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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많은 은혜 받은 한국교회, 이제는 보은(報恩)의 교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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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12-05 ㅣ No.905

[허영엽 신부의 ‘나눔’] 많은 은혜 받은 한국교회, 이제는 보은(報恩)의 교회로

 

 

아주 오래전 오스트리아 비인 시내의 공원에서 고 차동엽 신부(1958~2019)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허 신부님! 여기 오스트리아도 한국전쟁 때 우리를 재정적으로 많이 도와준 나라라고 하던데, 혹시 아세요?

 

“아니요. 저는 한국전쟁 참전국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16개 나라라고 배운 것 같은데, 솔직히 오스트리아처럼 재정적으로 도움을 준 나라들을 몰랐다니 부끄럽네요. 오늘날까지도 한국 신학생들이 오스트리아에 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도 주면서 도와주니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독일에는 터키(지금은 튀르키예)에서 건너와 거리 청소나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한번은 터키 학생에게 저녁 초대를 받은 적이 있는데, 네 명쯤 살 수 있는 방 두 개에 어림잡아 20명은 같이 살더군요.”

 

“20명이나요?”

 

“네. 독일에 있는 터키분들은 이른바 3D 업종에서 일을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내가 아는 터키 친구도 학교가 끝나면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해서 본국 집으로 송금한대요. 그 돈으로 동생들이 학교를 다니고요. 예전 우리나라 큰 누나들 생각이 많이 났어요,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 공장에 취직해 먹을 것도 아껴가며 부모님께 송금했잖아요.”

 

“맞아요, 철모르는 이들은 공돌이 공순이 하며 놀리기도 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안 좋았겠어요.“

 

“그런데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터키군은 거의 자원입대하고, 한국전쟁에서 가장 열심히 싸웠다고 해요. 한국전쟁에 2만 명이 넘는 터키군이 참전했고, 892명이 전사했다고 해요. 중공군의 갑작스러운 참전으로 남쪽으로 계속 밀려나던 UN군이 최초로 승리한 전투도 터키군이 이루었다고 해요. 그리고 후퇴할 때도 고아들을 데리고 철수했다고 해요. 고아들을 놔두면 거의 죽을 것이 뻔하니까요. 터키는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위해 수원 지역에서 ‘앙카라 학교’를 지어 고아들을 보살피고 교육했는데, 이 학교는 약 10년간이나 지속되었다고 해요.”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재정적 지원을 해준 여러 나라들

 

실제로 한국 영화 ‘아일라, 전쟁의 딸’이 2018년 6월에 개봉되었는데 6.25 참전 병사였던 술래이만이 5살 한국인 고아를 보살피다가 헤어져 2010년 60년 만에 서울에서 재회한 실화에 바탕을 둔 감동적인 영화다. 그래서인지 터키 사람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

 

1999년 8월에 터키 서부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1만 8천 명이 죽고 20만 명의 이재민이 생기는 엄청난 재난에 터키를 돕자는 자발적 모금 운동이 벌어져 당시 23억 원이 모금되었고, 이 내용이 터키 전역에 방송되어 터키 국민이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허 신부님, 까치가 자신의 새끼를 구해준 선비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전래동화도 있듯이 동물들도 은혜를 갚는데 우리나라도 언젠가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도움받은 나라를 도울 날이 오겠죠?”

 

“우리가 살면서 사제로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더없는 보람이 될 것 같네요.”

 

30년도 훨씬 전에 오스트리아 비인 공원에서 차동엽 신부와 함께 나눈 이야기가 어제 일처럼 느껴진다. 대한민국은 정말 짧은 시간에 기적처럼 원조를 받은 나라에서 다른 나라에 원조를 하는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정진석 추기경님과 주교관에 같이 살 때 청주교구장 시절 원조를 부탁하러 독일에 있는 미시오(Missio) 본부를 방문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독일 교회는 국제 전교기구 미시오(Missio)를 통해 어려운 제3세계 국가와 지역 교회에 대한 구호 활동과 개발 사업, 정의, 평화, 생명 활동, 교육과 사목 프로젝트 지원 등 다양한 영역에서 막대한 재정적 후원을 오랫동안 전개해 왔다. 우리 한국교회의 많은 신부님, 신학생들도 독일 미시오의 장학금을 받아 공부했다.

 

정 추기경님 일행이 미시오 본부를 방문했을 때 마침 점심시간이라 문밖 공원 벤치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며 기다렸는데 얼굴에 스치는 독일 공원의 바람이 무척 차가워 만감이 교차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당시 한국교회는 너무 가난했고, 특히 자신이 맡은 청주교구는 외부의 도움 없이 신학생들을 유학 보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그래도 미래를 위해 꾸준히 신부님과 신학생들을 교육시키고, 외국 유학을 보내기 위해서는 미시오의 도움이 절실해 교구장이 직접 방문해서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한국전쟁에 도움 준 나라를 후원한 ‘정진석 추기경 선교후원회’

 

시간이 흘러 나는 ‘정진석 추기경 선교후원회’ 이사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정진석 추기경님은 자신의 힘이 닿는 데까지 어려운 나라의 선교를 돕는 일이 계속 이루어지기를 바랐고, 6.25 한국전쟁과 휴전 이후 한국을 지원했던 국가들에 작게나마 은혜를 갚았으면 좋겠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전쟁 이후 외국과 외국교회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폐허가 되었던 한국교회는 재건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휴전 후에도 외국에서 원조해 준 식량을 전국의 중요 성당에서 구호품과 함께 나누어 주는 것이 사제들의 중요업무였다고 한다. 성당에 가면 밀가루를 무료로 나누어 준다고 하니 성당을 찾는 일명 ‘밀가루 신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정진석 추기경님은 그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신 분으로, 받은 은혜를 망각하면 그것은 죄악이라고 자주 이야기하시고, 매일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도와준 외국교회를 기억하셨다.

 

추기경님의 유지를 이어 설립된 ‘정진석 추기경 선교후원회’는 최근에도 장인남 대주교님(현 네덜란드 교황청 대사)의 주선으로 큰 어려움에 처한 미얀마 교회를 소개받아 기부금을 전달했고, 지난봄 지진으로 큰 어려움에 처한 튀르키예에 서울카리따스를 통해 기부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정진석 추기경 선교후원회가 후원한 나라들이 공교롭게도 바티칸, 미안먀, 튀르키예, 대만, 필리핀 등 한국전쟁 때 직접 참전하고 의료, 재정지원을 했던 나라들이라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름도 생소한 대한민국을 위해 누군가의 금쪽같은 아들딸들이 이국땅에서 죽고, 다치면서 자유를 수호했던 것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하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날 때 아래의 나라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면 좋겠다.

 

* 6.25 한국전쟁 참전국, 전투부대 참전국 16개국 :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프랑스, 그리스, 튀르키예,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태국,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공화국,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 의료지원 6개국 : 인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이탈리아, 독일

 

* 재정․물자지원 38개국 : 바티칸, 미얀마, 캄보디아, 코스타리카, 쿠바, 에콰도르, 헝가리,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자메이카, 라이베리아, 멕시코, 파키스탄,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온두라스, 인도네시아, 이란, 레바논, 대만, 사우디아라비아, 베트남, 칠레, 도미니카공화국, 이집트,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파나마, 스위스, 시리아, 아이티, 모나코, 파라과이, 페루, 우루과이, 일본, 리히텐슈타인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12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정진석 추기경 선교후원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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