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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경기북부지역 은총의 성지순례 동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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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8-28 ㅣ No.953

경기북부지역 교회 역사 돌아보는 교하순교자현양회 ‘은총의 성지순례’ 동행기


순교자 신앙여정 함께 걸으며 교구 내 성지·역사 다시 세운다

 

 

황사영 묘역.

 

 

의정부교구(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한국교회에서 가장 젊은 교구다. 2004년 설립된 이후 왕성한 사목활동으로 미래가 주목되는 교구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젊은 교구라고 해서 역사도 짧은 것은 아니다. 마재성지를 비롯, 부곡리성지(황사영 알레시오 묘), 을대리성지(남종삼 요한 성인 묘)와 양주관아 순교성지 등 한국교회가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성지들이 위치하고 있다. 의정부교구 교하순교자현양회(지도 최성우 신부)는 최근 ‘은총의 성지순례’를 마련, 신자들에게 경기북부 지역은 물론 한국교회의 역사를 알리고 있다. 신앙선조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들의 성지순례에 가톨릭신문이 동행했다.

 

지난 8월 4일, 두 번째 교하순교자 현양회 ‘은총의 성지순례’가 마련됐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야당맑은연못성당에서 출발해 부곡리성지(황사영 알레시오 묘), 을대리성지(남종삼 요한 성인 묘)와 양주관아 순교성지 등을 방문하는 코스다. 첫 번째 순례는 야당맑은연못본당 공동체와 교하 순교자현양회 봉사자를 대상으로 했던 반면 두 번째 순례부터는 교구민을 비롯한 신자들의 참여를 받는다. 이번 순례에는 교구 내 본당에서 신청한 40여 명의 참가자가 모였다. 오전 10시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곧바로 황사영 알렉시오 성인의 묘가 있는 부곡리성지로 출발한다.

 

 

외로운 황사영 성인의 묘

 

은총의 성지순례에는 교하순교자 현양회 지도 최성우 신부가 동행한다. 순례객들에게 교구 내 성지와 역사를 상세히 설명하기 위함이다. 출발과 함께 최 신부의 설명이 시작된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누군가 서소문에서 치명한 성인의 시신을 황씨 일가 땅으로 모시고 왔어요. 그리고 갑자기 묘가 생기면 의심할까 봐 봉분을 못 세우고 새까맣게 그을린 돌 7개를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 바닥에 깔아놓았어요.”

 

봉분도 없었던 황사영 성인 묘를 발굴한 것은 1980년대다.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하면서 봉분을 세웠지만 이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묘’만이 외롭게 서있다. 더욱이 묘비에는 황사영 성인의 세례명이 ‘알렉시오’로 알려진지 12년이 넘었지만 ‘알렉산델’로 새겨져 있어 씁쓸함을 더한다. 참가자들은 묘역에 도착해 성인을 기리며 주모경을 바쳤다.

 

 

우직하게 하느님을 향해 간 남종삼 성인의 묘

 

남종삼 묘역.

 

 

“남종삼 성인은 가마를 타고 들어간 치명자입니다. 남종삼 성인도 하루에 수만 번 생각이 바뀌었을 테지만 우직하게 하느님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우리도 그 길을 생각하며 한 신앙인의 여정을 되새기길 바랍니다.”

 

남종삼 요한 성인의 묘는 경기도 양주시 의령 남씨 가족 묘소에 안장돼 있다. 현재는 서울 길음동본당 묘원에 속해 있다. 부슬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순례객들은 최 신부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했다.

 

묘원에 도착한 후 현양회 봉사자들이 준비한 십자가의 길을 따라 묘소까지 올라갔다. 가족 묘소에 안장된 만큼 황사영 성인의 묘보다는 관리가 잘 되어 있었지만 안타까움은 여전하다. 103위 성인으로 시성되었지만 묘비에는 여전히 ‘복자’라고 남아있다.

 

최성우 신부는 “역사는 지우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세우는 것”이라며 “황사영, 남종삼 성인 묘에 제대로 된 묘비를 세우고 현재의 것은 잘 보관하고 싶다”고 말했다.

 

 

5명의 순교자 치명터 양주관아 순교성지

 

양주관아 순교성지.

