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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노동사목] 노동의 이유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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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9-17 ㅣ No.1029

[시대의 징표] 노동의 이유를 찾아서

 

 

노동의 조건과 삶의 질

 

자살 공화국 대한민국에 요사이 불운한 죽음의 원인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바로 ‘과로 자살’이다. 과도한 업무에 따른 돌연사, 곧 ‘과로사’가 40-50대 죽음의 원인에서 순위 3-4위를 차지한 지 오래다. 이미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 나머지 자살을 택한 사람이 적지 않지만, 개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치부되면서 관심을 받지 못했다.

 

거의 날마다 이어지는 야근과 실적 강요에 따른 지속적인 밤샘 근무, 쉴 새 없이 촉박하게 움직여야 하는 강도 높은 업무, 휴가도 챙길 수 없는 업무.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가운데 노동 시간이 가장 길며, 노동 강도도 매우 높은 나라다. 삶의 질이 OECD 주요 20개 회원국 가운데 하위권을 맴도는 점도 놀랍지 않다.

 

사회의 한쪽에선 과로사와 과로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다른 한쪽에선 실업으로 삶을 비관한다. 과로 자살을 심각하게 숙고해야 하는 까닭은 바로 ‘일자리와 여가의 양극화’를 발생시키는 ‘일자리와 여가의 불균형 분배’라는 사회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업과 비정규직이 증가하면서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과제는 국가의 사활을 건 문제가 되었다.

 

자기 부양조차 할 수 없는 참담한 지경에서 노동의 조건은 우선적 문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일은 존엄한 삶을 영위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아니라, 사람의 원초적 본능인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

 

 

우리가 일하는 까닭은

 

사람들 대부분은 먹고살려면 일을 해야 한다. 자유주의 경제학은 사람의 경제 활동 동기를 ‘사적 이익 추구’라고 말했다. 탐욕스러운 자본가가 아니라면 사적 이익 추구는 행복의 조건일 수 있다. 지난 7월 우리 사회는 최저 임금을 시급 7,530원으로 올렸다. 2000년 이후 16.4%라는 최고치 인상률이다.

 

그러나 어떤 방송사는 “맥버거와 냉면” 사이로 설명했다. 맥도널드 햄버거는 사 먹을 수 있어도 냉면 한 그릇 사 먹을 돈은 안 된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을 생각하면 이 소득으로 현재와 미래의 행복을 담보할 수 없다. 사적 이익 추구는커녕 나날이 발전해 가는 이 사회의 풍요로움에서 소외되기 십상이다.

 

유다 전통에서 노동은 하느님께 받은 형벌이다. 고대 유다인들도 노동을 고된 작업이라 생각했다. 중세까지도 노동은 천한 계급의 몫이었다. 다른 시각으로 이해된 때는 산업 혁명을 전후해서다. 프로테스탄티즘은 노동을 근검절약하는 생활태도와 함께 구원의 징표로 여겼다.

 

가톨릭교회는 노동을 인간학적 · 윤리학적으로 재조명했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노동하는 인간」(1981년)은 노동에 대한 신학적 · 윤리적 관점을 확립했다. 이에 따라 가톨릭 사회 윤리는 노동의 인간학적 욕구를 네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생존을 위한 욕구, 둘째, 사회 문화적 · 역사적 욕구, 셋째, 인격과 자유 실현의 욕구, 넷째, 하느님께 부여받은 사명을 실현하려는 욕구다. 노동은 육체적, 심리적, 사회 문화적 · 역사적 · 초월적인 사람의 다차원성을 포괄한다. 가톨릭교회가 제시하는 노동관은 우리가 일을 해야 하는 까닭을, 그리고 행복할 수 있는 노동의 물적·질적 조건을 제시한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행복한 노동의 조건

 

인류는 이미 4차 산업 혁명에 돌입했다. 4차 산업 혁명은 인공 지능 기술과 사물 인터넷, 빅 데이터 등 정보 통신 기술(ICT)과의 융합을 통해 생산성을 급격히 높이고 제품과 서비스를 지능화시킨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경제와 사회 전반에 혁신적 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질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 한국 국민의 삶의 질은 지금 우리 사회 경제 성장도 따라가지 못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06년에 1인당 국민 소득 2만 달러를 돌파했고, 2018-2021년에 3만 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런데도 노동 소득 분배율 하락, 노동의 불안정성, 더할 나위 없이 하락한 노동의 지위 등, 이른바 ‘노동의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

 

제러미 리프킨은 ‘노동 사회의 종말’을 말한다. 노동의 한계 상황에 더해 4차 산업 혁명은 인간 노동을 최첨단 기계 기술로 대체할 것이다. 종말을 고하는 노동 사회에 행복할 수 있는 노동의 조건은 무엇일까? 제임스 퍼거슨이 언급한 대로 이제야말로 ‘분배 정치 시대’로 진입해야 한다. 고도의 생산력이 가져오는 부(富)를 공정하게 재분배할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이 시대의 과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제한된 일과 여가도 나누어야 한다.

 

과로 자살을 무릅쓰면서까지 일자리 나눔을 반대한다면, 그 이유는 임금 때문일 것이다. 생계를 위한 충분한 소득이 되지 못할 테니 말이다. 일자리는 사회의 축적된 부와 함께 분배될 때 생존의 위협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로운 노동과 풍요로움, 그리고 충분한 여가를 누리는 행복한 노동의 조건이 될 것이다.

 

 

분배의 혁명을 동반해야

 

독일의 기본 소득론자 괴츠 베르너는 노동이 생존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의 존엄과 생존이 불가침적 권리이면, 이 권리 위에 성립할 수 있는 권리는 그 어떤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산업 사회에서 노동은 생존을 위한 소득을 얻고자 강제되었다. 우리나라 헌법도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갖는다.”(32조 1항)고 명시한다. 노동권은 나라마다 해석이 다르긴 하나, 한국은 생존권적 기본권으로서 노동권을 인정한다.

 

인간의 존엄과 생존이 무조건적인 것이라면 물질적 기반에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 존엄과 생존에 대한 권리가 노동의 권리보다 우선할 때, 사람은 노동하기 위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 4차 산업 혁명을 통해 인류가 더욱 편리한 생활환경과 풍요로운 부를 축적할 수 있다면, 이제 그 모든 것은 노동의 대가에 따라 분배되어서는 안 된다.

 

최첨단 과학 기술과 자연 · 인간 자원을 활용한 결과는 모든 사람에게 삶의 형편에 따라 필요한 만큼 소유할 수 있게 하는 분배 체제를 갖춰야 한다. 이는 복지를 강화하는 방안이 될 수도 있고, 1인당 국민 소득을 공평한 방식에 따라 국민에게 분배하는 방안이 될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4차 산업 혁명은 분배의 혁명을 동반해야 한다. 그러면 먹고살기 위한 노동의 이유 대신 다른 이유를 찾게 될 것이다. 이는 참살이(웰빙)를 향한 첫걸음이며 전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노동의 조건을 마중하는 길이 될 것이다.

 

* 심현주 율리아나 -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가톨릭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교에서 가톨릭 신학과 사회윤리를 전공하였다.

 

[경향잡지, 2017년 9월호, 심현주 율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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