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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미술 이야기: 최후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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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9-28 ㅣ No.54

[성미술 이야기] 최후의 심판

 

 

“모든 인간들의 심판관”. 밤베르크 시편. 13세기 중반. 밤베르크 시립도서관.


- “그리스도의 승리”. 부르고뉴의 마르가레트 시편. 13세기 초. 생트 제느비에브 도서관.

 

 

그리스도는 옷깃을 풀어서 옆구리 상처를 드러내었다. 손과 발의 상처에서도 피가 흐른다. 이것은 인간의 육신을 가진(secundum carnem) 심판자의 모습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가 인간의 본성(in natura humana)을 가지고 심판에 임하시는 것은 그분이 다름 아닌 인간으로서 부당한 판결을 겪으셨기 때문이며, 그런 이유에서 인간으로서 모든 인간들에 대한 심판관으로 임하실 자격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스도가 인간으로서 구원의 미스터리를 완성하시는데, 그것은 다시 「최후의 심판」을 통해서 완결된다는 것이다.

 

천사가 구원을 얻은 사람들을 인도하고, 악마가 저주받은 자들을 사슬로 포박해서 끌어간다. 천사는 나팔 대신에 수난의 도구를 들고 있다. 수난의 도구는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역설적으로 표상한다.

 

 

하느님이 예정하신 구원의 역사 완성

 

고대 로마 황제들의 주요 업무 가운데 법정에서 재판장 노릇을 하는 일이 있었다. 재판정으로 사용되던 곳은 내부가 널찍하고 채광이 좋은 「바실리카」였는데, 이 건축형식은 나중에 초기 기독교 교회 건축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가령 로마의 라테라노 교회나 산타 마리아 마조레 교회가 바로 법정 건축 바실리카를 본뜬 가장 이른 사례들이다. 황제가 임석했던 자리는 교회로 치면 동쪽 제단부에 해당한다. 제국 법정의 권위와 엄숙성을 강조하려고 그랬는지, 앞쪽에다 미리 진홍색 휘장을 쳐두었다가 재판이 시작할 때 황제가 출현하는 순간에 맞추어서 휘장을 걷어냈다고 한다.

 

천장까지 닿는 거대한 휘장이 펄럭거리면서 벌어지고, 번쩍거리는 옥좌에 앉은 황제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법정에 운집한 사람들은 짜릿한 긴장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이런 화려하고 극적인 시각 연출은 훗날 그리스도교가 공식적으로 공인된 뒤 일종의 제의 형식으로 수용된다. 또 바실리카 건축에서 머리 부분을 중요시하는 전통 덕분인지 7, 8백년쯤 전에 지어진 옛 고딕식 교회의 제단부를 살펴보면 눈부신 황금모자이크나 보석처럼 빛나는 색 유리창 장식이 순례자들의 눈길을 끈다.

 

한편, 종교 미술의 역사를 훑어보면 바실리카 건축을 승계한 예수님도 로마 시대의 황제들처럼 재판관 역할을 맡는 경우가 있다. 물론 자잘한 민형사 사건을 심사하고 판결을 내리는 일이 아니고,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이 공정했는지 공의의 저울로 선행과 악행의 무게를 달아서 마지막 심판을 내리신다는 점이 색다르다.

 

