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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질투(시기) (1) 질투(시기)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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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8-14 ㅣ No.857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질투(시기) (1) 질투(시기)란 무엇인가

 

 

악마가 리비아 사막을 지나다가 소수의 사람이 한 순례자를 몹시 괴롭히고 있는 곳에 오게 되었다. 그 순례자는 그들의 악한 제안을 쉽게 떨쳐 버렸다. 악마는 그들이 실패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좋은 수를 알려 주려고 앞으로 나왔다. “너무나 유치하게 행동하고 있잖아, 내가 해 보겠네.” 악마는 그 순례자에게 가서 속삭였다. 네 형제가 방금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었다.” 그 순간 순례자의 고요했던 얼굴은 악의에 찬 질투로 험악해졌다. 악마는 지켜보던 자들에게 말했다. “이게 바로 자네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방법이지.” - 고든 맥도널드의 「영적인 열정을 회복하라」 중에서

 

 

질투의 자화상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순간을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성공 소식에 잠시 말문이 막혔던 순간이나 타인의 기쁜 일을 함께 기뻐해 주지 못했던 순간, 남의 좋은 일에 마지못해 축하 인사를 건네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내가 그렇게 되지 못한 것에 마음이 불편했던 순간, 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이가 실패하기를 바랐던 순간, 질투하는 마음을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은밀히 포장하거나 질투하는 내 자신이 형편없이 느껴져 부끄러웠던 순간 말이다.

 

일본의 작가 츠지 히토나리는 「질투의 향기」에서 인간을 ‘질투하는 동물’이라고 표현하면서 아이나 어른이나,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어떤 성인군자도 시기나 질투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반려 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동물도 질투(시기)한다.

 

2014년 미국의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는 반려견들을 대상으로 무엇에 질투(시기)하고 그 반응이 어떠한지를 연구했다. 흥미롭게도 반려견들에게서 인간의 질투(시기)와 거의 같은 모습이 관찰되었다.

 

질투(시기)의 대상을 발로 밀어내고, 주인의 관심을 끌려는 행동을 하거나 신발을 물어뜯는 등 분노의 모습을 보이며 질투(시기)의 대상과 주인 사이에 끼어들기도 하고, 급기야 우울증까지도 걸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질투(시기)하며 살아왔다. 부모님께 좀 더 사랑받는 형제에게, 공부를 잘하고 선생님들께 칭찬받는 친구에게, 좋은 직장에 취직한 아들을 둔 엄마들에게, 좋은 차에 명품 옷을 누리는 친구나 나보다 능력 있는 동료에게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질투(시기)에서 자유로운가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면서 부정적인 자신의 언행을 멈추도록 특별한 은총을 청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발견되는 그 모습 앞에서 좌절하기도 한다. 심지어 질투(시기)의 대상이 사제와 수도자나 열심인 교우들에게로 향하고, 방법 또한 더 교묘해짐을 느끼면서 큰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동시에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질투(시기)를 받기도 한다. 첫 번째로 받는 질투(시기)는 동료 신자들에게서 온다. 이를테면 본당 공동체에서 봉사에 열심인 이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지적하거나 미워하기도 한다. 이러한 지적과 미움은 대부분 질투(시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받는 질투(시기)는 비그리스도인에게서 온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덕과 가치, 평화로운 삶에 대한 부러움에서 기인한다.

 

이따금 비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이런 모습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방해하면서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며 연륜이 쌓여도 질투(시기)의 감정이 올라오거나 누군가의 질투(시기)를 받을 때 그에 반응하는 방법이 달라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제인 나 또한 질투(시기)를 하기도, 받기도 한다. 또 나로 말미암아 서로 질투(시기)하는 모습도 본다. 그럴 때면 “사제로 말미암아 질투(시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찌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다.”고 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이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사제뿐만 아니라 수도자와 공동체의 봉사자도 자신들의 질투(시기)를 잘 다스려야 하며, 자신도 다른 이들로부터 질투(시기)받는 사람임을 알아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질투(시기)는 한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파괴하기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질투(시기)로 말미암은 공동체의 분열을 특별히 강조하셨다. 이를 ‘악마의 무기’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독으로 공동체를 오염시켜 분열을 일으킨다고 말씀하셨다.

 

 

용어의 문제

 

칠죄종에서 언급되는 ‘Invidia’는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여 미워하는 감정으로 다른 사람의 선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 적의 그리고 다른 사람의 선을 마치 자기의 악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는 하느님께서 주신 최고의 계명인 ‘사랑’에 위배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칠죄종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악한 생각’(logismoi)의 여덟 가지 목록에는 ‘Invidia’가 빠져 있다. 이 항목은 그레고리오 1세 교황님이 후대에 첨가하신 것이다. 아마도 ‘Invidia’는 초기 수도 생활을 중심으로 성찰한 ‘악한 생각’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확장하면서 점차로 그 중요성이 강조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Invidia’를 ‘시기’ 또는 ‘질투’로 번역하면서 함께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 둘의 의미는 약간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시기’(phtbonos)는 상대방이 잘되거나 또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상대가 가졌을 때 느끼는 좌절감과 미움인 반면, ‘질투’(zelos)는 상대방이 가진 것을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해 슬퍼하고 속상해 하는 것이다(「수사학」, 1387B, 1388A 참조).

 

쉽게 말해, 시기는 ‘타인이 가진 것을 미워하는 것’이고, 질투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슬퍼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기(envy)는 그 장점을 찾기 어렵지만 질투(jealousy)는 잘만 조절하면 좋은 동기로 승화시킬 수 있다.

 

이를테면 질투는 성장하는 데 좋은 동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선생님의 사랑을 받는 학생을 질투하여 더욱 열심히 공부할 수도 있고, 일 잘하는 직장 동료 때문에 업무에 더욱 매진하며, 온유한 사람의 모습을 질투하여 자신도 온유함을 지니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실제로 라이벌 관계에서 질투로 자신을 더 성장시킨 경우도 많다.

 

하지만 질투 또한 부정적이거나 위험한 태도와 만나게 되면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범죄의 20%가 질투 때문에 일어나고, 이혼한 부부의 30%는 질투가 원인이라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부유층이나 권력을 지닌 이들에 대한 질투가 증오의 감정으로 이어져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는 경우가 이따금씩 소개된다.

 

최근에는 질투로 말미암은 ‘스토킹’이나 ‘데이트 폭력’ 등이 사회적인 문제로도 이어지고 있다.

 

초기 교회의 교부들은 칠죄종을 성찰하면서 우리를 죄로 이끄는 부정적인 측면을 더 강조하려고 ‘시기’(envy)의 어원격인 ‘Invidia’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성경, 교부들의 저술, 현대 심리학을 비롯한 많은 인문 서적과 일반 생활 안에서는 시기와 질투를 크게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필자 또한 시기와 질투를 특별히 구분해야 할 경우가 아니라면 그 둘을 같은 의미로 보면서 이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 김인호 루카 - 대전교구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대학원장 겸 교무처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저서로는 「신앙도 레슨이 필요해」, 「거룩한 독서 쉽게 따라하기」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성찰」, 「너무 빨리 용서하지 마라」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8년 8월호, 김인호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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