서도 다른 사람들 청을 들어주지 못하면 밤새도록 고민할 정도로 어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끔 수도자가 될 사람과 결혼을 잘못한 것이 아닐까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성당에서는 신부님들이나 신자분들에게 칭찬을 듣고 사는 남편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제 이기심 때문일까요? 답답한 마음에 묻습니다.

 

 

A. 사람 중에는 얌체족들이 있습니다. 자기 것은 안 쓰고 남의 것을 다 빼서 쓰려는 사람, ‘담배 한 개비 빌려 줘’ 하면서 자기 담배는 아끼는 사람, 돈 빌려갈 때는 손이 발이 되도록 부탁하다가 빌려 가고 난 후에는 오리발 내미는 사람 등등. 왜 이런 얌체족이 생기는 것일까요?

 

얌체족이 존재하는 것은 남편분과 같이 마음이 지나치게 착하고 어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 거절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 ‘들어줄 걸 괜히 거절했어’ 하고 후회하는 사람들…. 얌체족들은 이런 사람들의 착하고 어진 마음을 악용해서 미안한 마음, 심지어 죄책감을 부추겨 자기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입니다. 

 

“너하고 나하고 남이가?”, “그거 하나만 해주면 평생 은인으로 대할게”, “곱게 쓰고 돌려줄게”, “내가 너무 급해서 그래. 너밖에 없어서 부탁하는 거야”, “나를 못 믿어?”와 같은 말들로 마음이 어진 이들의 콤플렉스를 건드려 이익을 챙기려고 합니다. 행여 거절을 당하면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배신자”, “때문에 내 인생 종 쳤어” 등등의 말로 죄책감을 부추겨 결국은 무엇인가를 얻어내는 상습범들이 얌체족들입니다.

 

이러한 얌체족들 때문에 속병을 앓는 신자분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싫은 부탁, 거북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도 병이라고 합니다. 소위 ‘거절 불능증’ 혹은 ‘미안 과잉증’이라고 하는데 이런 증세는 사실 마음 깊은 곳의 쓸데없는 죄의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려면 죄책감이 필요합니다. 죄책감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인간 성장에 필요한 감정입니다. 만약 죄책감이 없다면 내적 성장도 없고 인생에서의 성장도 없습니다. 그럼 모든 죄의식이 다 중요하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밭에 밀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듯, 우리 마음에도 ‘건강한 죄의식’과 ‘병적 죄의식’이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따라서 건강한 신앙인이 되려면 이 두 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병적 죄의식은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닌데도 당사자가 그 일을 실제로 저지른 듯 죄의식을 느끼게 합니다. 또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마치 실제로 행동을 취한 듯 죄의식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 마음을 죄의식으로 오염시켜 비참하고 비현실적인, 그래서 늘 다른 사람에게 휘둘림을 당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이런 죄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마음을 어질게 먹고 누구에게나 선행을 베풀면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 인생을 좀 더 우아하고 품위 있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납니다. 지나치게 한쪽을 추구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심리적 균형을 잃어 윤리적으로 바른 삶인데도 현실적으로는 상처를 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병적 죄의식은 어린 시절 성장 과정에서 특정 행동에 지나친 꾸중이나 지적을 받는 잘못된 양육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잘못된 양육이 지나치게 예민하고 병적인 양심을 만들고, 그것이 지나친 죄의식을 만들어 생긴 부작용입니다.

 

이런 죄의식을 가진 분들은 우선 자신이 처음에 가진 의도를 점검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선한 의지로 한 것이라 판단되면, 쓸데없는 양심의 가책은 집어던져야 합니다. 그래야 편안하고 건강한 마음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얌체족들이 부탁할 때는 “싫다”는 말을 단호하게 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 마음이 불편해 싫다는 말을 좀처럼 하기 어려운 분들은 “생각해볼게” 하고 결정을 미루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대개 얌체족들은 끈기가 부족해 상대방 마음을 흔드는 데도 별 반응이 없으면 욕을 해대며사기칠 다른 대상을 찾으러 다닙니다. 마음 약한 남편에게 꼭 이 이야기를 전해주시고 자매님은 마음이 건강한 분이시니 자책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평화신문, 2011년 12월 18일,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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