심판관 그리스도는 대개 중세 시대 로마네스크 교회나 고딕 교회의 정면부 서쪽 정문 상인방 위쪽의 팀파논 장식부조에서 흔히 발견된다. 대개 부조의 한복판에 옥좌에 앉으신 그리스도가 생명의 책을 펴들고 우리를 내려다보시고, 묵시록의 네 생물들이 옥좌 주위를 감싸고 있으면 무난한 도상 형식이 된다. 또 옥좌 아래쪽으로는 무덤 뚜껑을 열고 몸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천사나 악마의 인도를 받으면서 웃는 표정으로 또는 찡그린 표정으로 양쪽으로 갈라서 있는 대칭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교회의 정문 위쪽에 등장하는 심판관 예수님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예수님이야말로 구원으로 통하는 참된 문이요 길이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의 성직자들이 세상의 죄악을 심판할 때에 훗날 최후의 심판에서처럼 공의와 긍휼의 저울을 사용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최후의 심판」이란 좀 특별한 사상이다. 한 번 죽은 사람을 다시 깨워서 심판한다니 좀 가혹하다는 생각도 든다. 가령 고대 인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뿐, 육체는 소멸하고 영혼은 다른 생명체에 가서 붙는다고 보았다. 생명이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순환하면서 생사의 고리가 되풀이한다고 본 것이다. 또 고대 이집트에서는 몸과 육체가 고스란히 다시 태어난다고 보았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가 전하는 대로 사후에 착한 영혼과 악한 영혼이 각각 엘리시움과 하데스의 영토로 다른 길을 간다고 보기도 했다. 이때 죽은 자의 망령은 살아 있는 사람과 서로 마주보고 대화도 나눌 수 있지만, 현실의 역사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로 서술된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최후의 심판은 세상살이를 마치고 죽음의 과정을 겪은 뒤에 심판의 과정을 한 차례 더 거친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종교와도 다르다. 피에르 아벨라르의 「로마서 주해」나 옥세르의 기욤이 쓴 「황금대전」(summa aurea)에 따르면 누구나 개별 심판을 받은 뒤에 마지막 날 보편 심판을 한 차례 더 받는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심판자가 다름 아닌 그리스도라는 것도 좀 특별하다. 최후의 심판에는 선과 악의 경중을 신의 저울에 달아서 가려내고, 하느님이 예정하신 구원의 역사를 완성한다는 신학이 내포되어 있다.

 

밤베르크 시편의 채식필사본(그림 왼쪽 위)이 전하는 「최후의 심판」은 우리에게 좀 낯설어 보인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파트모스의 요한이 눈으로 목격하고 기록한 묵시록의 구절대로 무지개 위에 옥좌가 놓이고, 그곳에 빛나는 형상의 주님이 앉아계셔야 할 텐데, 어쩐 일인지 무지개가 안 보인다. 또 원로 스물 네 분과 생물 네 마리도 생략했다(묵시록 4, 2~8). 더군다나 예수님은 생명의 책도 들고 있지 않고, 나팔을 든 천사도 물리쳤다(묵시록 20, 12와 8, 2). 이래서야 정말 제대로 심판을 하실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어둘 문제가 있다. 최후의 심판 장면을 상상하고 재현했던 화가나 조각가들이 15세기 이전까지는 요한의 「묵시록」을 거의 참고하지 않고, 그 대신 구약과 신약의 여러 대목들을 모자이크 맞추듯이 떼어 붙이는 식으로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가령, 예수님이 입에 칼을 물고 있는 것을 「입에서 날카로운 쌍날칼이 나왔다」는 묵시록(1, 16)의 기록 대신 「내 입을 칼처럼 날 세우셨고」라는 이사야(49, 2)의 증언을 재현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지개 위에 올라탄 그리스도(묵시록 4, 3~4) 대신에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마태오 (24, 30)의 증언을 인용해야 그림을 올바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중세 시대 최후의 심판을 소재로 삼은 채식필사본과 교회 건축의 부조들이 이에 대한 가장 충실한 기록으로 알려진 요한의 묵시록과 자꾸 어긋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사실 성서 맨 끝에 부록처럼 붙어 있는 요한의 묵시록은 1220년경 파리 인근의 수도원에서 처음으로 22장으로 편집된 내용이 조심스럽게 소개되었다. 파트모스의 요한의 존재 진위나 기록의 신빙성에 대한 논의는 덮어 둔다 쳐도, 적어도 미술에 수용되기 시작한 것은 중세 시대가 거의 저물고 난 무렵이었다. 문헌학적 상식이 실물 작품의 생성과 역사적으로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해석의 실마리를 푸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혹시 우리는 지금까지 역사를 너무 입맛대로 해석해왔던 것은 아닐까?

 

[가톨릭신문, 2004년 6월 13일,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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