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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장 바니에와 오늘날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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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4-29 ㅣ No.318

[현대의 영성] 장 바니에와 오늘날의 공동체

 

 

2008년 9월 10일, 파리 북쪽에서 한 시간 내지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마을 트로슬리 브뢰이의 작은 집에서는 노래와 웃음이 가득 흘러 넘쳤다.

 

‘라르쉬’(‘노아의 방주’라는 뜻) 공동체를 설립한 장 바니에의 80회 생일을 기념하여, 공동체 식구들이 참여한 가운데 매우 특별한 파티가 열렸기 때문이다.

 

그날 장 바니에는 의미 있는 책을 선물로 받았다. 메리놀외방전교회가 운영하는 오르비스 출판사에서 현대의 영적 지도자들을 골라 시리즈로 출판하였는데, 장 바니에의 책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이 책은 장 바니에의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깨닫게 한 것들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 의해 치유받는다. 만일 우리가 그들과 함께 관계를 맺고 그 속으로 들어간다면 우리는 변화할 것이다. 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그들은 우리 세계에 주는 선물을 가지고 있다. … 그들은 우리를 평화와 일치의 공동체 안에서 함께하자고 부른다.”

 

한 평론가는 그의 책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의 책은 세계를 변화시키고 지역공동체를 변화시키고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며 예수님의 삶을 깨닫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장 바니에의 글들은 억지로 동의하게 하거나 논쟁하기보다는 묵상으로 초대하는 산문 형식으로 쓰여진다.”

 

 

해군 장교에서 장애인과 함께하는 삶으로

 

장 바니에는 1928년 9월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나중에 캐나다의 제19대 총독이 된 폴린느 아르쉐와 조르주 바니에의 다섯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는 영국의 다트머스 해군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에 장교로 임명되었지만, 1950년 군생활을 그만두었다. 어머니의 영적 지도자였던 파리 오 비브(Eau Vive) 공동체의 토마 필립 신부를 만난 뒤, 한때는 성직자가 되려는 마음으로 신학, 철학, 라틴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1963년에 토마 신부는 트로슬리의 발 플뢰리(Val Fleuri)에서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작은 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다. 장 바니에가 그곳을 방문하자 토마 신부는 무엇인가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1964년 8월 4일에 장 바니에는 트로슬리 브뢰이에 작은 집을 사서 개조해 지적 장애를 가진 라파엘 시미와 필립 소를 맞이했다.

 

“나는 라파엘과 필립을 맞이한다는 것이 돌이킬 수 없는 행동임을 알았다. 나는 우리 사이에 서약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그들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를 만들어 그들에게 가족을 만들어주고 그들이 있을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주어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An Ark for the Poor, Novalis, 1995, 18쪽).

 

 

‘라르쉬’와 ‘믿음과 빛’ 공동체를 시작하다

 

몇 년 뒤에 장 바니에는 캐나다에서 피정지도를 하였고, 이러한 피정들이 결국에는 토론토 근교에 라르쉬 데이브레이크(Daybreak)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라르쉬 공동체는 지금 35개국에 설립되어 있다.

 

1971년에 장 바니에와 마리-엘렌느 마티유는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그들의 부모들과 친구들을 위해서 루르드 성지순례를 추진했다. “기도의 장소인 성지에서 함께 걷고 함께 여행하는 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나 그들의 부모, 친구들뿐만 아니라 특별히 젊은 사람, 모든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 … 14개국에서 만 이천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많은 부모가 그들이 혼자가 아니며 그들의 아들과 딸이 수치스러운 대상이 아니고 그들이 함께 축제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많은 젊은이가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위해 서약을 하는 시간이 모두 기쁨의 순간이자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이었다”(앞의 책, 33쪽).

 

이것이 라르쉬의 사촌 같은 ‘믿음과 빛’이라는 새로운 공동체 운동의 시작이었다.

 

“믿음과 빛 공동체는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부모와 친구들이 함께하는 것이며, 규칙적으로 만나서 서로 있는 모습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환영해 준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하늘나라의 표지가 되는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원한다”(앞의 책, 33-34쪽).

 

 

작은 일들을 통하여 사랑이 일어나고

 

‘라르쉬’와 ‘믿음과 빛’ 공동체는 성공 · 독립 · 강함 · 능력 · 경쟁의 세계와 약함 · 상처 · 단순함 · 기쁨의 세계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한다. 이러한 공동체들의 도전은 재능이 있는 사람이나 강한 사람이나 가난하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이나 함께하고 일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들 안에서 사람들은 상처에 귀기울이고 서로 도와준다. 왜냐하면 배려, 자애로움, 동정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새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장 바니에는 키가 193cm로 무척 크다. 작은 일들을 통하여 사랑이 일어나는데, 그는 말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들으려고 습관적으로 몸을 구부린다. 낮아진다는 것은 고통과 죽음의 인간이 되시어 신성함이 발가벗겨지는 수모를 당하신 예수님처럼 겸손해지는 것이다.

