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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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헌ㅣ메시지

현대 문헌 읽기: 복음의 기쁨,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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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10-09 ㅣ No.1200

[현대 문헌 읽기] 「복음의 기쁨」,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2014)

 

 

언제부터인가 ‘기쁨’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즐거웠다’, ‘좋았다’라는 감정은 많이 느끼지만 ‘기뻤다’라는 말에는 다다르지 못합니다. 어쩌면 ‘기쁨’이란 세상적인 감정이 아닌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쁨’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기쁨’은 어느덧 먼 감정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기쁨”이라는 제목의 이 교황님 문헌은 우리에게 그 ‘기쁨’이라는 감정을 다시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예수님의 ‘복음’에 있음을 알려 줍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이 끊임없이 새로 생겨납니다(1항).

 

결국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벗어나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그 나아감을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의 위험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의 가장 큰 위험은 온갖 극심한 소비주의와 더불어 개인주의적 불행입니다. 내적 생활이 자기 자신의 이해와 관심에만 갇혀 있을 때, … 하느님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그분 사랑의 고요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선행을 하고자 하는 열정도 식어 버립니다(2항).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순간 예수님을 만나도록, 그래서 복음의 기쁨을 얻도록 초대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이러한 초대가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져다주시는 기쁨에서 배제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3항).

 

이 기쁜 초대는 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내 이웃에게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개인주의가 오늘날 세상의 큰 위험임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복음을 전하러 나아가면서 우리의 기쁨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이 문헌은 우리가 ‘기쁨’을 얻기 위한 영성적인 가르침이면서, ‘복음의 기쁨’을 전하고자 하는 선교적 가르침이고, 이 시대의 모든 이에게 기쁨이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사회교리적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생활들, 복음을 전하는 모든 과정들 안에서 우리 이웃을 돌보아야 함을 기억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는 안 된다.”고 말해야 합니다(53항). 우리는 인간 욕구 안에서 오직 시장의 이득을 위한 상황이 얼마나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잔인한 불평등과 폭력에서 서로를 구원하는 복음의 기쁨을 다시 찾아야만 합니다.

 

그런 까닭에 이 문헌은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신앙 이야기만이 아닌, 이 시대의 위기 문제를 2장에서,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을 4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3장을 복음 선포로 이야기합니다. 마치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 내용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복음을 통해서, 미움을 사랑으로, 다툼을 용서로, 분열을 일치로, 그리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나아갑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을 통하여 우리 삶의 어려움을 기쁨과 희망으로 변화시켜보려 합니다. 또한 그 기쁜 소식을 내 이웃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복음의 기쁨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친교와 선교는 서로 깊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23항)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과 같이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누군가와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실천”을 살아가는 올해의 시간 안에서 여러분들이 “복음의 기쁨”을 다시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과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결국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를 하느님과 일치시켜 주는 영적인 힘입니다. 참으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1요한 2,11)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며”(1요한 3,14)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1요한 4,8)(272항). 따라서 우리가 하는 이 사랑의 실천이 우리에게 참으로 기쁨으로 되도록 이어져 가기를 바라며, 이제 그 복음을 기다리는 내 이웃들에게로 지금 출발합시다.

 

[2023년 10월 8일(가해) 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박찬희 다니엘 신부(천호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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