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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 시대의 신앙: 불(不),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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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4-22 ㅣ No.370

[과학 시대의 신앙] 불(不), 겸손

 

 

몇 년 전 “가톨릭 신자 절반이 교회를 떠난 이유는 과학 때문”이라는 미국 통계 자료를 보았다. 20세기 과학과 기술은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그래서 미신에 가까운 신앙에 자신의 인생을 걸 필요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과학 없는 종교, 종교 없는 과학

 

종교 내에서도 섣불리 과학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본전도 못 건질 거라는 생각이 팽배한 모양이다. 과학이나 기술에 관한 이야기는 아예 하지 않는다거나, 한다고 하더라도 부정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과학과 종교에 대하여, “과학 없는 종교는 맹신이요,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라고 하였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신앙과 과학은 진리를 향한 두 날개”라고 하였다.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주님’(6,200여 회)과 ‘하느님’(4,400여 회)이며, 그 밖에도 ‘지혜’(총 589회, 구약 522회, 신약 67회)와 ‘사랑’(총 581회, 구약 285회, 신약 296회)이 있다. ‘지혜’는 구약에 압도적으로 많으며, ‘사랑’의 비중은 신약에서 약간 높다.

 

구약 시대부터 현대 과학이 발전하기 전까지 자연 현상에 관한 설명을 신에게서 찾는 경향이 있었다. “모든 지혜는 주님에게서 오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다.”(집회 1,1)고 한 것처럼, 자연 현상을 지배하는 자연법칙까지도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을 믿었다. 하지만 이제 수많은 자연 현상을 설명하면서 인격신으로서의 하느님을 동원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필요 없게 된 것인가?

 

‘신앙과 이성’ 또는 ‘종교와 과학’이라고 대비하지만, 이는 모두 진리를 추구한다. 흔히 이성이나 과학은 ‘어떻게’(How)의 문제를 다루고, 신앙이나 종교는 더욱더 근본적인 존재론적인 문제, 곧 ‘왜’(Why)의 문제를 다룬다고 한다.

 

독일의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의 진단에 따르면 뉴턴 이후 현대 과학의 성공이 객관화될 수 있는 것만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 바람에, 존재론적인 문제가 과학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19세기 철학이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는가 하면, 20세기를 대표하는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그의 마지막 저서 「위대한 설계」 첫 장에서 “철학은 죽었다. 과학이 진리 추구의 횃불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철학까지도 죽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신학이나 신앙에 대해 호의적인 자세를 취할 것 같지는 않다.

 

 

무신, 이신, 유신 그리고 회의론자

 

오늘날의 과학자 절반 이상이 신이 없다고 믿는 ‘무신론자’(Atheist)라고 한다. 그 가운데서도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는 흔히 ‘전투적 무신론자’라고 불리는데, 모든 종교는 인류를 악으로 이끈다고 주장하며 종교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특히 미국의 911 테러 사건을 계기로 이슬람뿐 아니라 이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그리스도교에게도 공격의 화살을 돌린다.

 

다른 과학자도 상당수는 ‘이신론자’(deist)로서, 신을 창조주로 인정하지만, 우주와 인류의 진화에 더는 관여하지 않고 자연법칙에 맡겨 둔다고 여긴다. 스티븐 호킹은 무신론에 가까운 이신론자였고, 아인슈타인은 이신론자에 가까웠다. 많은 이가 아인슈타인은 ‘유신론자’(Theist)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인격적 주재자로서의 신을 부정하였다. 오히려 종교가 인격신을 포기해야 한다고 여겼다.

 

필자는 대학교 1학년 때 아인슈타인이 쓴 글을 읽고 상당 기간 고민했다. 그는 유다인이지만 어린 시절 천주교 교육 기관에서 배운 적이 있다. 그는 인간이 죽은 뒤 그 삶을 판결할 인격신이 있다고 믿지 않았고, 영원한 삶이라는 것은 인간의 욕심에 불과하며, 잠시 머무는 삶에서 우주의 신비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입자 물리학자로서 상당한 업적을 남기고, 교수직을 은퇴한 뒤 영국 성공회의 사제이자 신학자로서 활발히 저작 활동을 하는 존 폴킹혼 같은 사람도 있지만, 오늘날 인격신을 믿는 유신론자 과학자는 많지 않다.

 

미국을 중심으로 사이비 과학, 유사과학에 대한 고발과 계몽 활동을 하는 ‘회의론자’(Skeptics) 단체가 있다. 대표적인 회의론자로는 유명한 과학 저술가인 마틴 가드너가 있다. 그는 이신론을 넘어 유신론자이기는 하지만 종교 단체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다.

 

 

겸손해야 할 과학과 종교

 

미국의 많은 개신교회가 진화론에 반대하며 창조 과학을 주장하지만, 천주교회는 진화론을 상당한 과학 이론으로 받아들인다. 창조 과학자들은 창세기의 창조 과정의 서술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현대 과학이 밝힌 여러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곡하는 바람에 도킨스 등 무신론자 과학자들의 비웃음을 자초하였다.

 

일부 창조 과학자는 창조 과학을 계속 끌고 나가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되자 살짝 겉포장을 바꾸어 ‘지적 설계론’을 주장하였으나, 이 또한 사이비 과학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게놈 프로젝트’를 주도한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는 저서 「신의 언어」를 통하여,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 모두 잘못된 것이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처럼 진화론을 과학 이론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신의 섭리를 인정하는 ‘바이오로고스’(Biologos)를 주장하였다.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의 잘못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일시적인 주장에 묶어 놓으면, 그 주장이 무너질 때 우리의 신앙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천주교에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으니, 아무리 과학을 연구하더라도 그 과학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신앙 안에서 안심하고 열린 마음으로 마음껏 과학을 탐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단, 과학의 성과를 이용하는 응용기술의 경우에는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른 윤리적인 면을 고려해야 한다.

 

분명 20세기 과학은 인류에게 엄청난 풍요와 함께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가져왔다. 하지만 지난 호에서 이야기한 대로 ‘불확정성 원리’(양자 물리학), ‘불가 예측성’(카오스), ‘불완전성 정리’(괴델의 정리) 등 과학은 그 한계를 드러냈다.

 

이와 더불어 정치 · 사회 · 경제 분야에 큰 충격을 가져온 수학적 정리에도 이 ‘불가능성 정리’가 있다. 1971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케네스 애로가 1951년이 정리를 발표하며, 세 가지 이상의 선택지 가운데 각자의 선호도에 따라 투표로 결정할 때 합리적이고 공정한 투표 방법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여기서 ‘합리적’이고 ‘공정한’이라는 수식어에는 엄밀한 수학적 표현이 담겨 있다. 불가능성 정리는 ‘민주 제도에 대한 맹신’이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다. 인간이 ‘이성’이나 ‘과학’을 통해 엄청난 성취를 이룬 것도 사실이지만, 그 한계 또한 이 네 개의 ‘불’(不)이론으로 정리된다. 사실은 이보다 더 많은 한계가 있다. 이처럼 이성과 과학은 그 한계를 겸허히 드러낸다.

 

과학과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과 종교도 겸손해져야 한다. ‘겸손’이란 단어는 성경에서 37회 검색된다.

 

* 김재완 요한 세례자 – 고등과학원(KIAS) 계산과학부 교수로 양자 컴퓨터, 양자 암호, 양자 텔레포테이션 등을 연구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9년 4월호, 김재완 요한 세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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