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1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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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화로 만난 하느님10: 만지고 보아야 믿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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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5-12 ㅣ No.636

[성화로 만난 하느님] (10) ‘만지고 보아야 믿는 믿음’


절망으로 닫힌 마음 열어 완전한 믿음으로 인도

 

 

예수께서는 영광스럽게 부활해 제자들과 함께 있다. 참으로 살아 숨을 쉬고 계셨다. 그러나 이것을 믿지 못하는 제자 토마스가 있었다. 토마스는 이 놀라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믿기 전에 실체적인 증거를 요구했다. 그는 직접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깨어난단 말인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토마스 앞에서 확인되는 순간이다.

 

치마 다 코넬리아노의 ‘토마스의 의심’, 1502~1504년경, 목판에 유채, 294×199.4㎝, 런던 내셔널갤러리.

 

 

의심의 손가락

 

성경에서는 토마스가 예수님의 옆구리 상처에 정말 손을 넣었는지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화가들은 ‘토마스의 의심’ 도상(圖像)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 표현하곤 한다. 예수님이 다른 한 손으로 직접 옷깃을 걷어 내는 장면이나 예수님이 자신의 옆구리 상처를 손으로 가리켜 보이는 장면, 그리고 예수님이 토마스의 손을 자신의 옆구리 상처 속으로 집어넣도록 잡아당기는 듯한 장면 등이다. 

 

르네상스 시기 베네치아 화파에 속한 치마 다 코넬리아노(Cima da Conegliano·1459년경~1517년경)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토마스에게 예수께서 가슴을 보여 주며, 토마스가 직접 옆구리 상처에 손을 넣도록 하는 장면을 그렸다. 코넬리아노는 베네치아 주의 포르토그루아로라는 도시의 성 토마스 데이 바투티 학교의 주문으로 성 프란치스코 성당 제대화를 베네치아 회화의 특징인 우아하고 밝은 색채와 특이한 풍경처리로 제작했다. 화가는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 미술의 특징 중 하나인 자연풍경을 배경으로 성경의 내용을 평범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나타냈다. 제대화는 아치형의 커다란 개선문 형태로 그림을 감싸고 있다.

 

방 중앙에 서 있는 예수님의 모습에는 화사한 빛이 온몸을 감싼 듯 부드러움과 우아함이 감돈다. 예수님의 흰색 수의는 죽음을 의미하지만, 개선문이 승리를 상징하는 것처럼 아치 형태 안 예수님은 부활의 영광과 승리를 보여 주고 있다. 예수님은 부활한 승리자의 모습으로 위풍당당하게 나타날 수도 있었지만, 매우 자애로운 표정으로 토마스와 마주하고 계신다. 

 

토마스의 손을 잡은 예수님은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옆구리에 난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보게 한다.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요한 20,27) 예수님의 손과 발등에는 십자가의 흔적인 못자국이 선명하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상처로 자신의 부활을 증명하며 믿도록 만드신다.

 

토마스는 부활한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왼쪽에 있는 토마스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듣고 급하게 확인하고 싶었는지 막 달려온 동작이다. 오른발을 제자리에 들여놓기도 전에 몸을 약간 굽혀 예수님의 상처에 손가락을 넣고 있다. 또 손가락을 예수님의 옆구리에 댄 채, 고개를 들고 예수님을 쳐다보고 있다. 그가 예수님의 상처에 손을 대긴 하지만 무언가 주저하는 동작과 표정은 그의 약하고 우유부단한 믿음과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를 나타낸다.

 

배경에 그려진 창문 너머 풍경과 천장은 이 공간이 실내라는 것을 알려 준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이 밝혀진 그날 밤, 예수님은 방에 모여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닫힌 문은 불신과 믿음의 부족, 더 나아가 닫혀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닫힌 문으로 들어오신다. 예수님은 직접 제자들에게 다가와 옆구리와 손의 상처로 제자들의 닫힌 문을 열어 그들이 절망과 불신에서 벗어나 완전한 믿음을 드러내게 하신다. 토마스가 부활한 예수님을 의심하며 확인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제자들도 토마스만큼이나 놀라고 진지한 표정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사랑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계신다. 제자들에게 평화와 완전한 믿음을 주기 위한 이런 사랑의 시선은 그들의 마음 깊은 곳까지 다다르게 될 것이다.

 

베노초 고촐리의 ‘성모 마리아의 허리띠’(일부), 1450~1452년, 목판에 템페라, 133×164㎝, 로마 바티칸 박물관.

 

 

의심의 눈

 

토마스는 동료 사도들이 부활한 스승의 모습을 봤다는 소식을 듣고 창문 너머에 보이는 언덕길을 따라 허겁지겁 달려왔을지도 모른다. 그는 예수님의 옆구리 상처에 손을 넣어 보고서야 예수님 부활에 대한 자신의 의혹을 거두고 부활을 받아들인다.

 

토마스는 성모 마리아가 하늘로 올려진 것도 의심했다. 13세기에 나온 성인전 「황금전설」을 보면 토마스는 사도들 가운데 성모 마리아의 임종 당시 맨 마지막에 도착했다. 성모 마리아는 이미 무덤으로 옮겨져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하늘로 올라간 상태였다. 이를 못 본 토마스는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때 성모 마리아의 옷에 둘러져 있던 깨끗한 허리띠가 그대로 토마스의 손에 떨어진다. 그는 비로소 성모 마리아의 몸과 영혼이 진실로 하늘로 올려졌음을 깨닫는다.

 

그래선지 ‘성모 승천’과 ‘성모 대관’ 도상에서 성모 마리아의 허리띠가 종종 토마스의 의심과 연결돼 등장하곤 한다. 성모 마리아는 의심하는 사도에게 자신의 영광스러운 승천을 증명하기 위해 허리띠를 내려주고 있다. 이처럼 토마스는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그 어떤 표징으로 자신의 믿음을 확인한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가톨릭신문, 2019년 5월 12일, 윤인복 교수(아기 예수의 데레사 ·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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