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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앙 선조를 움직인 한 권의 책: 한국 최초의 천주교 교리서, 정약종의 주교요지(主敎要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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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5-06 ㅣ No.966

[신앙 선조를 움직인 한 권의 책] 한국 최초의 천주교 교리서, 정약종의 『주교요지(主敎要旨)』

 

 

정약종의 생애와 『주교요지』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 1760-1801년)은 조선 정조 때의 학자로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의 셋째 형이다. 그는 1794년 말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여 세운 평신도들의 교리연구 및 전교단체인 명도회(明道會) 회장으로서 천주교회를 위해 맹활약하였고,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로써 일생을 마쳤다.

 

성격이 곧고 총명하며 탐구욕이 강했던 정약종은 다른 형제들이 한문서학서를 읽고 바로 영세 입교한 것과 달리 뒤늦게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정약종의 영세 입교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01년 의금부 심문 과정에서 그는 27세 되던 1786년 3월에 이르러서야 둘째 형인 약전에게 천주교에 대해 듣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그 후 그는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고 권일신을 대부로 삼았다.

 

초기 한국천주교회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정약종은 한국 최초의 가톨릭 신학자라 할 수 있으며, 명도회 회장으로 전교 활동을 하면서 한국천주교회 최초의 한글로 된 교리서 『주교요지』를 저술하였다. 이 책의 저술 시기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주문모 신부의 인준 시기를 볼 때 그가 명도회 회장으로 임명된 후부터 순교하기 전 사이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정약종은 한문을 읽지 못하는 하층민들이 천주교 교리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명도회 회장으로서 더 많은 민중에게 천주교의 교리를 알려 전교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글로 된 교리서가 필요했을 것이다. 여기에 한글을 모르는 주문모 신부의 권유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정약종은 천주교의 여러 책들을 인용하고 자신의 의견을 보태어 이 책을 아주 명백하고 이해하기 쉽게 썼다. 그래서 부녀자뿐 아니라 어린아이들까지도 이 책을 펴보기만 하면 천주교 교리를 훤히 알 수 있었고, 의심스럽거나 모호한 데가 없었으며, 교리에 대해 미심쩍어 하던 사람들도 이 책을 읽고 깨우친 바가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주교요지』는 최창현이 엮은 『성경직해(聖經直解)』와 함께 초기 조선교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한글교리서이며, 유교 중심의 한국사상사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정표와 같은 책이다.

 

 

『주교요지』의 구성과 내용

 

1) 구성

 

『주교요지』는 상하 두 편으로 되어 있으며, 모두 43과로 구성된다. 각 과마다 제목을 달아놓았는데, 그 제목만 보아도 이 책의 내용과 이 책이 쓰인 당시의 신앙적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상편 32과 가운데 제1과부터 제14과에서는 천주의 존재 및 천지창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제15과부터 제17과에서는 당시 민간신앙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제18과부터 제26과에서는 당시 민중들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 내린 불교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으며, 제27과에서는 잡귀신을 섬기는 미신 행위를 비판하고 있다. 제28과부터 제32과에서는 천주교의 천당과 지옥에 대해 논하고 있다.

 

하편은 제33과에서 제43과까지 모두 11과로 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앞의 아홉 개 과에서는 천지창조에서 시작하여 예수의 탄생과 십자가상의 죽음, 부활과 승천에 이르는 신구약성경의 기본 내용을 정리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두 개 과에는 천주의 가르침을 열심히 배워 실천하라는 저자의 간곡한 당부를 적어놓았다.

 

2) 내용

 

상편: 창조주이신 천주의 존재와 천지창조 / 민간신앙 / 불교와 잡신 비판 / 천당과 지옥

 

하편: 천지창조 / 예수의 탄생 / 예수의 신성과 인성 / 예수의 활동과 기적과 죽음의 의미 / 예수의 수난 / 예수의 부활과 승천 / 최후의 심판 / 예수의 탄생과 수난의 의미 / 신자들에 대한 당부

 

 

『주교요지』가 한국천주교회사에서 갖는 의미

 

『주교요지』가 한국천주교회의 역사에서 지니는 의미를 생각할 때, 이 책이 한글로 쓰였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이 저술된 1790년대 대부분의 책들은 한문으로 된 것이었다. 이러한 풍토 속에서 한국천주교회 최초의 교리서가 한글로 쓰였다는 것은 『주교요지』가 당시 지배계층이었던 양반계층 이외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었음을 말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주교요지』는 조선 왕조 역사상 민중을 대상으로 쓰인 최초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며, 그 부활로 인해 우리는 모든 의인들이 다시 밝은 세상에 태어나리라는 희망을 본다. 이 희망은 양반 지식인이 아닌 민중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임을 깊이 인식하였기에 정약종은 이 책을 한문이 아닌 한글로 저술했을 것이다. 한 세기에 걸친 모진 박해 속에서 수천 명의 신자들이 순교로써 이 새로운 신앙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없던 당시 『주교요지』는 천주교의 가르침을 많은 민중들에게 전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주교요지』는 1932년 활판본으로 개정되기까지 신자들 사이에서 필사되어 널리 읽히며 10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국교회의 교리서 역할을 했다. 이 책은 조선의 입장에서 서양의 종교를 이해하고 믿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며, 이 믿음을 민중에게 알리고자 한 초기 교회 신자들의 전교활동을 생생히 반영하였다. 신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확고한 믿음을 갖도록 해준 『주교요지』의 가르침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 땅의 평신도들에게 소중한 신앙의 씨앗이 될 것이다. 선조들의 신앙을 배우고자 하는 평신도들에게 『주교요지』는 여전히 살아 있는 유익한 교리서이다.

 

 

참고 문헌

 

• 정약종과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교리서 『주교요지』 (한국순교자연구소)

• 인물중심의 한국천주교회사 정약종의 『주교요지』 (정두희,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 정약종 성조의 『주교요지』 (김레지나, 다음블로그)

 

[평신도, 2018년 봄호(VOL.58), 글 · 정리 이귀련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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