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강론자료

2016-0314.....사순 제5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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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3-13 ㅣ No.2009

사순 제5주간 월요일

다니엘 13,1-9.15-17.19-30.33-62(수산나이야기)        요한 8,12-20(다해 후)

2016. 3. 14. 이태원

주제 : 사람은 얼마나 말을 옳게 할 수 있는가?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런 말은 언제 쓸까요? 내 앞에서 뭔가 말하는 사람이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은 잘못된 말을 할 때, 그에 대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말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있습니다. 이런 소리를 듣는 사람이 아주 빠른 시간에 삶의 태도를 바꾸어서, 사실에 근거한 올바른 말을 하기는 할까요?

 

욕심이 사람의 눈을 가리면, 사람은 거짓말을 하게 돼 있습니다. 그 욕심이라는 것이 반드시 돈과 연결돼 있지 않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거짓말을 하는 때가 있기는 합니다만,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의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이러면 될까요?

 

적은 것이든, 많은 것이든 거짓을 말한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타협하는 표현을 생각해냅니다. ‘내가 하는 말은 그 사람의 이익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 선의의 거짓말이 있을까요? 확실한 대답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 표현이 올바르다고 하려면 신중한 잣대가 필요할 것입니다.

 

잘났다고 자랑하던 사람들 앞에서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을 두둔했던, 예수님은 곤경에 빠집니다. 한 사람을 죽음의 위협에서 구해주려고 하다가 조직적인 반대에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발을 뻗고 자고 싶었다면, ‘너희들이 아는 대로, 또 너희들이 하고 실은 대로 그 죄를 지었다고 하는 그 여인을 너희들 마음대로 대하라(!)’고 하면 끝났을 일이지만, 한 여인을 구해준 것으로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는 일이 모두 다 곤경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까요? 내가 올바른 길을 안다고 하고, 그 길대로 따라 살았는데, 세상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이렇게 해도 아쉬운 마음이 들고, 저렇게 해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질문입니다.

 

수산나에 관한 긴 독서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망하는지도 모르게 욕심에 눈이 멀어, 죄가 없는 사람을 죽이려고 했던 세상의 심판관, 두 원로는 자기들이 거짓을 증언한 그대로 벌을 받습니다. 그렇게 높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세상을 안타깝다고 해봐야 달라질 일은 없지만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사람의 삶에는 언제부터 이러한 악이 자리를 잡게 됐을까요? 그리고 이 악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하는 얘기를 듣는 사람이 내가 움직여야 할 방법을 모른다고 하면 그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남에게서 올바른 삶의 방법에 대해서 듣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대로 정확하게 살아서, 세상이 하느님의 나라로 바뀌는 데에 협조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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