 

라르쉬와 믿음과 빛 공동체에서 겸손과 낮아지는 것의 의식적 표현은 발 씻김 예절이다. 이 의식은 종종 공동체 모임에서 재현된다. 그것은 우리 관계를 특징짓는 섬김과 존중으로 사람들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성공한 사업가가 어느 날 장 바니에를 보러 왔다. 그는 외롭고 무의미하고 바쁜 일상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다운증후군 젊은이가 방으로 들어왔고, 늘 하듯 장 바니에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고 나서 사업가에게도 악수하고 나갔다. 사업가는 “참,  안됐지요?” 하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불행과 편견 때문에 공동체의 단순성과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상처받고 부서지기 쉬운 사람들과 함께

 

신학자 마이클 다우니는 “상처받기 쉽고 약한 것이 강하다.”는 장 바니에의 영성을 깊이 연구했다. “장 바니에는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경험하고 사랑하고, 상처받고 부서지기 쉬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경험을 통해서 하느님과 인간성의 진실을 배웠다. 성령이 우리 마음을 통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각 사람은 유일하고 거룩하다.”

 

2002년 어떤 인터뷰 때 장바니에는 우리의 인간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한 어린 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겠습니다. … 그는 세 살 때 다리가 마비되기 시작하여 점차 온 몸이 마비되었고, 다섯 살 아이의 나이로 몇 주 전에 죽었습니다. 그 아이가 죽기 전에 어머니는 그 옆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린 소년이 ‘울지 마세요, 엄마!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아직 마비되지 않았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소년은 믿지 못할 정도로 성숙합니다. 성숙하다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 울지 않는 것이며,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장 바니에는 그의 책 “공동체와 성장”(Community and Growth, 성바오로출판사)에서 자신의 생각들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헨리 나웬 신부도 장 바니에와 라르쉬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라르쉬에 들어가게 된 이야기를 “새벽으로 가는 길”(The Road to Daybreak, 성바오로출판사)에서 다루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 “아담”(Adam)은, 말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는 중복장애가 있는 아담 아네트를 통해 예수님의 삶을 조명한 책으로 라르쉬의 영성을 잘 보여준다.

 

 

한국의 공동체를 위하여

 

라르쉬와 믿음과 빛 공동체는 한국에 많은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러한 공동체가 성장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국제 공동체이기 때문에 적어도 몇몇 구성원들은 국제 모임에 참석해야 하고 국제 언어로 연락과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보통은 영어를 사용한다. 그들은 또한 해외 여행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한국에서 라르쉬와 믿음과 빛 공동체의 또 다른 도전은 초교파적이라는 것이다. 초교파적 모임에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라르쉬와 믿음과 빛 공동체 책임자는 원칙적으로 장 바니에처럼 평신도이다. 사제들과 수도자들의 참여를 환영하지만, 그들은 책임자가 될 수 없다. 이것은 신부나 목사, 그리고 수도자들이 자연스럽게 책임자가 되는 한국에서는 드문 경우이다.

 

라르쉬나 믿음과 빛 공동체에서는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핵심 구성원인데 반해, 한국의 사회복지에서는 구성원을 수동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일반적 사회복지 형태는 삶의 질을 우선시하기보다는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프로그램들을 보여준다.

 

라르쉬와 믿음과 빛 공동체는 소규모로, 효율적 서비스보다는 각 구성원의 행복을 강조한다. 라르쉬와 믿음과 빛 공동체는 한국의 다른 공동체를 위하여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믿음과 빛 기도

(라르쉬와 ‘믿음과 빛’ 영성은 각 공동체의 기도 안에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주님, 당신의 아버지시며

우리의 아버지이신

성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

당신은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치러 오셨습니다.

당신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주시어

전쟁과 분열이 만연한 이 세상에서

우리를 평화와 일치의 도구로 삼으소서.

“믿음과 빛” 공동체 안에서

당신을 따르도록 불러주신 주님,

우리는 “예.”라고 말하기 원합니다.

이 큰 가족 안에서

고통과 어려움, 기쁨과 희망을 나누는

사랑의 계약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상처와 나약함을 받아들임으로써

당신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모든 형제와 자매 안에서

특히 가장 나약한 사람들 안에서

당신을 찾을 수 있도록 가르쳐주소서.

복음 말씀대로 당신을 따르도록 가르쳐주소서.

주님, 당신의 어머니시며

당신을 처음으로 기쁘게 모셨던

마리아께 의탁합니다.

저희도 공동체 안에서 우리 마음 안에

당신을 모실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세상에서 못 박히신 십자가 발아래서

마리아와 같이

당신의 부활의 삶을 살도록 도와주소서.

 

* 안예도 에드워드 - 메리놀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미국 시카고 출신으로 1961년 사제품을 받고, 1972년 한국으로 발령을 받았다. 청주교구에서 본당사목, 장애아동 조기교육센터 갈릴리집 설립, ‘믿음과 빛’ 공동체 설립 등의 사목활동을 하였다. 지금은 원로사목자로서 2008년에 지적 장애를 가진 성인들을 위하여 세운 주간보호센터 평화기쁨센터에서 일을 돕고 있다.

 

[경향잡지, 2011년 4월호, 안예도 에드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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