 

 

350번 지방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약 1.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양주관아 순교성지는 홍성원 아오스딩, 김윤오 요한, 권 말다, 김 마리아, 박 서방 등 5명의 순교자가 치명한 곳이다. 이곳은 현재 양주시에서 복원을 하고 있다. 치명자들을 가둔 옥터는 밭으로 바뀌어 ‘옥터밭’으로 불리는 사유지가 돼 있어 터만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 목을 벤 은행나무와 피가 묻은 칼을 씻었다는 천(川)은 그대로 남아 있어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켜낸 신앙선조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순례 마지막에는 침묵 중에 묵주기도를 하며 관아 바로 옆 기당폭포로 향했다. 후텁지근한 날씨였지만 시원한 폭포 아래서 순례객들은 ‘은총의 성지순례’를 되새길 수 있었다.

 

김혜숙(요안나·의정부 대화본당) 씨는 “신부님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성지순례를 하니 모든 것이 의미 깊게 다가왔다”며 “또한 우리 교구 내 성지와 역사에 대해 바로 알고, 우리가 더 많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은총의 성지순례는 매달 첫주 목요일에 마련된다. 최성우 신부가 직접 설명하기 때문에 버스 한 대로 이동 가능한 40명 만을 선착순 접수한다. 순례비 2만 원.

 

※ 문의 031-947-1784

 

 

[인터뷰] ‘은총의 성지순례’ 기획한 최성우 신부


경기북부 신앙의 역사 복원에 앞장

 

 

교하순교자현양회 은총의 성지순례를 기획한 최성우 신부는 이번 순례가 한국교회와 경기북부 지역의 역사 복원과 재인식에 목적이 있다고 전했다.

 

 

“어제의 역사에서 진주를 찾고, 미래 세대에게 귀한 양식, 귀감이 되는 롤모델(role model)을 제시하는 것이 현대 신앙인의 의무입니다.”

 

교하순교자현양회 은총의 성지순례를 기획한 최성우 신부(여당맑은연못본당 주임)는 이번 순례의 목적은 한국교회와 경기북부 신앙의 역사를 복원하고, 재인식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최 신부는 경기북부지역은 서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신앙선조들의 기지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으로 인해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토착민들과 자료가 사라져 이 지역 역사는 기억 속에 묻혔다. 교구는 교회사연구소를 설립, 잊혀져간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앞장섰다. 2008년 열린 심포지엄도 이런 이유로 마련됐다.

 

최 신부도 1만 페이지가 넘는 자료를 읽어보고, 교구 관할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역사의 흔적을 찾았다. 최 신부는 “경기북부 지역이 신앙의 여명지로서 역할을 해 왔음을 알리고 싶다”며 “우리 교구가 갑자기 생긴 공동체가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온 역사를 알릴수록 교구민들의 자긍심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번 은총의 성지순례를 기획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순례는 황사영 알렉시오, 남종삼 요한 성인 묘지와 다섯 순교자가 치명한 양주관아 순교성지를 기본 코스로 한다. 특히 양주관아 순교성지는 이번 순례를 통해 그 위치를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양주관아에서 심문을 하고, 약 200년(현재 약 400여 년)된 은행나무에서 목을 벴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근처에 흐르는 천에서 칼을 닦고, 현재 유영초등학교 자리가 객사였다는 자료를 찾았죠. 현지를 가보니 치명성지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세 곳의 성지 모두 아직 정비가 돼 있는 상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이 순례할 수 있도록 코스를 마련한 것은 지금의 상황을 알리고,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함이다. 거기에 최 신부는 순례에 동행하며 전체 설명을 담당하고 있어, 신자들에게 더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해미성지도 지금은 그 지역 전체가 성지순례지로서 발전했지만 처음 발견했을 때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해요.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지역 주민들이 우리의 방문을 낯설어하지만 사람의 발길이 머물면 당연하게 받아들이겠죠. 지금 성지순례는 미래를 위한 준비 작업이라 하겠습니다.”

 

역사에 대한 성직자와 신자들의 관심을 호소하는 최 신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했다. 그는 기본 코스에 서소문성지와 체포지, 갈곡리 공소 등 변주 코스도 구성할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본 코스에 포함된 성지가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도록 관리하고 가꾸고 싶다고 했다. “교하순교자현양회를 발족해서 문화해설사, 성지해설사를 양성해서 성지순례를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신앙선조인 순교자들의 묘역을 관리할 생각이에요.”

 

최 신부는 매달 첫주 목요일 진행되는 성지순례에 참여하는 참가자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당부를 잊지 않았다.

 

“바람에 스쳐 간 이야기가 가슴에 태풍이 되어 돌아오면 좋겠어요. 성지순례 동안 삶의 체취 하나라도 붙잡아 오늘의 내 생활을 성찰하고 변화할 생각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톨릭신문, 2011년 8월 28일,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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